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서기 꿈 이뤘으나…
  • 예루살렘 · 손혜신 (자유 기고가) ()
  • 승인 1994.06.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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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자치 한달…경제 독립이 과제

지난 5월4일부터 팔레스타인측의 자치가 시작된 가자지구와 예리코 시의 앞날이 순탄치 않다. 자치의 성공 요건인 경제력이 아직 미약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최근에 팔레스타인 지도부가 예리코 시를 장차 팔레스타인 국가를 창설할 교두보로 삼고, 이스라엘의 수도인 예루살렘을 팔레스타인 국가의 수도로 인정하는 헌법 내용이 폭로 되면서 정치적 불안 요인까지 겹쳐 있다.

 가자지구와 예리코 시 자치 계획과 관련해 팔레스타인 지도부가 가장 염두에 두고 있는 점은 이스라엘에 대한 경제 의존도를 낮추는 일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생활 수준이 아주 심각하기 때문이다.

 과거 20년 동안 각 가정이 보유한 가전제품은 늘었으나(텔레비전과 냉장고 보급률은 90% 이상) 신제품 구입은 약 10% 정도이다. 전체 주민의 70%는 전화가 없다. 그동안 이스라엘 정부의 무관심으로 의료 시설도 몹시 부족하며, 기생충 · 전염병 같은 후진국형 질병과 스트레스에 의한 심장병 같은 선진국형 질병이 공존한다. 일부다처제로 많은 자녀를 거느린 이들에게 피임 방법이 소개되고는 있으나 별 호응은 없다. 실제로 가자지구는 중동에서 가장 인구밀도가 높은 지역이다.

 구 예루살렘에서는 취학 연령인 어린이가 장사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으나, 이스라엘 시민권을 가진 사람 가운데는 유태인이 다니는 대학에서 공부하고 외국 유학을 하는 경우도 간혹 있다. 그러나 힘들게 고등 교육을 받아도 일자리를 얻기 힘들다. 베들레헴 대학의 경우 팔레스타인 출신 졸업생의 50%이상이 일자리를 얻지 못한다. 팔레스타인 마을에서 일자리를 찾지 못한 사람은 자연히 이스라엘로 가게 된다. 가자지구에서는 공식적으로 하루 3만∼3만5천명 정도가 이스라엘로 출퇴근하며, 이들이 벌어들이는 수입은 연간 약 2억5천만달러에 달한다.

"연내 4억달러 지원 없으면 실패"
 지금까지 팔레스타인 경제는 이스라엘에 의존해 왔다. 알루미늄 · 철 · 구리와 같은 금속 쓰레기를 가자로 들여다 재생해 약 1만2천t을 이스라엘에 재공급한다. 이스라엘에 의존한 봉재 기술자들이 벌어들이는 수입은 연간 4천만달러이고 농업에 의한 소득은 연간 1억3천만달러이다. 이스라엘 정부 보고에 따르면, 연말까지 3억∼4억달러 가량의 외부 지원이 없으면 가자의 자치는 실패할 위험이 있고, 주민들의 생활 수준도 약 30% 떨어질 것으로 나타났다.

 작년 한 해에만도 이스라엘을 찾은 관광객은 1백65만명에 달한다. 자치가 시작되기 전부터 가자지구와 달리 예리코 시는 관광객의 필수 코스였다. 8천년전에 생긴 예리코는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들어오기 위해 맨 처음 정복한 도시이다. 이러한 역사적인 배경과 함께 달고 맛있는 오렌지는 예리코의 자랑이다. 인구 1만5천명인 소도시 예리코는 아라파트 의장이 이끄는 팔레스타인해방기구가 장악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예리코도 가자지구와 마찬가지로 경제 독립의 돌파구를 찾고 있다. 예리코는 예루살렘에서 차로 30분 거리밖에 안되는 장점을 살려 관광 도시로 개발하면 경제적인 어려움을 극복할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팔레스타인 주민은 세계은행의 재정 지원을 기다리고 있다. 세계은행은 앞으로 3년간 교육 · 전기 · 상하수도 · 기간 산업 개발 비용으로 2억3천4백만달러를 지원할 계획이다. 또한 건설과 공업을 지원하기 위해 수천만달러를 추가하였다.

 지난 3년간 이스라엘 정부의 통제로 가자지구의 경제 수준은 현재 매우 열악하다. 보안장관인 모세 아렌스는 이러한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제안을 받아들여 가자지구에 공업단지 두 군데를 조성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가자는 새로운 자치를 위해 부산하다. 팔레스타인 자본가를 끌어들여 농업을 발전시키고 농산물에 '가자'라는 상표를 붙여 유럽시장에 내놓을 계획이다. 이를 위해서는 항구가 필요한데 현재 네덜란드 · 프랑스 · 일본이 '가자항 사업'에 참여할 것으로 알려졌다. 가자 항이 건설되면 중동의 싱가포르와 같은 구실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27년 만에 되찾은 가자와 예리코의 자치가 성공해야 중동 평화의 최대 위협 요인으로 꼽혀온 유태인과 아랍인의 갈등도 사라질 것이다.
예루살렘 · 손혜신 (자유 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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