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균 속이는 인공 아미노산/분자 결합으로 해로운 박테리아 파괴…의약품 개발에 유용
  • 번역ㆍ이덕환 (서강대 교수ㆍ화학) ()
  • 승인 1994.06.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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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프만 칼럼

인간은 창조하기 위해 태어났다. 시인은 시를 쓰고, 건축가는 집을 지으며, 법률가는 법을 만들고 토목기사는 수로를 만든다. 그리고 화학자는 분자를 창조한다.
 자연적인 것과 비자연적인 것은 무엇이 다를까. ‘자연적’ ‘유기적’ ‘순수한’ 같은 말을 강조하는 광고인들은 잘 알겠지만 정신적인 면에서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물질적인 면에서는 전혀 차이가 없다. 자연적이나 인공적이나 미시적인 눈으로 보면 모든 것이 분자로 되어 있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빛깔이나 독성, 강도와 같이 우리가 느낄 수 있는 모든 성질은 분자로 된 미세구조에서 비롯된다. 자연 분자와 똑같은 것을 인공적으로 합성할 수 있다. 합성 조미료와 마찬가지로 자연산 조미료도 지나치게 섭취하면 두통을 느끼게 된다. 실험에서 인공 합성한 항생제도 곰팡이에서 추출한 항생제처럼 폐렴 치료에 효과를 나타낸다.


 화학자들은 자연적인 것을 다루는 특별한 방법을 알고 있다. 작은 건축물을 전문으로 짓는 화학자들은 자연적인 것으로부터 영감을 얻는다. 따개비가 바위에 단단히 붙을 수 있도록 하는 단백질의 구조를 연구하면 물속에서도 접착력이 뛰어난 접착제를 고안할 수 있을 것이다.

20여 가지 아미노산이 수많은 단백질 형성
 화학자들은 가끔씩 자연적인 것과 비슷하면서도 조금은 다른 분자를 만들고 싶어한다. 이런 인공 분자를 이용해 박테리아나 바이러스를 속여서 병을 치료할 수도 있다. 또한 인공적인 작은 분자가 바이러스나 우리 몸 속에서 일어나는 복잡한 생화학적 변화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함으로써 생물이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되기도 한다. 최근 분자공학자들이 이룬 흥미로운 성취 중의 하나를 소개한다.

 단백질은 세포의 중요한 구성 성분인데, 우리 몸 속의 효소들도 단백질로 되어 있다. 효소는 김치를 발효시키고 면역세포를 합성하는 화학 작용을 한다. 또 헤모글로빈이라는 단백질은 허파로부터 근육으로 산소를 운반하고, 어떤 단백질은 눈에 빛이 들어오면 신경 신호를 보내는 구실을 한다.

 단백질은 폴리펩티드라 부르는 긴 사살 모양 분자로, 아미노산이라는 단위체가 연결되어 만들어진다. 펩티드라고도 하는 아미노산은 아미노기(-NH₂)와 산기(-COOH) 2개의 연결고리를 이용하여 다른 아미노산과 결합할 수 있는 기계의 부품과도 같다. 아미노산은 2개의 연결고리 사이에 놓인 치환기의 종류에 따라 약 20여 종으로 나뉜다. 치환기가 수소(-H)이면 젤라틴에 많이 들어 있는 글리신이 되고, -CH₃이면 실크 섬유에 많이 포함된 성분인 알라닌이 된다. 또한 -CH₂CH₂COOH이면 글루탐산이, -CH₂CH₂COONa이면 조미료로 쓰이는 MSG(monosodium glutamete)가 된다. 아미노산의 결합으로 만들어진 폴리펩티드의 엄청난 다양성은 20여 종류의 다른 부품을 임의로 조합하여 만들 수 있는 기계의 종류가 얼마나 될까를 생각하면 쉽게 알 수 있다.

