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 돌린 부처님 ‘화해 연꽃’들다
  • 서명숙 차장대우 ()
  • 승인 1994.06.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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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계, 고개 숙인 여권에 ‘합장’임박



 불교계와 金泳三 정권의 전면 화해가 임박했는가. 요즘 정가와 종교계의 관심거리 가운데 하나다. 그도 그럴 것이 냉랭한 기류만 감돌던 두 진영 사이에서 새로운 분위기가 감지되기 때문이다.

 정부ㆍ여당과 조계종 간의 물밑 대화가 활발하게 시작된 것은 5월 중순께부터다. 개혁 회의 관계자와 정부ㆍ여당 인사의 말을 종합해 보면, 문화체육부ㆍ민자당불교신도회ㆍ정각회의 당 인사들,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실, 내무부 등이 공식적인 대화 창구였다. 이와함께 김명윤 한국불교단체총연합회 회장, 서석재 전 의원, 민자당내 동국대 출신 의원 등 개인 차원의 대화 창구도 가동됐다. 개혁회의의 道法 스님(범종추 상임공동대표)은 “정부ㆍ여당과 연결된 수많은 통로가 공식ㆍ비공식 대화역을 자청했고, 이들이 개혁회의의 입장과 비판적 시각을 제대로 전달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잘못된 관점을 교정하게된 정부ㆍ여당이 불교계 문제를 성의 있게 다뤄야겠다고 판단한 것 같다”라며 그동안 물밑 대화가 진행돼 왔음을 시인했다.

 여권과 불교계는 지난 3월말 조계종 폭력사태 이후 줄곧 불편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개혁 세력으로 재편된 조계종 지도부는 두차례에 걸친 경찰력 투입을 ‘법난’으로 규정하고 김영삼 대통령의 공식 사과와 최형우 장관 인책 퇴진을 요구하고, 전국 사찰에 정부ㆍ여당을 비난하는 현수막을 내걸기까지 했다. 뿐만 아니라 김종필 대표의 법회 참석을 완곡히 거부하고, 문화체육부가 화해안으로 은밀히 내놓은 ‘청와대 오찬’안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여권의 주요 당사잔인 청와대ㆍ문화체육부ㆍ내무부 역시 사태 초기에는 ‘차라리 냉각기가 필요하다’라는 판단 때문에 불교계와 화해를 모색하는 데 그다지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반목이 장기화하면서 양쪽의 상황 인식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정부ㆍ여당 일각에서 ‘돌아앉은 불심’을 방치한 채 보궐선거와 지방자치단체장 선거를 치러야 하는 부담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조계종 개혁회의 또한 불교 개혁의 청사진을 하루빨리 제시해 차질 없이 개혁 일정을 밟아야 하는 당면 과제에 쫓기는 처치였다. 그런 상황 변화가 양쪽을 대화의 길목으로 내몰았고, 여기에는 ‘더 이상 방치하면 불교계와의 골이 너무 깊어진다’는 정부ㆍ여당측의 초조감이 더 크게 작용했다.

청화대 교문수석실의 인식 전환이 주효
 정부ㆍ여당과 불교계가 반목에서 화해로 방향을 선회하는 데 가장 결정적인 대목은, 불교계에 대한 청와대 교문수석실의 인식 전환이었다. 이는 그만큼 교문수석실의 경직된 시각이 그동안 양쪽의 인식을 꼬이게 만들었다는 이야기도 된다. 종교 문제를 관장하는 교문수석실(金正男 수석)에는 개신교와 천주교에 정통한 인사들이 많다. 하지만 불교계에 대한 교문실의 인식 수준은 ‘거의 백지 상태였다’는 것이 불교계측의 주장이다.

 조계종 총무원의 한 홍보 관계자는 “불교계에 관한 정보도 관심도 거의 없던 교문수석실은 불교계를 관리 대상으로만 여겼다. 조계종 사태가 단순한 종권 다툼으로 왜곡 전달된 데는 교문실 책임이 컸다”라고 말했다. 결국 뒤늦은 접촉과 대화를 통해 교문실의 상황 인식이 달라졌고, 그것이 정부ㆍ여당의 사태 인식을 바꿔놓은 계기가 됐다는 것이다.

 6월 초순께부터는 ‘법난’의 핵심 당사자인 내무부가 불교계와의 대화가 뒤늦게 가세했다. 개혁회의의 한 핵심 관계자는 “오랫동안 여러 갈래로 진행돼 오던 흐름이 내무부까지 움직이게 만들었다”라고 말한다. 6월초 내무부 장관실의 한 핵심 관계자와 범종추 핵심 인물의 사진 회동에 이어, 며칠 뒤에는 민자당 ㄱ의원 주선으로 崔炯佑 장관과 조계종 지도부가 만난 것으로 알려진다. 사태가 본격적인 해결 조짐을 보인 것도 이 때부터였다.

