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反 오자와‘ 정략 결혼
  • 도쿄 · 채명석 편집위원 ()
  • 승인 1994.07.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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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자민 · 사회 불안한 연합 … 북한과 관계 변화 예상



‘야합 정권’ ‘정략 결혼’ ‘일본의 중대 위기’. 일본 언론들은 47년 만의 사회당 출신 총리 탄생을 이렇게 보도했다. 어느 신문은 아예 ‘일본은 이제 끝장이 났다’는 극한 표현을 서슴지 않았다.

 거리의 표정도 엇비슷했다. 50대인 한 남성은 “역사의 수레바퀴가 역회전했다”라며 분노를 감추지 않았다. 20대인 여성은 “어떤 여자와 잔들 웬 참견이냐는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郎)의 발언을 물고늘어진 자민당과 사회당이 위장 결혼한 셈”이라고 냉소했다.

 자민당과 사회당 그리고 신당 사키가케(先驅)의 정략 결혼이 그만큼 충격적인 일인가. 사실 사회당은 연립 여당에 복귀할 가능성이 더 큰 것처럼 보였다. 이전부터 자민당과 사회당은 ‘물과 기름’이었기 때문이다.

 잘 알려진 대로 자민당과 사회당은 이른바 ‘55년 체제’의 산물이다. 당시의 사회당은 좌파와 우파 간의 끝없는 이념 투쟁으로 분열 상태에 빠져 있었다. 그러다가 55년 10월 좌우가 다시 손을 잡았다. 이에 위기감을 느낀 자유당과 민주당은 한달 뒤 자민당을 결성했다.

 보수화 혁신 세력이 각각 대동단결한 이 체제가 바로 ‘55년 체제’이다. 그뒤 자민당은 만년 여당으로, 사회당은 만년 야당으로 사사건건 대립과 싸움을 거듭해 왔다. 자위대, 일 · 미 안보조약, 원자력 발전, 한반도 문제에서 두 당은 ‘물과 기름’과 같은 정책을 주장해 왔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지금의 자민당과 사회당은 이미 그 때의 모습은 아니다. 자민당은 작년 7월 총선거에서 과반수 획득에 실패하여 38년 만에 야당으로 전락했다. 이에 따라 당이 사분오열돼 일부는 딴 살림을 차려 나갔다. 현재의 신생당 · 사키가케 · 신당 미라이 · 자유당이 모두 자민당에서 분가한 정당이다.

사회당 총리 등장 주변 국가들에도 악재
 자민당 잔류파도 결코 한 마음은 아니다. 이전의 파벌은 응집력을 잃은 지 오래다. 게다가 현재의 총재 고노 요헤이(河野洋平)는 자민당과 이혼했던 전력 때문에 당의 결속을 주도할 지도력이 있는 것도 아니다. 고노 총재는 이른바 ‘록히드 사건’이 터지자 깨끗한 정치를 표방하며 자민당을 탈당하고 신자유클럽을 결성했던 인물이다. 그러다가 당세가 약해지자 다시 자민당에 복귀했으나, 당시의 자민당 실력자 오자와는 당을 뛰쳐나간 전력을 문제삼아 그가 대신이나 당직에 기용되는 것을 적극 방해했다.

 그러다 숙적 오자와가 자민당을 탈당해 신생당을 창당하자 그에게도 행운이 찾아왔다. 깨끗한 이미지, 반 오자와라는 점이 평가되어 작년 7월의 총선거를 지휘할 사령탑으로 기용된 것이다. 일본 언론들은 총재로 취임한 그를 당시 ‘빈집의 얼굴 없는 주인’에 비유했다. 이번의 총리 선거에서 가이후 도시키(海部俊樹) 전 총리가 연립여당의 후보로 나선 것이나,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구 · 와타나베 미치오(渡邊美智雄) 등 자민당 실력자들이 당의 방침을 무시하고 가이후 후보에게 찬표를 던진 사실이 그가 빈집의 주인이라는 것을 여실히 증명하고 있다. 정치 평론가 진 잇코(神一行)는 “자민당과 사회당의 정략 결혼을 55년 체제가 부활한 것으로 보는 것은 잘못된 시각이다”라고 지적한다. 올데갈데 없는 자민당 잔류파가 정권을 빼앗기 위해 염치불구하고 사회당과 손을 잡은 단순한 야합에 불과하다는 얘기이다.

 두 당의 정략 결혼을 가능케 한 또 하나의 요인은 ‘반 오자와’라는 촉매이다. 앞서 말한대로 고노 총재는 오자와가 홀대해 출세가 늦어진 인물이다. 때문에 그는 오자와를 ‘권력주의자’ ‘미니 초대국 노선을 지향하는 인물’이라고 늘상 비난해 왔다. 자민당 잔류파도 반 오자와 성향을 지닌 정치가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일본 언론들은 이번 정변을 ‘질투와 원한의 싸움’이라 부르고 있다. 정책의 일치보다는 반 오자와라는 공통분모가 있었기 때문에 물과 기름 격인 자민당과 사회당이 손잡게 되었다는 얘기이다.

 반 오자오라는 점에서는 사회당도 마찬가지이다. 오자와는 자민당 간사장 시절 참의원의 여소야대 현상을 해소하기 위해 사회당 · 공명당과 제휴를 꾀한 적이 있다. 그의 정치적 후견인이었던 가네마루 신(金丸信)은 다나베 마코토(田邊誠) 당시 사회당 부위원장과의 인연으로 자민 · 사회 연립을 주장했던 반면, 오자와는 공명당과 연립을 모색했었다.