 효소라고 부르는 분자 가공 공장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작지만 그 수가 매우 많다. 또한 단백질로 된 효소는 부품 종류와 배열 순서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종류가 대단히 많고 주어진 임무를 매우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

미국 두 교수가 합성에 성공
 최근 하버드 대학의 스튜어트 슈라이버 교수와 코넬 대학의 존 클라디 교수는 단위 길이가 긴 ‘비닐형 펩티드’를 고안ㆍ합성하는데 성공했다. 이것은 보통 폴리펩티드와 비슷하기는 하지만 접히는 모양이 다르다. 비닐형 아미노산도 보통 아미노산처럼 2개의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어서 긴 사살을 만들 수 있다(그림 참조). 그러나 비닐형 펩티드는 아미노산과 달리 두 연결고리 사이에 탄소 2개와 또 다른 치환기를 가지고 있어서 더욱 다양한 사슬을 만들 수 있다.

 이렇게 변형된 새 펩티드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바이러스와 우리 몸 속의 효소는 모두 단백질이고 여기에 분자가 결합되어 화학변화가 일어난다. 단백질에 결합되는 분자는 흔히 단백질 전체의 모양을 인식하지 않고 ‘결합 자리’만을 인식할 뿐이다. 따라서 분자의 한 부분은 효소와의 결합에 필요한 조건을 갖추고, 나머지 부분은 효소의 작용을 방해할 수 있는 분자를 만들면, 궁극적으로 효소를 파괴할 수도 있게 된다.

 즉 약간의 비자연적 요소를 이용하여 우리에게 해로운 박테리아를 죽일 수 있으면서 인간에게는 전혀 무해한 분자를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야곱이 형 에서가 없는 사이에 털  옷을 입고 눈 먼 아버지 이삭을 속여 축복을 받아내는 성서의 이야기와도 흡사한 것으로, 분자 수준의 의도적 속임수라고 할 수 있다.

 더욱 놀라운 것은 화학자들이 자연의 아미노산을 변형하여 만든 비닐형 펩티드와 매우 비슷한 분자가 자연계의 해양성 스펀지에서 발견되었다는 점이다. 이러한 발견은 비닐형 펩티드를 합성하는 화학자들에게 커다란 심리적 위안이 된다. 비자연적인 펩티드들이 의약품 개발에 유용할 것이라는 가능성을 더욱 높여주기 때문이다. 슈라이버와 클라디도 새로운 화합물들이 의약품으로 활용될 수 있는가를 시험하고 있다.

분자 만들기에 윤리적 의문 따르지만…
 화학자들이 자연의 분자를 변형시키는 이유는 명백하다. 무엇보다 경이로움이 있다. 왜 자연은 이렇게만 하고 다르게는 하지 않을까, 내가 이를 조금 변형한다면 어떻게 될까…. 또 다른 이유는 인간 생활의 향상에 이바지할 수 있다는 데 있다. 의구심, 인류에 주는 혜택, 그리고 개인적인 이익을 함께 추구할 때에 인간의 재능과 정신은 더욱 빛을 내는 모양이다.
 그런 한편으로, 분자 장난에 위협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다. 변형된 분자가 고통과 고난을 줄일 수 있다고 하더라도, 신의 창조물을 마음대로 바꿀 권한이 우리에게는 없다는 것이다.

 여기에 대한 답이 있다. 물론 완벽한 대답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인류가 이 세상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 때부터 인공부화된 닭 수십억 마리가 함께 살아가는 현대에 이르기까지, 인간은 자연을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파괴해 왔다. 그러나 인간이 이 세상에 태어나기 이전에도 엄청난 규모의 자연적 사건들에 의해 환경이 파괴돼 왔기 때문에 인간의 행위만이 생물 멸종의 원인은 아니다.

 우리가 지금 경험하는 자연의 변환은 규모와 속도 면에서 심각한 관심거리이지만, 그것은 회복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과거의 그것과 다르다. 인간이 창조한 윤리도 합성된 분자와 같이 철저하게 ‘비자연적인’ 것이지만, 바로 그것 때문에 화학자들은 새로운 합성 분자가 일으킬 수 있는 위험성에 대해 심각히 고려하게 되었다.

 인간은 본연의 탐구심을 버릴 수 없다. 따라서 새로운 분자를 합성하려는 노력 또한 계속될 것이다. 하지만 인간이 창조한 윤리의 식은 그 노력의 결과물에 대한 적절한 고려와 대책을 강구케 할 것이다.
번역ㆍ李悳煥 (서강대 교수ㆍ화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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