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대 국회에서 개헌은 없다
  • 김재일 정치부차장 ()
  • 승인 1991.09.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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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정국, 민자 · 신민 ‘어깨동무’ 계속… 내각제는 ‘물 건너’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을 계기로 김대중 신민당 총잴는 노태우 대통령과 유엔에서 만난다. 김총재는 이달 24일 유엔 총회에서 노대통령의 기조연설을 듣고 그날 저녁에는 노대통령이 주최하는 축하 연회에 참석한다.

이역만리 뉴욕에서 노대통령과 김총재가 유엔가입을 축하하며 건배하는 장면은 이제까지의 정치상식에서 보면 다소 파격적일지도 모른다. 이작까지 국민은 야당 지도자가 여당의 반대편에 서서 비판하고 대결하는 모습에 좀더 익숙해 있는 것이다. 나아가 김총재의 유엔행은 앞으로의 여야관계와 정국의 전개 방향을 함축하고 있다.

지난 7월16일 노 · 김 청와대 회동 이후 급속하게 조성된 여야 밀월정국이 유엔가입을 계기로 ‘신동반자 관계’로 확고하게 자리잡는 것이 아니냐 하는 전망이 대세를 이룬다. 관심의 초점은 여권이 이런 분위기를 타고 내각제 개헌을 추진할 것인가에 모아지고 있다. 여야 밀월관계를 바탕으로 김총재의 양해하에 여권이 내각제 개헌을 밀어붙이는 것이 아니냐고 내다보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여권이 인위적으로 유엔정국 조성”
지금은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소련사태에 국민의 눈이 쏠려 있지만 소련에서 쿠데타가 발생하기 전만 해도 신문들은 다투어 유엔정국과 개헌의 가능성을 다루는 데 많은 지면을 할애했었다. 박태준 민자당 최고위원조차도 “김총재의 생각이 뉴욕에서는 서울에 있을 때와 다를 수 있는 것 아니냐”라고 말해 마치 유엔가입을 계기로 김총재의 정치 행로에 큰 변화가 있으리라는 심증을 말히기도 했다.

과연 유엔가입을 계기로 정계에 대변혁이 일어날 것인가. 한 여당 중진 의원은 “유엔가입이 뭐 그렇게 대단한 일이라고 양 텔레비전이 특파원을 보내 호들갑을 떠는지 모르겠다. 안보리 통고를 즈음해 그 난리였으니 유엔에 가입하는 날은 오죽하겠는가. 분위기를 잡는 것을 보면 무슨 꿍꿍이가 있는 것 같다”라며 여권 일각에서 인위적인 유엔정국 조성을 시도하고 있는 것 같다고 추측했다. 김대중 총재까지도 “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노정권이 통일정국을 조성, 제2의 유신으로 영구집권을 획책하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일부 정치관측통들은 여권 핵심부가 내각제 개헌을 포기하지 않는 한 유엔정국을 활용해 헌법 영토조항의 수정과 관련한 개헌문제를 제기하지 않겠느냔고 전망한다. 그렇게 되면 내친 김에 권력구조 개편까지를 포함한 개헌이 시도될 수도 있다고 분석한다. 헌법 3조는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 도서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유엔에 가입할 북한의 존재를 사실상 배제하고 있는 것이다. 남북 양측의 영토가 중복되는 개념상의 혼란을 빚지 않기 위해서는 이 조항의 수정이 불가피하다는 주장이다. 민자당의 이종찬 의원은 제151회 임시국회에서 이 문제에 대한 의문을 제일 먼저 제기했다. 그러나 당시 정부는 여기에 대해 명확히 답변하지 않았다.

아직도 정부는 이 문제에 대한 공식적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국토통일원의 한 관계자는 사견임을 전제로 “유엔가입 때문에 헌법을 개정한다는 것은 논리의 비약”이라고 잘라 말한다. “남한 적화통일 정책을 포기하지 않고 있는 가운데 우리의 영토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북한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만 일방적으로 고칠 수 없다. 또 북한이 몇년 내에 붕괴할지도 모르는 일인데 북한의 영토를 인정한다는 것은 통일을 포기한다는 말이다.” 그는 영토 조항과 관련한 개헌문제는 권력구조 변경의 빌미가 될 수 있는 민감한 사안이기 때문에 통일원 내에서도 금기시되고 있다고 말한다. 정치적으로 해결해야 할 사안이라는 것이다.

개헌을 한다면 그 시기는 언제일까. 적지않은 정치관측통들이 내각제 개헌이 13대 국회에서 이루어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개헌은 20일간 공고, 20일 이내 국회 통과, 그리고 30일 이내 국민투표 과정을 밟는다. 공고부터 국민투표까지 길게 잡아도 1백10일이면 족하다. 유엔정국이 곧장 통일정국 · 개헌정국으로 이어지리라는 것이다. 야당의 한 인사는 10월에 내각제 개헌이 공론화되리라고 내다봤다.

개헌을 한다면 13대 국회에서 하지 14대는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논거는 다음과 같다. 대통령제 아래에서 구성될 14대 국회가 내각제 개헌을 한다면 개헌 후 해산해야 하는데 어느 국회의원이 당선된 지 얼마 안돼 선거를 다시 치르려 하겠느냐는 것이다. 현실적인 이유 외에 국회를 해산하지 않을 경우 법 이론적으로 모순에 봉착한다. 권력은 선거를 통해서 창출돼야 하는데 이미 권력의 향배가 정해진 가운데 개헌을 하고 국회가 그대로 존속한다는 것은 논리적 모순이라는 것이다.