 이러한 오자와의 정계 개편 구상은 자민당 정권이 무너지고 연립 정권이 등장한 뒤로 더욱 표면화했다. 8당 연립 정권을 운영하는데 제1 여당인 사회당보다는 공명당을 더 편애하여 늘상 사회당을 제외하고, 국회 교섭단체 ‘개신’을 구성한 것도 바로 그러한 오자와의 정계 개편 구상에서 나온 발상이었다. 이 때문에 사회당은 연립 정권 복귀를 주장하는 우파와 자민 · 사키가케와의 연립을 주장하는 좌파가 극한 대결을 벌였으나, 결국 반 오자와라는 흐름이 대세를 이루어 연립 정권 복귀보다는 자민당과 연립을 선택하기에 이르렀다.

 신당 사키가케가 연립 정권에 참가한 것도 똑같이 반 오자와 성향 때문이다. 사키가케의 다케무라 마사요시(武村正義) 대표는 호소카와 모리히로(細川護熙) 내각의 관방장관 시절 오자와와 치열하게 권력 투쟁을 벌였던 인물이다. 이 때문에 다케무라는 하타 쓰토무(羽田孜) 연립 정권에 참가하기를 거부하고 사회당과 연대를 모색해 오던 참이었다.

 이렇게 보면 일본 정국은 이제 자민 대 비자민 구도가 아니다. 더욱이 개혁 대 비개혁 세력의 싸움도 아니다. 단지 오자와 대 반 오자와의 싸움이 끝없는 정변을 불러일으키고 있을 뿐이다. <아사히 신문>은 제3차 연립 정권의 출범을 ‘오월동주(?越同舟)’라고 비유했다. 사회당의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위원장이 제 81대 총리로 선출되자 엔시세가 98엔대로 치솟고 주가도 큰폭으로 떨어졌다. 사회당 총리의 등장을 큰 악재로 받아들인 것이다.

 우선 물과 기름 격인 자민당과 사회당의 정책을 어떻게 일치시켜 가느냐는 것이 큰 문제이다. 자민 · 사회 · 사키가케 3당 당수는 지난 30일 오후 이번 연립 정권의 성격을 ‘민주적 온건파 정권’으로 규정했다. 유엔평화유지활동(PKO) 등 국제 공헌에서 될 수 있는대로 비군사 부문에 한정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반도 문제, 미 · 일 경제협의 등 당면과제에 어떻게 대응해 가겠다는 합의는 아직 없다. 때문에 사회당 총리의 등장은 일본 국내뿐 아니라 주변 각국에도 큰 악재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정책 계속성 부재 … 과거문제 돌출될 수도
 10개월 만에 세번이나 정권이 바뀐 것도 큰 문제이다. 예를 들어 한 · 일 양국은 7월2,3일께 제주도나 해운대에서 정상회담을 열기로 잠정 합의한 상태였다. 그러나 회담을 불과 1주일 앞두고 총리가 교체됨에 따라 이 계획은 불발로 끝났다. 정책의 계속성이 유지되지 않는 것도 문제이다. 호소카와 전 총리는 ‘과거의 전쟁은 침략 전쟁이었다“고 규정했다. 그 때 호소카와의 발언을 국회에서 끈질기게 물고늘어진 것은 다름 아닌 자민당 소속 국회의원들이었다. 만약 앞으로 자민당 각료가 ’과거의 전쟁은 정당방어를 위한 자위행위였다”고 주장한다면 과거사 문제와 결별을 선언한 우리 외무부는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사회당 총리가 등장했어도 자민당이 주요 각료 직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한 · 일 관계는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관측이다. 또 작년 9월에 당시의 야마하나 사다오(山花貞未) 사회당 위원장은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해 ‘한반도 정책의 균형’을 약속한 바 있다.

 그러나 사회당은 지난 30여 년간 북한의 ‘최대 우당’임을 자처해온 정당이다. 그 때문에 사회당은 북한을 제재하려는 움직임에 대해 적극 반대 의사를 표명해 왔다. 무라야마 총리는 지난 1일 김대통령과 전화 통화에서 “나폴리 7개국 정상회담에서 한국의 주장을 고려해 일본의 입장을 개진하겠다”라고 약속했다. 그러나 북한 핵 문제가 해결되지 않더라도 사회당은 또다시 제재 반대를 적극 주장할 것이 예상된다. 이 경우 무라야마 정권은 자민당과 충돌해 결국 자민 · 사회 연립 정권은 붕괴의 길을 걷게 될 것이다.

 또한 일 · 북한 관계에 물꼬를 튼 90년 9월의 ‘3당 공동선언’을 주도한 정당이 바로 자민당과 사회당이다. 따라서 남북 정상회담 개최, 미 · 북한 고위급회담 재개와 맞물려 사회당 총리가 탄생했다는 것은, 재작년 11월 제8차 회담을 끝으로 중단 상태에 빠진 국교 정상화 교섭이 큰 전기를 맞고 있음을 예고한다. 게다가 대장성 장관에 임명된 사키가케의 다케무라 대표는 일본 정계에서 이른바 ‘북한 커넥션’으로 지목되고 있는 사람이다. 사가현 지사 시절 북한을 수 차례 방문해 김주석과도 단독 회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한 그가 돈줄을 쥐고 있는 대장성 장관에 임명되었다는 것은 일 · 북한 수교 회담의 큰 걸림돌인 배상과 보상 문제가 타결되는 데 큰 도움이 될 수도 있다.
 15개 정파가 단지 오자와 대 반 오자와라는 2분법에 따라 이합집산을 거듭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일본 정치의 현주소이다.
도쿄 · 蔡明錫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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