 조계종 개혁회의 지도부는 ‘불교계의 아픔을 인정하고, 정부의 과오를 시인하고, 불교계가 자존심을 회복할 수 있도록 성의있는 태도를 보인다’면 최장관 인책과 퇴진 문제는 융통성 있게 다룰 문제라는 유연한 태도를 보이기 시작했다. 최장관 역시 ‘공권력 투입에 문제 없었다’는 초기의 완강한 자세에서 한발짝 물러섰다. 이런 물밑 대화와 사전 조율이 6월16일 최장관의 조계사 방문을 신호탄으로 표면에 올라온 것이다.

 6월16일 ‘불교 법난의 원인 제공자’로 지목 받아온 최형우 내무부장관은 개혁회의가 자리잡은 조계사를 방문하고 “경찰력 투인에 대해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라고 밝혔다. 가톨릭 신자인 최장관은 呑星 조계종 총무원장을 예방하고 대웅전을 참배했다.

 다음날인 17일 종로구 한 중국음식점에서는 ‘민자당 불교신도회 정기총회 겸 창립 4주년 기념 법회’가 열렸다. 이 날 행사에는 당내 인사는 물론 불교계 각 종파 대표들이 대거 참석해 여권과 불교계의 화해 가능성을 보여 주었다. 당에서는 金鍾泌 대표와 權翊鉉 정각회(국회의원 불교신도모임) 회장, 郭正出 민자당 불교신도회장 등이 참석했다. 전례에 비추어 김대표최고위원의 참석은 매우 이례적인 것이었다. 김대표 역시 이 날 격려사에서 “지난 3월의 조계종 사태를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앞으로 당 차원에서 불교 발전을 뒷받침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다짐했다.

 화해의 신호탄은 일단 올랐지만 실제적이고 전면적인 화해를 낙관하기는 아직 이르다. 우선 정부ㆍ여당에 대한 대응책을 둘러싸고 조계종 내부에는 아직도 강온의 시각 차가 엄존하고 있다. 개혁회의 지도부의 움직임과는 달리 범종추ㆍ재가불자연합회ㆍ승가대학생회 등은 불교 탄압에 대한 정부의 사과를 촉구하는 ‘백만인 서명운동’을 멈추지 않고 있다. 6월 18일 범종추측은 종단 개혁 결의 법회를 통해 ‘김영삼 정권 사과, 최형우 장관 퇴진’ 입장을 거듭 확인했다.

 최형우 장관의 조계사 방문이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왔다는 시각도 있다. 최장관은 이 자리에서 당초 불교계가 기대했던 명백하고도 뚜렸한 사과 발언 대신 ‘유감’발언만 남겼다. 이를 두고 조계종 일각에서는 ‘정부가 진정한 사과의 뜻을 가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어물쩍 넘어가려는 것 아니냐’ 하는 비판론이 대두하고 있다.

대선 공약 이행이 관건
 조계종 지도부는 내부의 이런 강경한 목소리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6월17일 민자당 불교신도회 행사에는 참석 여부로 관심을 끌었던 呑星 총무원장이 끝내 참석하지 않았다. 아직은 좀더 사태 추이를 지켜보겠다는 것이 조계종 지도부의 입장이다.

 조계종 내부의 시각 차와 함께 또 하나의 변수는 불교계에 대한 정부ㆍ여당의 지원이다. 불교계에서는 ‘정부의 잘못 인정, 재발 방지 약속’이라는 명분과 함께 ‘불교계 당면 문제에 대한 최대한 지원’이라는 실리에도 비중을 두고 있다. 불교 지방 방속국 설립 허가, 승가대의 4년제 정규 대학 승격, 불경 번역 사업 지원, 사찰에 대한 토초세 면제 등 대통령 선거 공약만이라도 반드시 실현돼야 한다는 것이다. 개혁회의 지도부로서는 그런 구체적 성과가 나타나야만 내부 강경론을 조금이라도 설득할 여지를 갖게 되기 때문이다.

 정부측도 일단 전향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민자당 불교신도회는 6월9일 비공개 당내모임을 갖고 공약 사항이 이행을 촉구하고 나섰다. 최형우 장관 역시 자신의 모교이자 불교계 대학인 동국대의 의대 신설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알려진다.

 물밑 논의는 무성하고 여러 이야기가 오갔지만, 그 어느 것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절충은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 그러나 더 이상의 갈등은 소모적이라는 데 양쪽의 인식이 일치했으니만큼 양자 간의 화해는 그리 멀지 않은 것 같다. 정가에서는 6월 말이나 7월 초쯤 눈에 보이는 결과가 나타나리라는 관측이 무성하다.
徐明淑 차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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