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주의 재해석 ‘활발’
  • 김호균 (정치경제학 박사 전 본주재 통신원) ()
  • 승인 1991.09.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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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올로기 고수 등 세 갈래… 非레닌주의적 학자 중심 연구가 주류될 듯

마르크스의 고향 독일에서 마르크스주의는 현실사회주의의 붕괴에 따른 위기를 극복하지 못하고 급속히 퇴조하고 있다.

국가적 지원이 하루아침에 없어지자 그 허약한 실체를 여지없이 드러내고 있다. 싼 값에 판권을 산 후 주로 동독책을 출판하던 ‘팔 루겐슈타인’ 출판사는 통일이 되자마자 문을 닫았다. 서독공산계의 마르크스주의연구소도 지금은 이름만 남아 잇을 뿐이다. 10여년 전부터 동독공산당의 마르크스 · 레닌주의연구소가 소련공산당의 마르크스 · 레닌주의연구소와 공동으로 출판하던 1백여권 분량의 ‘마르크스 ·엥겔스 총집’(MEGA)은 지금까지 절반 가량만 출간되었는데 완간될 수 있을지 미지수이다.

마르크스 · 레닌주의에 기초했던 현실사회주의의 붕괴를 목격하면서 마르크스 · 레닌주의자들은 여러 가지 반응을 보이고 있다. 동서독의 마르크스 · 레닌주의자 중 상당수에게 마르크스 · 레닌주의는 신념이나 세계관이라기보다 출세를 위한 수단이었다.

휴가철이면 동독공산당의 지원을 받아 동독 휴양지에서 휴가를 보내면서 현실사회주의의 이념으로서 마르크스 · 레닌주의를 옹호하던 이들은 사회주의 세계체제가 몰락하자 부랴부랴 옷을 갈아 입기에 바쁘다. 서독 공산당의 의장단의 일원이던 페레 슈트는 지난 7월초 <프랑크푸르트 알게마이네>지에 기고한 글에서 ‘어용시인’으로부터 ‘생쥐’로 변한 자신의 모습을 비교적 담담하게 기술하고 있다. 이 글에서 그는 1976년 동독의 저항가수 볼트 비어만이 공산당을 비판하다가 서독으로 추방되었을 때, 이에 항의하는 편지에 서명하자 서독 공산당이 당기위원회를 열어 자신을 감금하고 서명취소를 강요했던 사실을 폭로했다. 또한 그는 자신이 고르바초프를 지지하자 당시 동독공산당 이데올로기 담당 정치국원이던 쿠르트 하거의 명령을 받은 ‘팔 루겐슈타인’ 출판사가 자신의 저서를 한꺼번에 돌려보냈을 뿐만 아니라 밤늦게 전화를 걸어 “죽여버리겠다”고 심리테러를 한 사실을 폭로하면서 “당이 권력을 잡지 않은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모르겠다”고 술회하고 있다.

하버마스의 소통이론에 경도
마르크스 · 레닌주의를 포기하는 많은 사람들에게는 자본주의로 적당히 개혁하는 것이 유일한 대안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들과는 달리 마르크스 · 레닌주의는 포기하되 자본주의를 뛰어넘으려는 학자들은 위르겐 하버마스(1929~ )의 소통이론에 일방적으로 경도되기도 한다. 이 이론은 서독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비공산계 사회주의자들에게 큰 영향을 끼치고 있었고 하버마스 자신도 사회주의자임을 자임하고 있다.

마르크스 · 레닌주의자들이 소통이론에 경도되는 것은 다른 의견에 배타적인 속성을 지닌 이데올로기를 거부하고 그 반대로 다른 의견이 내재적으로 전제되고 있는 이 이론을 거의 반사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으로 풀이될 수 있다. 마르크스의 ‘생산파라다임’을 ‘소통파라다임’으로 대체하려는 하버마스를 비판하면서 한스 페터 크류거는 마르크스주의적 소통이론을 제시하고 있다. 옛 동독 정부가 하버마스를 비판하는 여론 연구를 위해 서독으로 파견한 크류거는 마르크스에 대하 하버마스의 오해와 하버마스 소통이론의 약점을 비판함과 동시에 마르크스 · 레닌주의의 편협성도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청산주의적 분위기 속에서 그의 마르크스주의적 소통이론이 얼마나 큰 호응을 얻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청산주의자들과는 반대로 마르크스 · 레닌주의를 고수하려는 학자들도 있다. 이들도 원래는 페레스트로이카를 지지했으나 사회주의 세계체제가 몰락하자 그 책임을 고르바초프 개인에게 돌리고 있다. 이들의 태도변화는 소련의 셰바르드나제 전 외무장관이 그의 회고록에서 비아냥거리고 있는 보수적 공산주의자들의 모습을 연상시키고 있다.

