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염자 불러모아 사회가 부여안자”
  • 사회 · 김훈 부장 ()
  • 승인 1994.06.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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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철 · 이철용 · 김홍신 ‘에이즈 대책’ 좌담

전국회의원 이철용씨와 소설과 김홍신씨가 에이즈 감염자 김형철씨를 만나 김씨의 체험을 바탕으로 에이즈 예방과 관리에 따른 문제를 점검했다. 이철용씨는 국회 보사위 시절부터 에이즈에 관한 포괄적인 정책대안을 제시해 왔고, 김홍신씨는 에이즈 문제를 심층취재해 장편소설들을 펴낸 바 있다. 이들이 김형철씨와 함께 진단하는 에이즈 환자 · 사회 · 정부가 가진 문제점을 중계한다. <편집자>

사회 : 김형철씨가 에이즈에 감염된 경위를 설명해 주십시오.
김형철 : 저는 직업이 요리사였습니다. 고정급 외에도 매상에 따라 2백만~3백만원씩 월급을 더 받았습니다. 업소 주인은 새로 차린 가게를 꾸려나가기 위해 술을 마셔야 할 일이 많았습니다. 그런 자리에 함께 다니다 보니 자연히 파주의 용주골 윤락가에 드나들게 되었습니다. 91년 겨울에 업소 주인하고 술 마시고 세번 갔었습니다. 저는 걸리고 주인은 걸리지 않았습니다.

사회 : 그후 업소 주인의 태도는 어땠습니까?

김형철 : 제가 에이즈에 감염된 걸 안 다음부터 주인은 저로 인해 자기 업소가 타격을 받을까 봐 무척 괴로워하는 눈치였습니다. 그래서 자연히 멀어지다가 서로 경계하는 사이가 되었고, 결국은 직장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습니다.

김홍신 : 제가 소설을 쓰려고 에이즈 감염자들을 많이 만나 그 뒤에 그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들어보니까 한결같이 그런 식이었습니다. 사회라는 유기체 전체가 에이즈에 감염되어 있다는 인식을 갖기보다는, 같이 오입을 한 후 누구는 걸리고 누구는 걸리지 않았다 해서, 안 걸린 사람이 걸린 몇몇 사람을 나환자처럼 멀리하는 것이지요. 도덕적 타락이라는 점에서 아무런 차이가 없어도 안 걸린 자들이 걸린 자들을 골라내서 사회 밖으로 영구 추방해 버리고 있습니다. 이런 영구 추방 현상이 벌어지는 이유는 물론 에이즈가 아직까지는 현대 과학으로 해결할 수 없는 불치병이기 때문이지요. 지금 다른 성병에 관해서는 그런 사회 추방현상은 일어나지 않고 있습니다. 에이즈도 치료술이 개발된다면, 거기에 관련된 도덕적 문제도 결국은 흐지부지되고 말겠지요.

사회 : 김형철씨는 감염된 후에 생활을 어떻게 꾸려왔습니까?

김형철 : 약혼녀와 헤어지고, 부모 형제와 친구들과도 단절되었습니다. 죽으려고 약을 먹었다가 미수에 그쳤습니다. 직장을 구할 수 없어서 부산 · 목포 같은 항구를 떠돌면서 무자격선원으로 연안 어선을 타고 허드렛일을 했습니다. 한달에 40만원쯤 벌었습니다. 그런데 너무 힘이 들어서 그 일도 할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다시 서울로 와서 여인숙 생활을 하고 있지요.

이철용 : 에이즈에 감염된 사람들이 거의 대부분 감염 이후 그처럼 고립되고 은폐되게 마련이지요. 그래서 에이즈는 정부의 통계나 관리가 전혀 무의미해져 버린 장막 속에서 급속히 번져나가고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에이즈 감염자들이 스스로 정부나 사회기관에 신고하고 의탁하도록 유인 정책이 필요합니다. 감염자로 판명되면 누구나 김형철씨처럼 세상으로부터 배척되고 마니까 아무도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지요. 이게 바로 에이즈 확산을 가속화하는 가장 중요한 원인이라고 봅니다. 감염후 건강관리, 취업 알선, 발병후 관리, 죽음의 관리에 이르기까지 그들을 공적인 관리의 틀 안으로 유인할 수 있는 대책을 빨리 세워야 합니다. 그들의 모든 사회적 관계를 단절해 놓고서 에이즈 확산을 방지한다는 것은 말이 안됩니다.

상류층에는 에이즈가 침투하지 않았을까?

사회 : 김형철씨는 자기가 에이즈에 감염되었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았습니까?

김형철 : 조리사 등록증을 갱신하는 과정에서 보사부 직원으로부터 통고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저를 감염시킨 파주골 여자를 신고했고, 연줄연줄로 많은 사람이 감염 사실을 알게 되었지요.

