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강사도 노동자”
  • 오민수 기자 ()
  • 승인 1994.07.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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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강사노동조합, 노조 설립 신고필증 받을 듯



 자본주의 사회에서 급료를 받는 피고용자는 다 노동자이지만, 적어도 한국 사회에서 선생님은 노동자가 아니었다. 어찌 그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스승을 노동자 따위로 전락시킬 수 있느냐는 것이 지금까지 정부와 언론이 줄곧 내세운 근거였다. 전교조의 발목을 잡는 논리도 바로 이것이다. 정치적으로 그 논리는, 스승은 노동자가 아니기 때문에 노동조합 설립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논리로 바뀐다. 후기산업사회를 구가하는 이 시대에, 정부 부처 중에서도 선생님을 ‘관리’해야 할 처지인 교육부는 싸움터에 내몰릴 때마다 유교적 전통을 무기로 삼아 왔다.

 과연 선생님은 노동자인가, 아닌가. 80년대 이후 전교조와 교육부가 충돌을 불하고 있는 이 전선은 엉뚱하게도 대학의 시간강사들에 의해 허물어질 것 같다. 대학 교육의 절반을 떠맡고 있는 시간강사가 공식적인 ‘노동자로’로 국가의 인정을 받을 듯하기 때문이다. 법외 노조로서 시간강사들의 권익을 꾀하고 대학의 민주적 운영을 외쳐온 전국대학강사노동조합(전강노)이 오는 7월 초 노동부로부터 노동조합 설립 신고필증을 받을 예정이다.

 지난 6월20일 전강노 사무실에 노동부장관 명의로 공문이 한 장 날아왔다. 제목은 노동조합 설립 신고서 보완 요구. 내용은 전강노 설립 목적이 나와 있는 대학 교육과 사회의 민주화 따위 선언적인 문장을 지우고, 근로조건 개선과 복지증진 또는 사회ㆍ경제적 지위 향상 도모 등 노동법이 명시한 노동조합 설립 목적에 맞도록 자체 규약을 정리해 달라는 것이다. 전강노로선 노동부의 이런 요구를 들어주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래서 대의원을 소집해 노동부의 요구대로 설립 목적의 일부 조항을 없앴다.

전교조 문제에 영향 미칠 전망
 노조 설립에 대한 노동부의 보완 요구라는 것이 ‘보완하면 받아들이겠다’는 뜻으로 해석되는 관례상 전강노에 대한 법적 인정을 기정사실이나 다름없다. 노조설립 신고를 받아들이지 않겠다면, 노동부는 흔히 노조 설립 신고서를 반려하기 마련이다.

 지금까지 전강노가 노동부에 제출한 노조 설립 신고서는 번번이 반려되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반려가 아니라 보완 요구였다는 점에서 전강노는 현재 매우 고무되어 있다. 노동부 공문에 따르면, 전강노는 7월11일까지 지적사항을 보완한 규약을 첨부해 노조 설립 신고서를 제출해야 한다. 전강노 6월 말 또는 7월 초에 모든 ‘형식적 절차’를 끝내겠다는 태세다. 법적으로 보완한 신고서를 받은 노동부는, 접수한 날로부터 3일 이내에 확답을 해줘야 한다. 따라서 7월 초에 선생님이 노동자이지 아닌지가 정부에 의해 판가름날 예정이다.

 이와 관련해 노동부 담당자는 “진행중인 사안이라 어떤 얘기도 할 수 없다”고 말했지만, 현재 분위기로 봐서는 노조 설립 신고필증을 발급하지 않으면 오히려 문제가 커진다는 것이 전강노측의 설명이다. 만약 막판에 노동부가 꼬투리를 잡아서 노조 설립을 막는다면, 전강노는 이 문제를 법정으로 끌고갈 수밖에 없는 결의를 다지고 있다. 한마디로 무슨 일이 잇더라도 이번 기회에 법외 노조의 설움을 씻고 합법 노조로서 거듭나겠다는 것이다. 시간강사들 처지에서는 그렇지 않아도 할 일이 태산이기 때문에 노동부와 기나긴 줄다리기를 끝내고 다른데 힘을 쏟아야 할 형편이다.

 시간강사들은 이번에 노동자로 인정을 받더라도 법적으로 아직 교원은 아니다. 교육법 73조 교원에 관한 규정에, 대학원생들이 맡는 조교조차 교원에 포함되어 있지만 시간강사는 제외되어 있다. 교육부의 지표상으로도 이미 대학 교육의 절반을 시간강사가 떠맡고 있는 현실에서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 법조항이다.

 여하튼 그 법으로 볼 때 대학의 시간강사는 노동자도 아니고 선생님도 아니었다. 그런 의미에서 전강노는 전교조와 정반대 길을 걷고 있는 셈이다. 즉 전강노가 노동조합의 지위를 획득한 후 교원 자격을 따내는 수순을 밟고 있다면, 전교조는 구성원들이 교원이기 때문에 노동조합으로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전강노에 대한 법적 인정은, 노동법 독소조항 개정을 둘러싸고 공방전이 치열한 노동계와 전교조 문제가 여전히 숙제로 남아 있는 교육계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 같다.
吳民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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