제27차 소련공산당 대회에서 페레스트로이카에 대해 지도부의 결정이라는 이유만으로 기계적으로 열렬한 지지를 보였던 이들은 페레스트로이카가 진행되면서 자신들의 설 땅이 좁아지자 고르바초프를 비난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태도 변화는 고르바초프가 기회있을 때마다 강조했던 페레스트로이카의 혁명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페레스트로이카를 새로운 서기장이 등장할 때마다 외치던 개혁의 필요성 정도로 과소평가했음이 분명하다. 쿠데타 실패에 따른 소련 공산당의 급속한 해체는 독일 마르크스 · 레닌주의자의 설 땅을 더욱 가속적으로 좁힐 것이기 때문에 이들의 기관지인 <마르크스주의 블래터>는 멀지 않아 폐간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데올로기로써 마르크스 · 레닌주의는 버리면서 오늘날의 조건에 맞게 마르크스의 사상을 발전시키려는 학자들은 혼돈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서독의 대표적 유물론 철학자인 브레멘대학의 한수 요르크 잔트큘러 교수는 ‘마르크스 · 레닌주의-스탈린주의’라는 정식을 세울 뿐만 아니라 마르크스주의라는 개념도 버리고 마르크스의 사상을 하나의 ‘이론유형’으로 상대화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페레스트로이카가 소련에서 실패할지라도 마르크스의 사상을 현대화하기 위한 유일한 현실적 대안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정치적으로는 민주주의의 결여가 현실사회주의 몰락의 원인이었다는 점에 의견이 모아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회주의사회에서 자유민주주의는 폐기될 것이 아니라 더욱 확대 발전되어야 한다는 점이 인정되고 있다. 이 점에서 “자유란 생각이 다른 사람들의 자유이다”라는 로자 룩셈부르크의 말이 다시 부각되고 있다. 언론의 자유와 관련해서는 엥겔스가 당시 독일사회민주당 기관지 편집부를 향해 가한 “우리가 부르주아지로부터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는 것은 우리 내부에서 그것을 폐지하기 위해서가 아니다”라는 지적이 주목받고 있다.

최근 들어서는 안토니오 그람시의 시민사회론에 대한 관심이 크게 고조되고 있어 ‘그람시 전집’ 발간이 계획되었고 지난 3월말에는 베를린에서 독일의 모든 좌익잡지들이 공동으로 주최한 ‘그람시 심포지엄’이 열린 바 있다. 마르크스에 기초학도 있으면서도 마르크스의 시민사회 개념과는 일정한 차이를 보이고 있는 그람시의 시민사회론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것은 서구에서의 변혁전망은 물론 사회주의 국가론과 관련해 이 이론인 시사해주는 바가 많기 때문이다.

‘자본주위 전반적 위기론’ 사실상 폐기
경제학에서 자본주의 영향권이 끊임없이 줄어들고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 ‘자본주의 전반적 위기론’은 사실상 폐기되었다. 사회주의 경제이론과 관련해서는 사회주의 경제가 시장경제냐 계획경제냐를 둘러싸고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서독 공산당계의 마르크스주의연구소 소장을 역임한 하인츠 융은 마르크스 · 레닌주의를 고수하면서 “페레스트로이카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서방 시장의 풍부한 상품들이 독점 기업에 의해 생산된 것이라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고 비판한고 잇다. 이에 맞서 좌파 사회주의자 요아힘 비숍은 마르크스를 사장사회주의자로 해석하는 저서를 발표했다. 마르크스에게서 시장사회주의적 요소와 계획사회주의적 요소가 공종하고 있기 때문에 이 논쟁이 어느 한쪽의 승리로 끝나지는 않을 것이며, 시장과 계획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의 문제로 논쟁이 발전할 것으로 전망된다. 마르크스의 방법론에 비추어볼 때 핵심적이라 할 수 있는 소유관계에 대해서는 ‘소유관계의 다양화’라는 원칙만이 확인되고 있을 뿐 구체화되지는 못하고 있다.

마르크스 · 레닌주의에 비판적이던 다른 마르크스주의도 퇴조의 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동독에서 통일데모가 한창이던 89년 12월 ‘민주적 사회주의’를 목표로 하는 베를린강령을 채택하면서 마르크스의 사상을 자기 이념의 한 원천으로 명시한 사민당은 통일 후 우경화 분위기 속에서 마르크스를 삭제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블레싱 사무총장은 베를린강령이 “사민당 역사에서 가장 수명이 짧은 강령이 될 것”이라고 공헌했다.

지난 6월 열린 사회주의 인터내셔널 총회에서 “사회주의의 신용이 떨어진 것은 사실이지만 사회주의의 이상인 자유 · 평등 · 연대는 여전히 유효하니 민주적 사회주의를 지향하자”는 빌리 브란트 의장의 호소가 큰 호응을 얻을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베를린 강령의 책임입안자로서 사민당의 희망으로 간주되던 우스카 라퐁텡에 대한 관심이 줄어든 것도 이러한 맥락으로 풀이될 수 있다.

독일에서는 지난 2~3년 사이에 마르크스주의를 공부하려는 한국 유학생의 수가 급속히 늘어낫다. 그러나 앞으로는 그 수가 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독일에 온 지 1년 남짓되는 한 유학생은 “내가 마르크스주의자로 한국에 돌아가게 될지는 모르겠다”고 실토하고 있다.

지난 50~609년대 자본주의 나라들이 번창할 때 서방에서는 마르크스주의가 “죽었다”고 선언된 바 있다. 60년대 말부터 자본주의 세계경제가 위기에 빠지고 사회주의 운동이 고양되면서 마르크스주의는 부활했다. 80년대 들어 자본주의 경제가 회복되면서 다시 위기에 바진 마르크스주의가 또 한번 부활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50~60년대와는 달리 사회주의 세계체제라는 ‘기댈 언덕’이 지금은 없어졌기 때문에 마르크스주의가 부활하기 위한 객관적인 조건은 훨씬 불리하다. 따라서 마르크스주의를 발전시키려는 학자들읜 주체적인 노력이 그 어느 때보다 크게 요구되고 잇는 시기라 할 수 있는데, 서독 공산당의 대부로 인정받는 요셉 슈라이프슈타인은 이 노력이 非레닌주의적 마르크스주의자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질 것으로 예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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