청소년 달래는 ‘서태지 파편’
  • 송준 기자 ()
  • 승인 2006.04.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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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난 이미지·첨단 쇼일 뿐 비전 없어



 서울 압구정동이나 신촌 번화가에 ‘서태지와 아이들(이하 서태지)’풍의 옷차림이 물결치고 이들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옷가게와 액세서리 판매점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 반년도 채 못돼 10대의 감성을 휩쓸어버린 서태지의 인기는 최근 뮤직비디오 제작·시판을 계기로 더욱 높아질 전망이다.

 그간 방영됐던 쇼 프로그램 녹화필름을 짜깁기해 만든 뮤직비디오(MBC프로덕션)가 이미 만개 정도 팔려나간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8월13일과 16일 부산과 서울에서 열린 서태지 콘서트 장면을 편집해 만든 <서태지와 아이들 라이브쇼 실황 뮤직비디오>(방송문화이벤트)도 곧 시판될 예정이다. 방송문화이벤트는 또한 서울 용산의 철도정비창을 무대로 '난 알아요' '환상 속의 그대' 등의 곡을 담은 비디오클립(연출해 제작한 뮤직비디오)을 만드는 중인데, 두 뮤직비디오가 10만개 이상씩 팔릴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마이클 잭슨의 뮤직비디오 <스릴러 만들기>가 미국이라는 거대한 시장에서 45만개정도 소화된 사실에 견주면 비좁은 한국 시장에서 서태지가 유발한 팬들의 반응은 가히 '신드롬'으로 불릴 만하다. 청소년들 사이에 깊숙이 파고든 서태지의 영향은 노래뿐만 아니라 청소년과 어린이의 패션과 춤, 몸짓과 언어양식에 이르기까지 전방위에 걸쳐 나타나고 있다. 이와 함께 서태지를 '뉴키즈 온 더 블록'이라는 문화충격의 연장으로 바라보는 기성세대와 10대 사이에 간극은 갈수록 벌어지는 실정이다.

 이 세대 간의 단절을 풀기 위해서도 그리고 풍요와 빈곤이란 두 얼굴을 가진 청소년문화의 정립을 위해서도 10대들의 행동양태와 우리의 대중문화 시스템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서태지 신드롬은 랩과 리믹스(82쪽 참조), 랩댄스, 자유분방한 패션과 무대매너, 첨단 쇼 연출과 비지니스들의 합작품이다. 랩은 노래라기보다는 빠르게 응얼거리는 낭독에 가깝다. 우리의 문화 정서와는 맞지 않을 듯한 이 랩의 유행은 강한 비트와 빠른 리듬, 그리고 첨단기기가 생산하는 리믹스 반주의 뒷받침으로 가능했다.

 '서태지형 랩댄스'인 회오리춤이 현란한 조명 아래서 보여주는 역동적인 동작은 청소년의 열기를 촉발시킨다. 서태지 양현석 이주노 세 사람의 움직임은 거침없고 무질서한 듯 보이지만 교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조끼와 헐렁한 터셔츠, 칠부바지, 발목을 감싸는 커다란 농구화, 모자와 선글라스, 액세서리도 10대의 감수성에 강하게 어필한다. 이 복합적인 요소들이 '서태지와 아이들'이라는 강력한 유기적 이미지를 형성한 것이다.

한국 대중문화의 '주변성'

 그러나 이같은 분석은 다분히 평면적 시각에 불과하다. 서태지 신드롬이란 현상을 통해 10대의 문화와 정서를 들여다보려면 서태지가 지니는 두 차원의 함수를 동시에 읽어야한다. 그것은 '생산물로서의 서태지'와 '생산자로서의 서태지'이다. 즉 서태지를 생산할 수밖에 없는 대중문화 환경, 그리고 서태지가 생산한 현상과 그 원인이 무엇인가 하는 점에 관한 고찰이다. 여기서 서태지는 '뉴키즈 온 더 블록'과 같은 스타 시스템의 영웅 전체로 확대 해석된다. 서태지, 넓게는 비디오 스타들이 생산한 것은 청소년 특유의 하위문화이다. 청소년 전반의 스타에 대한 열광과 획일에 가까운 행동양식이 그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팬클럽 활동이다.

