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지로 만나는 ‘한국미’
  • 신찬균 (문화재위원) ()
  • 승인 1994.07.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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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우 유고집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兮谷 崔淳雨의 삶은 그 자체가 ‘우리의 아름다움’이었다. 한국 미술이 지닌 멋을 찾아 평생 박물관에서 일했다는 사실말고도, 끊임없이 글을 써서 우리 문화재를 알리고 이해시키는 등 식민지 사관 굴절된 한국미를 바르게 정리한 선각자였다. 금년은 혜곡이 작고한 지 10년이 되는 해다. 또 그의 스승 又玄 高裕燮의 50주기가 되는 해이기도 하다.

 때맞춰 최순우의 글모음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가 ≪崔淳雨全集≫을 낸 적이 있는 도서출판 학고재에서 나왔다. 건축ㆍ공예ㆍ도자기ㆍ회화 등 미의 세계 전반에 걸친 혜곡의 글은, 우리 것에 대한 깊은 사랑을 가슴에 새기게 하고 한국미에 대한 눈을 뜨게한다. 또 자칫 현학에 흐르기 쉬운 전문가의 고집이나 우(愚)는 찾을 수 없고, 저자의 성격처럼 담담하게 한국의 미를 전한다.

 혜곡은 한국인, 그 가운데서도 지식인이라고 칭하는 인사들이 우리의 문화재를 미를 잘못 평가하는 것을 매우 가슴 아프게 생각했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내 책임’이라고 괴로워했다. 한번은 언론인을 위해 한국미를 강의했는데, 어느 기자가 “이탈리아 문화재에 비해 한국 문화재는 왜소하고 연대도 뒤떨어지지 않느냐”고 질문하자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면서 이렇게 타일렀다. 한국의 미는 순리의 아름다움과 담조의 아름다움이 있고 익살의 아름다움도 빼놓을 수 없다고. 그는 가장 중요한 특징을 분수에 맞는 아름다움이라고 보았다. 광화문이 북경의 천안문보다 작아서 규모에 압도되어 미의 본질을 흐리게 하지만, 그 나라의 미란 그 고장의 자연 표정이고 몸짓이며 숨결이듯이 미도 분수를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혜곡은 그의 글 <한국의 산책>에서 우리의 미술과 건축미에 나타난 자연관을 통해 한국미를 찾고 있다. 또 <고요한 익살의 아름다움>에서는 김두량의 <가려운 데 긁는 개>에 나타난 익살스러운 표현과, 고려 청자가 지닌 가늘고 긴 곡선을 대조시켜 스스로 마음이 조용해지거나 홀로 실소를 자아내게 하는 한국미를 생각하게 한다.

 이 책에서는 惠園의 풍속화(현재 국보로 지정된 것)를 폭넓게 해설해서, 최근 화제를 모았던 새 속화첩(俗?帖)에 대한 감상에도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혜원의 인물 묘사를 보면 ‘가늘고 긴 기교적인 묘선이나 또는 일부에 점선을 써서 간결하고 매끈한 특유의 분위기를 보인다’는 것이다. 산수화에 조촐한 솜씨를 보인 혜원의 풍속화는 이 정도에 그치지만 인물ㆍ풍속의 배경 처리나 화명 포치의 원숙함은 만만치 않았다. 혜곡은 혜원의 작품 11점 모두를 작품평 형식으로 풀이했다.

 鄭良謨 국립중앙박물관장은 “여기 실린 글을 읽으면 우리나라에 태어난 데 대한 고마움과 즐거움으로 가슴 가득 긍지와 자부심을 갖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생활 하나하나 한국미의 실천이고 교훈이어서 자택조차 조선조 선비의 모습을 옮겨다 놓았고, 집무실을 사랑방처럼 꾸몄던 혜곡의 몸가짐이 그립다.
申瓚均 (문화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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