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주의 理想은 살아있다”
  • 모스크바 · 김창진 통신원 ()
  • 승인 1991.09.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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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蘇 노다리 시모니아 IMEMO 부소장/“고르비의 위신 실추시키면 곤란”

소련의 ‘3일천하’ 쿠데타가 실패로 끝난 지 1주일째 되는 8우러28일 오전 소련과학아카데미 산하 ‘세계경제 및 국제관계연구소’(IMEMO)로 노다리 시모니아 부소장을 찾아갔다. 22층이나 되는 거대한 이 연구소의 1층에서는 최근 사퇘와 향후 소련의 진로를 둘러싸고 격론이 오가고 있는 최고회의 광경이 텔레비전을 통해 중계되고 있었다. 약 2시간 동안 계속된 인터뷰에서 소련 역사학의 태두이자 개혁주의자인 시모니아 교수는 다소 상기된 표정을 띠며 정열적으로 현재 상황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셰바르드나제에 야코블레프가 공산당을 탈당하면서 이미 경고한 것처럼 보수파는 상당 기간 동안 쿠데타를 준비해왔을 텐데 왜 그렇게 어이없는 실패의 단막극으로 끝나게 되었다고 보십니까?
많은 사람들이 쿠데타군의 탱크를 시민들이 맨몸으로 막았기 때문에, 다시 말해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인민의 강인한 저항 때문에 쿠데타는 실패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가장 중요한 이유는 아니라고 봅니다. ‘배신자들’(쿠데타 주동세력)은 수천, 수만의 인명을 희생시키면서도 자신들이 권력을 탈취하면 된다고 생각한 자들입니다. 그 때문에 이번 쿠데타 자체에 뭔가 문제가 있었다고 봐야 합니다. 첫째 그들은 현직 대통령인 고르바초프로부터 쿠데타에 대한 승인을 얻지 못했습니다. 고르비가 그들의 압력을 거부함으로써 배신자들은 쿠데타에 대한 정치적 정통성을 확보하지 못했습니다. 둘째 쿠데타를 사전에 예상하지 못하고 고르비에게 계속 개혁압력을 가하면서 일견 정치적 중립을 취해온 외국 여러 나라가 쿠데타 이후 그것을 승인하지 않고 단호하게 비판함으로써 그들은 완전히 고립되었습니다. 셋째 여러 다른 나라의 사례와 비교해볼 때 이번 쿠데타는 기술적인 면에서 극히 원시적이었습니다. 쿠데타에 저항할 것이 분명한 옐친 등의 주장이 담긴 언론매체들이 공공연하게 활동을 계속했습니다. 또한 쿠데타의 지도자가 분명하게 부상하지 않았습니다. 세상의 어떤 쿠데타가 집단지도체제로 성공할 수 있겠습니까. 소련 사회는 이미 변했는데 그들은 과거의 방식이 적용될 수 있으리라고 오판했습니다.

●대통령직에 복귀한 고르바초프의 정치적 위상은 어떻게 될 것으로 보십니까?
쿠데타 이전에도 고르비는 대중들에게 인기가 없었습니다. 쿠데타 직후 그가 연금상태에 처해 있다고 보도되면서 인기가 30% 정도로 상승했지만 옐친의 인기는 훨씬 더 높아졌습니다. 고르비는 옐친그룹을 별로 신뢰하지 않습니다. 옐친은 급부상한 자신의 위상을 기반으로 연방정부에 대한 러시아공화국의 주도권 행사를 강하게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요구가 다 관철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러시아공화국의 독주에 대한 다른 공화국들의 견제도 만만치 않기 때문입니다. 이같은 움직임은 결과적으로 고르비의 위상 회복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고르바초프는 대통령직에 복귀한 직후 ‘사회주의 고수’를 천명했습닌다. 그리고 며칠 후 공산당은 해체됐습니다. 이 문제를 어떻게 봐야 할는지요.
고르비는 죽을 때까지 사회주의를 고수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말하는 것은 스탈린식 사회주의가 아닙니다. 그리고 이제 와서는 레닌식의 사회주의라고도 말하기 어렵습니다. 아마도 민주주의적 사회주의라고 말할 수 잇을 것입니다. 그리고 소련공산당의 몰락과 사회주의의 몰락은 동일한 문제가 아닙니다. 소련에서는 스탈린식 사회주의가 몰락한 것이지 사회주의적 이상마저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부소장님도 공산당원이었습니까?
그랬었지요. 그러나 지난 19일 쿠데타가 일어나던 날 나는 텔레비전에서 그 배신자들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자리에서 공산당을 탈당하기로 결심하고 탈당서를 작성해 20일 아침 제출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사회주의 이상을 고수할 것입니다.

