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회 선거는 ‘중간 평가’
  • 런던ㆍ한준엽 통신원 ()
  • 승인 1994.07.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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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보수당 대패…프랑스, 우파연합 분열 심화…독일, 콜 총리 순항



 최근 임기 5년인 대표 5백67명을 뽑는 유럽의회 선거 결과 전체 의석에서는 좌파가 우세를 보였으나 프랑스를 비롯한 주요 국가에서는 우파 정당이 승리를 거두었다. 우파 정당의 약진은 프랑스ㆍ이탈리아ㆍ독일ㆍ스페인에서 분명하게 나타났다. 그러나 영국에서는 존 메이저 총리의 보수당이 28% 득표에 그치면서 44%를 얻은 노동당에 대패해 이번 유럽의회 선거에서 가장 큰 피해자가 됐다.

 유럽의회 선거는 각 나라에 배정된 의석수만큼 의원을 뽑은 것이지만, 직접 선거인데다 모든 정당이 후보를 낸다는 점에서 사실상 각 나라의 총선과 같은 성격을 띤다. 그 때문에 6월9일, 12일에 각각 치러진 이번 선거는 현정권에 대한 신입투표 성격을 띠기도 했다. 영국ㆍ프랑스ㆍ독일의 선거 결과와 전망을 진단한다. <편집자>

영국
 영국은 이번에 유럽의회 선거에서 스페인과 함께 집권당이 대패한 나라다. 존 메이저 총리가 이끄는 집권 보수당은 28%를 얻어 전체 87 의석 가운데 겨우 16석을 차지한 반면 야당인 노동당은 44% 득표율에 무려 62석을 확보했다. BBC 방송은 메이저의 참패를 ‘정치 지진’이라고 표현했을 정도다. 다시 말해 영국 국민들은 사실상 총선 성격을 띤 이번 선거에서 노동당을 선택했다고 볼 수 있다.

 반면 제3당인 자유민주당은 16% 득표율을 기록해 2석을 확보함으로써 겨우 유럽의회에 진출하는데 성공했다. 이는 유럽 통합에 연방주의 정강을 기치로 내세운 것이 화근이 됐다는 분석이다. 섬나라 영국 국민들은 유럽 통합이라는 명분에서 찬성하면 혹시나 영국 고유의 전통과 문화가 ‘유럽합중국’에 흡수돼 유실되지 않을까 걱정해왔다. 그 대문에 유럽 통합에 남다른 열성을 보여온 자유당의 정강에 냉담한 반응을 보여왔다.

 높은 실업률과 복지 정책의 실패로 가뜩이나 곤경에 빠진 메이저의 보수당 정부는 이번 선거 결과 집권 15년 만에 최대 위기에 빠졌다. 그가 오는 10월 보수당 총재 선거 이후에도 영국의 총리로 건재할지는 불투명하다. 특히 보수당내 반메이저 세력은 이번 참패를 기회로 메이저의 실책을 집중 공략해 그의 입지를 약화시킨다는 전략이다. 그가 10월 총재 선거에서 물러난다면 역시 총선 실패로 79년 물러나야 했던 마거릿 대처 전 총리의 전철을 밟는 셈이다.

 불만에 찬 보수당 지도부는 메이저 인책론을 꺼내기 시작했다. 일부 불만 세력은 메이저가 이번 선거에 패배한 책임을 지고 물러나거나 아니면 내각을 전면 개편하라고 요구했다. 유럽 통합을 적극 지지하는 당내 세력은 메이저 총리가 통합 반대파의 비위만 맞추고 잇다는 비난하는 반면, 통합 반대파들은 다소 느긋한 형태의 유럽 통합을 지지해온 메이저 총리의 입장을 두둔하고 나서 당내 분열상마저 드러냈다.

 현재 독일과 프랑스는 유럽이 경제 통합에 이어 궁극적으로는 정치 통합도 이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메이저 정부는 유럽 통합의 속도와 방법을 각 주권국의 국내 사정에 맞추어 조절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메이저 총리는 유럽연합의 권한이 너무 커져 결과적으로 각 회원국의 주권을 침해하는 것을 우려한다. 덴마크도 이에 동조하고 있다.

 메이저 총리는 97년 3월로 예정된 의회 선거 전에는 총리 직에서 물러날 뜻이 없음을 분명히했다. 그는 “이번 선거에서 보수당이 패배한 것은 지난달 존 스미스 노동당 총재의 사망에 따른 동정표가 몰렸기 때문이다”라며 애써 노동당 약진의 의미를 축소하려 했다.

총선 승리 점치는 노동당
 이번 선거에서 제1야당인 노동당은 보수당을 훨씬 앞지른 득표율을 보여 잔치 분위기에 싸여 있다. 이번 선거 결과가 79년 집권한 보수당의 기세에 눌려온 노동당이 패배 분위기를 인신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는 자평이다. 이번 선거의 패배로 가속되고 있는 보수당의 분열상이 빨리 수습되지 못할 경우 96년이나 97년께로 예정된 총선에서 노동당이 승리할 가능성을 그만큼 높아진다.

 특히 노동당 후보들은 남부 지역의 보수당 아성 지역에서 대부분 보수당 후보를 누르고 승리함으로써 다가올 총선에 집권할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노동당 선거 사령탑인 잭스트로는 “유권자들은 루비콘 강을 건넜다. 중요한 것은 바로 그 점이다”라고 말했다.

 노동당의 대약진은 지난 5월 존 스미스 총재의 작고로 공백이 된 지도체제를 새로 구성하는 데도 활력을 줄 것으로 보인다. 현재 노동당 총재 경선에는 4명이 후보로 나선 상태이나, 국내 담당 대변인인 토니 블레어가 가장 유력한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당내 현대화주의자로 불리는 블레어가 당권을 잡을 겨우, 그는 노조의 지나친 반발을 사지 않는 선에서 노동당의 가치와 원칙을 시대에 맞게 대폭 수정하겠다는 지론을 강력하게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런던ㆍ韓準燁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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