 지난 8월6일 창단한 서태지 팬클럽 '랩뮤직 태지보이스'의 회원들은 한달에 한번 한자리에 모여 서태지의 새로운 정보를 교환하고 얘기를 나누고 사인회를 갖는다. 물론 회원이 아닌 청소년들은 개별적으로 공연장을 찾거나 스타의 자료를 모으고 사진을 수집한다. 뮤직비디오나 텔레비전을 보면서 노래를 익히거나 춤을 배우기도 한다.

 기성세대의 눈에는 극히 무가치하게 보일 이같은 행동은 도대체 청소년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학자들은 이들의 모임을 하나의 동아리활동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공통적으로 지적한다. 청소년, 특히 학생들은 입시지옥에 살고 있다(실업계 학생들도 현대산업사회가 만든 거대한 일상에 치여 심리적으로 비슷한 상황에 놓여 있다). 따라서 이들의 오락은 학교 안에서 동시에 이루어지며 학교를 떠난 공간일지라도 긍정적인 오락이나 여가의 이렇다 할 소재는 별로 없다.

 김형곤씨(서울대 신문학과 박사과정)의 논문 <뮤직비디오 수용자들의 포스트모던 청소년문화에 대한 현장기술지>는 이 문제를 심도있게 분석한 것으로 그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청소년들이 스타의 자료와 사진을 모으는 행위는 '소녀들의 침실문화'에서 기인한다. 침실은 소녀들이 만나서 음악을 듣고 화장기술을 익히고 춤을 배우고 성을 비교하는 비밀스런 곳이었다. 이곳에서 소녀들의 성적 욕구는 팝스타 선망으로 표출됐는데 잡지 레코드 티셔츠 포스터 사진과 같은 상징물 수집이 그 방식이었다. 그러다가 남녀간 성역할에 대한 강한 치환 욕구, 도시화 산업화의 급격한 진전으로 촉발된 유니섹스의 풍조는 소년·소녀 간의 취향과 사고, 행동양식을 통합시키는 결과를 남는다.

 이렇게 공유된 스타 선망의 방식은 이들의 공감대이자 커뮤니케이션 통로가 된다. 이 단계에서 청소년은 문화를 수용하는 데 더이상 수동적이지 않다. 적극적·능동적으로 나서서 스타를 찾고 정보를 챙기는 것이다. 이 방식들은 또하나의 부가가치를 확보한다. '성적순'이라는 학생간 등급과 극심한 경쟁, 그와 관련한 교사의 관리 체계로부터 벗어나 '문화의 민주주의'를 수립하는 것이다.

 예컨대 특정 스타의 사진이나 정보가 풍부한 학생은 그들 사이에서 잠시 영웅이 되지만 그것이 그들을 계급적으로 억압하거나 지속적인 스트레스를 주지는 않는다. 그리고 이 유용한 통로는 아직까지 교사와 부모로부터 그다지 심한 탄압을 받지 않는 거의 유일한 놀이방식으로 남아 있다.

"수용자 운동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같은 애정어린 분석 뒤에 덧붙이는 김씨의 진단은 다소 암울하다. 한마디로 이 문화양식은 지향이 없는, 즉 비전이 없는 하위문화라는 것이다. 그가 주목하는 청소년문화의 기호는 △저항 △솔직함 그리고 △새로운 것에 대한 갈망이다. 이때 저항은 기성문화에 대한 맹목적 거부이자 파괴일 뿐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려는 에너지로 활용되지 않는다. 또다시 새로운 문화 소재를 수용할 뿐이다. 선택이 바뀔 때마다 등장하는 요소가 바로 '새로운 것에 대한 갈망'이다. 더욱 빠르고 역동적이고 감각적이고 화려한, 어쨌든 더욱 새로운 것이면 된다. 그들은 감정에 대해 솔직한 것이다.

