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민영웅 흉상 받침대만 덜렁
  • 김창진 통신원 ()
  • 승인 1991.09.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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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변의 모스크바 현지취재 공산당 재산 처리 최대 관심사

국가비상위원회의 포고령과 장갑차, 옐친의 포고령과 쿠데타의 유인물이 춤추던 사흘간의 쿠데타 소용돌이가 지나간 이후 모스크바 시내에는 두 곳의 명소가 생겼다. 하나는 받침대만 덩그렇게 놓여 잇는, 아니 그것마저도 흉측하게 파괴된 과거 인민영웅들의 흉상이 서 있던 자리, 다른 한 곳은 이번 사태 때 몇명의 젊은이가 목숨을 잃은 바로 그 자리, 추념의 장소이다.

칼리닌 스베르들로프 제르진스키 등 과거 영웅들의 이름은 대로의 명칭으로, 혹은 지하철역의 명칭으로 아직 모스크바 시민들의 일상 속에 살아 있다. 그러나 그들의 얼굴은 간 곳이 없다. 세계 최초로 사회주의 혁명을 완수하고 내외의 간섭으로부터 단호하게 혁명을 수호했던 영웅들의 흉상이 놓여있던 자리엔 시민들의 냉소만이 가득하고, 그 마지막 풍경을 주워담으려는 저널리스트의 카메라 셔터 소리만 야속할 따름이다.

지하철역 마르크스대로를 빠져나오면 소련 문화의 자긍심의 상징인 볼쇼이 극장과 그 맞은 편에 서 있는 장중한 마르크스 석상이 보인다. 단단한 바윗덩어리로 높다랗게 조각되어 목에 밧줄이 걸려 거리에 내동댕이쳐지는 수난을 모면했지만 좌대에 휘갈겨진 어지러운 낙서는 20세기 말 사회주의권의 붕괴라는 세계사적 격변이 과학적 사회주의의 창시자 마르크스에게 얼마나 모멸스러운 일인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파묻힌 “민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라거나 “마르크스의 가르침은 위대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진리이기 때문이다”라는 레닌의 갈파는 “마르크스는 사탄이다” “공산주의는 파시즘이다”라고 떠들어대는 군중들의 치욕스런 욕설 속에 파묻혀버렸다. 마르크스는 반동적인 쿠데타의 주모자 겐나디 야나예프와 동일시되었다.

8월29일 오후 육중한 세개의 국가보안위원회(KGB) 건물을 마주하고 있는, 제르진스키 동상이 파괴되어 그의 얼굴이 사라진 높다란 좌대엔 삼색의 민주러시아 깃발이 대신 꽂혔고 수십명의 사람들이 역사를 매장한 낙서들을 흥미롭게 읽고 있다. 거기엔 이렇게 쓰여있다. ‘소련공산당+KGB=국가보안위원회’ ‘강철 같은 냉혈한 제르진스키를 역사의 용광로에’ ‘자유’….

전자제품 생산공장에서 일한다는 깡마른 체격의 엔지니어 세르게이씨(41)는 이렇게 말했다. “1937년 기술자였던 나의 할아버지는 처형되었고 타이피스트였던 할머니는 10년간 감옥살이ㅇ를 했다. 1970년 화가였던 나의 아주머니는 출입금지 구역인 이곳에 들어왔다는 죄로 체포되어 바로 이 KGB건물에 3시간 동안 갇혀 있었다. 그들(파괴된 동상의 주인공들)은 스탈린의 충실한 개였고 도살자들이었다”

이제 또다른 한곳으로 발길을 돌려보자. 쿠데타에 대한 저항의 상징이었던 러시아공화국 의사당 부근 아르바토프 거리에서 그리 멀지 않은 대로엔 희생된 젊은 넋들을 위로하는 추모의 자리가 마련되어 있다. 6차선 도로 가운데 4차선이 교통통제된 가운데 두개의 분향소가 마련되어 온통 꽃으로 둘러싸여 있다. 그들이 죽어 쓰러진 자리엔 글라디올러스와 달리아로 사각의 공간이 만들어진 곳에 아주 작은 명함판 사진이 붙어 있고 대로변 벽면에는 스프레이로 “젊은이들이여, 그대들을 영원히 기억하리라”고 씌여 있다.

일단의 젊은이들이 한쪽에 모닥불을 피워 추운 몸을 녹이면서 그곳을 지키고 있고, 아이들을 동반한 시민들은 이름 모를 들꽃들을 가져와 분향소에 바친 후 조심스럽게 주변을 서성인다. 그들의 눈에는 필경 장갑차 밑에 유충처럼 짓이겨진 젊은이들의 얼굴이 이른거릴 터이다. 가운데 위치한 분향소 옆에는 한쪽 다리가 잘린 채 목발을 짚고 서있는 30대 남자가 석상처럼 표정도 없이 서있다. 시민들은 그에게 무언의 격려를 보낸다.

‘구 광장에서 기적의 들판 발견’
그들은 과연 누구와 싸웠으며 무엇을 위해 죽었는가. 무엇을 파괴하려고 했으며 무엇을 그토록 저주했는가. <콤소몰스카야 프라우다> 8월29일자에 실린 ‘구 광장(중앙위원회 건물이 있는 곳)에서 기적의 들판이 발견되다’라는 기사에서 우리는 그 대답의 일단을 읽을 수 있다.

“소련 공산당은 약 5천개의 건물을 소유하고 잇다. 중앙위원회가 사무를 보는 건물의 총면적이 13만7천㎡이다. 소련공산당의 1백14개 출판사와 81개 인쇄소에서 8천명이 일하고 있으며 4개의 인쇄소에서 벌어들이는 연간 이윤이 모스크바에서만 4억5천만루블에 이른다. 또 19개의 요양소 4개의 휴양소 1백여개의 병원이 있고 모스크바 근방에 중앙위원회의 별장 1천8백여채가 있다. 이런데도 불구하고 중앙위원회의 재정기구에서는 당재산은 소연방국립은행의 2억4천만루블과 대외경제은행에 있는 몇천달러를 포함하여 5억3천만루블밖에 되지 않는다고 단언했다. 그러나 각종 합작회사에 투자되었거나 소련상업은행에 보관된 당재산, 그리고 외국에 비축되어 잇을 공산당의 재산목록에 대해서는 그 무엇하나 알려져 있지 않다.”

소련공산당의 이처럼 방대한 재산에 대한 처리문제는 쿠데타의 실패와 소련공산당의 해체 이후 이곳 사람들의 가장 큰 관심거리로 등장했다. 이 문제는 직접적으로는 과거 공산당 산하의 기업에서 일했거나 일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을 흥분시키고 있으며 그동안 소련 사회에서 독점적인 지배권을 누려왔던 소련 공산당의 몰락이 어떻게 구체화되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생생한 증거라고 볼 수 있다.

개혁과 공산당원들은 변화된 상황속에서 새로운 출구를 모색하고 있다. 8월24일과 25일 그들은 소련 공산당의 해산에 관한 자체결정을 수용하고 좌파민주당을 결성할 것을 논의했다. 새로 만들어진 정당은 사회당이나 자유당으로 불릴 수 있을 것이다. “벌써 로감스크와 로스토프의 노동자들이 우리에게 지지를 표했다”고 과거 공산당 이론지 <코뮤니즘>의 부편집장 오토 라진스키가 말했다. 그러나 새로이 모색되는 개혁과 공산당원들의 정당운동은 지난 70여년간 소련 공산당의 독점적 지배가 소련 인민들의 가슴에 각인한 깊은 족적 때문에 그 앞날이 결코 밝지만은 않은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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