김홍신 : 현행 에이즈 검색제도 안에서 추적할수 없을 만큼 넓은 분야에서 에이즈가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 문제입니다. 지금 에이즈 검사 대상으로 외항 선원이나 특수업태부 또는 접객업소 종업원들을 조사하고 그 결과를 에이즈 감염 숫자라고 발표하는 것은 정부가 무책임한 것입니다. 정부의 검사 대상이 아닌 넓은 부분, 말하자면 상류층의 성적 관행이나 풍속 속에 과연 에이즈가 침투 되어 있지 않은지 두렵습니다. 그래서 누구누구 하는 유명 인사들이 에이즈로 죽었다는 소문이 무성하게 되는 것이지요.

이철용 : 우리나라의 경우 가장 무서운 에이즈 전파원은 주한미군 입니다. 필리핀과 마찬가지이지요. 지난 90년 주한미군 병사들 중 50명이 에이즈 감염 환자로 판정되어 본국으로 송환했다고 정부가 발표했는데, 이들에 대한 역학 조사 결과와 전파 경로를 밝혀야 합니다. 또 한 · 미 행정협정에도 주한미군의 에이즈에 대한 조항을 반드시 끼워넣어야 합니다.

사회 : 김형철씨는 에이즈 감염 사실을 안 뒤에 성생활을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김형철 : 전혀 없습니다. 아무런 생각도 일어나지 않아요. 극심한 불면증에 시달리고, 잠 안오는 밤에는 죽음의 공포에 짓눌립니다. 발병해서 죽을 때까지의 고통을 생각하면 성욕은 전혀 일어나지 않아요. 발기 자체가 되질 않습니다.

김홍신 : 그것이 사람에 따라서 다르더군요. 제가 아는 어떤 에이즈 감염자는 순전히 자기를 배척하는 사회에 대한 복수심으로 에이즈를 확산시키는 경우도 있었어요. 죽음의 공포에 시달리기는 그 사람도 마찬가지인데, 복수심이 끓어오르면 발기가 된다는 거예요. 참으로 가공할 이야기이지요. 도덕적 타락은 다 마찬가지인데 왜 하필나만 걸리는 것이고, 안 걸린 자들이 무슨 권리로 나를 배척하는가, 이런 심리가 작용하고 있었습니다.

이철용 : 제가 국회 보사위 시절에 에이즈에 감염된 선원들을 조사해 보았더니 감염된 사실을 알고서도 정상적인 결혼 생활을 하고 아이까지 낳은 사람이 수십 명이었습니다. 어처구니없는 일입니다. 그들은 모두 자포자기에 빠져 삶과 죽음에 대한 초보적 인식조차 없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정부로서도 속수무책이었습니다. 정부를 추궁하면 ‘인권 문제’라고 발뺌하지요.

사회 : 감염된 사실을 정부로부터 통고 받은 뒤 어떤 관리를 받고 있습니까?

김형철 : 통고 받은 후에는 한달에 한번씩 담당 관리가 전화를 해서 제 주거이전, 생활 상태, 건강 상태들을 물어보곤 하지요. 또 6개월에 한번 채혈해서 병의 진행 여부는 체크하지요. 그게 전부입니다. 제 자신도 다른 감염자들에게 보사부에 알리지 말라고 얘기하고 싶은 심정입니다. 알리고 나면 너무나 큰 불이익을 감수해야 하니까요.

이철용 : 지금 정부가 감염자라고 파악한 3백여 명에 대한 관리는 사실상 행정 사항을 체크하는 정도입니다. 에이즈에 대한 관리는 감시와 격리 차원을 넘어 그들이 사회에 발붙일 수 있도록 어떤 유인책을 마련해주는 데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그것이 에이즈의 음성적 확산을 막는 유일한 해결책입니다. 정부의 정책 방향은 감염자들이 우선 집단화하는 걸 싫어하는 것 같아요. 집단화하면 목소리가 커지고 요구가 많아지고 관리책임이 따르기 때문이지요. 정부의 정책은 어디까지나 개별화 정책에 불과합니다. 그들을 관리하는 것은 그들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국민 전체의 생명을 보호하자는 것인데 말입니다.

사회: 김형철씨는 여생에 대해서 어떤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까?

김형철 : 에이즈 감염자들이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볼까 합니다. 또 감염자들이 건강한 사회로부터 완전히 내몰리지 않도록 어떤 유대를 맺는 일도 해보고 싶습니다. 상담실이나 쉼터 같은 곳을 만들고 싶어요.

김홍신 : 이제 감염자들이 문제의 표면에 직접 나서야 합니다. 그래야 문제를 해결할 힘이 생길 수 있지요. 자신을 공개하고, 문제의 실태를 외쳐야 합니다. 저도 돕겠습니다.

이철용 : 정부도 지금처럼 실태를 감추려들지 말아야 합니다. 우선 예방망을 다시 점검해야 합니다. 채혈도 문제에요. 우선 피를 뽑고 5주쯤 후에 헌혈자에게 감염여부를 통고해 주는 방식은 위험하기 짝이 없어요. 또 감염자와 발병자에 대한 공적 의료비와 지정 의료기관을 설치해야 합니다. 주한미군의 에이즈 전파를 차단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특수한 경로가 아니라 일상적 성 관행 속에서 에이즈가 전파되기 시작하면 이것은 통제 불능입니다. 두려운 일이지요.
사회 · 金 熹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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