●압도적인 대중적 인기를 누리고 있는 옐친이 고르비를 대신해 소련대통령이 된다면 지금까지처럼 각 공화국의 분리독립운동에 우호적인 입장을 견지할 수 있겠습니까?
내가 생각하기엔 그가 연방대통령이 되기는 어렵습니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연방의 유지에 찬성하는 각 공화국들은 옐친이 이끄는 러시아공화국을 경계의 눈초리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어제도 카자흐공화국과 키르기스공화국의 대통령이 연방대통령이 되려는 옐친의 야심에 강한 거부감을 표시했습니다. 연방조약이 다시 손질되고 잇는 것이 그것을 반영합니다. 서방측의 언론이나 또는 국내외 많은 사람들이 옐친을 민주주의자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그는 민주주의자가 아니라 민중주의자입니다. 여러 공화국에서도 이런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의 주장은 그럴 듯해 보이고 매력적이지만 현실성이 없습니다. 라틴아메리카의 여러 나라와 인도네시아, 그리고 쿠바에서 본 바와 같이 민중주의자가 이끄는 나라는 권위주의체제로 귀결되기 쉽습니다.

●쿠데타 이전에 공산당을 탈장한 셰바르드나제나 야코블레프는 ‘민주개혁운동’이라는 정치결사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공산당 내에 잔류했던 개혁파들은 ‘좌파 민주당’을 논의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정치노선 사이에 어떤 차별성이 존재하는지요?
야코블레프나 셰바르드나제가 이끄는 ‘민주개혁운동’은 소련 사회의 점진적 민주화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고르바초프도 그것을 이해하고 있으며 도와주고 있습니다. 앞으로 있을 수 있는 정치판도의 변화는 다음과 같이 예상할 수 있습니다. 첫째 고르비가 새로운 자신의 당을 만드는 것, 둘째 현재에도 여러 세력이 섞여 있는 ‘민주개혁운동’과 협조적인 노선을 견지하는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고르비가 새로운 정당을 만들지 않고 ‘민주개혁운동’이 공식적인 정당으로 출범하면 거기에 가입하는 것 등입니다. ‘오늘’ 고르비는 이 세가지 가능성 모두를 추구할 수 있지만 ‘내일’은 그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것입니다. 이 선택의 과정에서 고르비는 셰바르드나제와 자신의 견해가 다르다는 사실을 고려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그들 사이의 정치노선에 어떤 원칙적인 차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다만 개성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요.

●소련 내 보수파를 상징하는 세력으로 알려진 ‘소유즈 그룹’의 견해에 대한 다신의 생각은 무엇입니까? 그들은 옐친은 물론이거니와 공산당 내 개혂파들의 노선에 대해서도 비판적이지 않았습니까?
그렇습니다. 그들은 소련 사회의 급속한 개혁에 두려움을 느끼면서 ‘자본주의의 부활’을 경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고수하는 사회주의란 무엇입니까. 이미 소련 인민은 그들의 정체를 똑똑히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이번 쿠데타를 주동한 배신자들과 같이 있었습니다. 이제 쿠데타가 실패하니까 최고회의에서 자신들은 이번에 아무것도 안했다고 변명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지난 1년 동안 쿠데타를 준비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부소장님의 설명으로부터 받는 느낌은 “이제 소련에서도 자본주의를 발전시켜야 한다”는 생각이 바탕에 깔려 있는 것 같은데요.
그렇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자본주의의 원시적 축적기로부터 국가독점 자본주의에 이르는 모든 시기를 순차적으로 밟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현단계에서는 국가자본주의를 발전시키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자본주의의 고도의 발전이 곧바로 사회주의로의 이행을 보장해줄 수 있을까요. 미국이나 일본, 독일사회에서 지금 사회주의가 발전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비유를 하나 들어보죠. 나는 한국에 몇번 갔다왔는데 한국에서는 어머니의 뱃속에 든 태아도 하나의 엄연한 생명체로 간주하더군요. 그래서 아이는 세상에 태어나자마자 나이를 한살 먹더군요. 당신이 지금 제기한 문제도 같은 방식으로 답변할 수 있습니다. 고도로 발전된 자본주의사회에서는 그 내부에 이미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적으로 사회주의적 요소를 키우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소려에서 자본주의의 발전으로 인한 여러 구조적 병폐-높은 실업률 · 인플레 · 빈부격차 · 사회범죄-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다고 보십니까?
‘사회주의 소련’에서도 인플레나 사회범죄가 있었습니다. 은폐하는 것과 존재하지 않는 것은 다릅니다. 지금 소련 사회에서 가장 큰 문제는 사람들이 노동의욕을 상실했다는 점입니다. 이곳에는 자원도 많고 할 일도 많습니다. 실업은 크게 문제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스웨덴처럼 사회보장제도의 유지는 앞으로 반드시 필요합니다.

●앞으로의 소련 정치를 전망해주십시오.
고르비의 위신을 실추시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야코블레프는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는 훌륭한 사람이므로 잘해나갈 것으로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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