 서태지의 성공은 바로 이 기호를 바탕에 깔고 있다. 일단 그들의 과감한 승부가 신선하다. 이제까지의 랩이 노래의 도입부에 조심스럽게 응용된 부분적인 것인 데 비해서 서태지는 과감한 억양과 패션, 그리고 무대매너로 연예계를 뒤흔들어놓았다.

 그러나 이것은 동시에 스타의 영역을 한정하는 변수로 작용하기도 한다. "나는 서태지가 싫다. 다른 애들이 서태지를 너무 좋아하기 때문에…"라는 주장도 있다. 또한 이들의 취향은 일시적이다. 더 새로운 스타가 나오면 '서태지'든 '동태지'든 연연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이들은 적어도 새로움을 유지하는 동안만 기존의 스타를 "영원히 사랑"하는 것이다. 그만큼 청소년문화는 급변하며 또 돌발적이다.

 이 돌발성 위에, 저항과 새로움과 강력한 자극을 매개로 한 코스모폴리탄적 대중문화산업의 메커니즘이 존재한다. '생산물로서의 서태지'를 낳은 어머니는 '예술'이 아니라 첨단 쇼  비지니스와 하이테크로 상징되는 금속성 기계문명인 것이다. 문학평론가 이성욱씨에 따르면, 이 문화산업은 자본주의의 확산과 함께 증가하는 청소년의 구매력을 노리고, 그렇게 얻어진 자양분으로 몸집을 부풀리고 침단 기기로 재무장을 한다. 이때 첨단 기기의 도입은 새로운 욕구를 창출하여 대중문화산업의 무한성장을 기약한다는 것이다.

 서우석 교수(서울대 작곡과)는 이와 관련해 "미국이 대중음악의 중심부라면 우리나라는 먼  주변부에 해당한다. 또 대중음악의 중심부에는 '로큰롤'이라는 거대한 조류가 자리잡고 있다. 랩은 주변부에 잠시 머무는 일시적 조류에 불과하다. 서태지 현상은 이같은 한국의 주변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한국 대중음악의 주변성은 문화산업의 대미 종속성과 직결된다. 노래평론가 이영미씨는 "우리 대중문화 산업이 미국 대중문화 산업의 하청기업화해버린 것은 오랜 일"이라고 단언한다. <한겨레신문>은 지난 2월 '뉴키즈 온 더 블록' 사태를 언급한 사설에서 "일제군사문화의 뒤를 이어 미국의 양키문화가 남한을 문화식민지로 삼았다. 역대 문화행정 관료는 미국 문화정책의 하수인 노릇을 해왔다"고 지적한 바 있다.

 최근 서태지를 정점으로 한 한국 대중음악은 외국의 정서적 기술적 변수들을 짜깁기한 측면이 강하다. 우리 고유의 정서도 혼도 모두 죽어버린 문화의 무덤 위에서 오로지 편집과 비지니스만 꽃을 피운다. 가사는 병들고 노래가 전달하는 정서와 메시지는 간 곳 없다. 첨단 음향·조명기기가 빚어내는 포스트 모던한 이미지만 번쩍거린다. 이같은 포스트모더니즘의 징후들은, 거대한 현실에 지친 현대인에게 일상성 위에 감각 문화의 유토피아를 건설할 것을 요구한다.

 이 허구적 유토피아를 벗어나는 대안으로써 대중문화평론가 김창남씨는 "수용자 운동이 시작돼야 한다"고 말한다. 대중음악(또는 문화) 공급자와 직접 소비자인 청소년은 자체 치유능력이 없기 때문에 대중음악 모니터활동과 함께 건강한 대안을 마련하는 움직임이 하루빨리 시작돼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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