또 정치 일정상 어렵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14대 국회의원의 임기가 내년 6월에 시작되는데 민자당 당헌상 늦어도 내년 5월까지는 전당대회가 열려 대통령 후보가 선출되므로, 대통령 후보가 뽑힌 후 14대 국회에서의 내각제 개헌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14대 국회에서의 개헌이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보는 시각도 많다. 14대 국회의원들이 내각제 개헌을 할 경우 ‘유보조항’을 두면 국회를 해산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제헌국회에서도 비슷한 전례가 있었다. 제헌의회 의원들은 헌법 제정과 대통령 간접선거를 한 후 “제헌국회의원의 임기는 2년으로 한다”는 1백2조 유보조항에 따라 국회를 해산하지 않았다.

민주당의 김광일 의원은 “어디 우리나라 정치가 상식과 법률에 따라 행해지는가. 노대통령과 김총재가 개헌에 합의만 하면 국회해산이 뭐 문제가 되겠는가”라고 반문한다. 법적 문제나 예정된 정치일정 때문에 개헌을 못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말이다.

김대중 총재의 의중은 무엇일까. 김영삼 민자당 대표가 내각제 반대를 분명히하고 있는 이상 권력구조 변경을 위한 개헌에는 김총재의 동의가 필수적이다. 김총재 본인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많은 정치관측통들은 김총재가 내각제로의 선회를 위한 명분을 찾고 있다고 추측하고 있다. 민주당의 이철 사무총장은 “김총재가 다른 것이라면 몰라도 누구보다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추구해온 통일을 명분삼아 내각제를 받아들일 수도 있다고 본다”고 김총재의 내각제 선회 가능성을 점쳤다.

과연 김총재의 유엔행이 변화의 출발점이 될 것인가. 신민당 의원들은 당론이 대통령 직선제임에도 불구하고 내각제를 적극적으로 거부하지는 않는다. “신민당이 내각제로 돌 것인가”라고 물으면 대부분의 신민당 의원들은 “14대 총선을 치른 후에 생각해볼 문제다”라고 대답한다. 한 의원은 “아직까지는 우리에게 많은 표를 주어야 여당의 내각제 개헌 기도를 저지할 수 있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이제는 만약 내각제 개헌을 하더라도 되도록 큰 지분을 확보하기 위해 우리 당에서 많이 당선돼야 한다고 해야 할 판이다”라고 말한다. 여러가지 여건으로 보아 내각제로 돌지 않겠다고 유권자들에게 자신있게 약속할 수 있는 입장이 못된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만약 개헌이 된다면 그 시기는 14대가 될 것이라고 대부분 생각하는 것 같다.

김윤환 총장 “JP도 내각제 포기한 듯”
김대중 총재는 ‘내각제 밀약을 위한 노대통령과의 회동’ 등 일반의 억측을 사전 봉쇄하기 위해 자신의 유엔행에 각별히 신경을 쓰고 있다. 뉴욕에 오갈 때와 그곳에 머무를는 동안 노대통령과는 다른 항공편과 숙소를 이용한다. 그의 측근에 따르면 노대통령과 김총재는 유엔 총회장과 연회장에서 잠깐 조우할 수 있을 뿐 따로 만날 기회가 없다고 한다.

정가의 일부 관측통들은 현재 지지부진한 상태에 있는 야당통합 문제를 내각제와 연관시키기도 한다. 만약 김총제가 내각제로 선회할 가능성이 있다면 야당통합이 그의 구상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시각이다. 따라서 김총재가 야당통합에 적극성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김총재 자신은 13대에는 물론 14대 국회에서도 대통령 직선제를 고수할 것임을 천명하고 있다. 최근 김총재는 사적인 자리에서 내각제 개헌에 관한 확답을 요구하는 정대철 의원에게 “내가 내각제를 받아들이연 당신 아들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김총재는 또 한 기업가에게 “절대로 내각제를 수용가지 않는다”고 확언했다고 알려졌다. 김총재가 그에게 말한 내각제 불가 이유는, 첫째 아무리 생각해봐도 여권에서 생각하는 내각제가 순수 내각제가 아니라는 것이고, 둘째 내각제로 도는 순간 자신의 호남지역 장악력은 심대한 타격을 받는다는 점 때문이라는 것이다.

여권 인사들의 반응에서도 내각제는 일단 ‘물 건너간 것’으로 읽혀진다. 민자당의 강재섭의원은 “김총재가 내각제로 돌기에는 너무 멀리 나가버렸다”고 진단한다. 김윤환 사무총장은 철저한 내각제론자인 김종필 최고위원이 내각제를 포기한 것 같은 인상을 받았다고 말한 바 있다. 김최고위원의 측근인 김용환 의원은 “신민당의 김총재가 내각제를 받고 싶어도 나서서 도울 수 있는 입장이 못된다. 여권에서 추진한다면 국민운동 차원의 반대를 하지 않고 방관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경우에도 여권 내에 반대하는 세력이 있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여권에서 내각제에 가장 적극적인 정파가 이를 포기한 듯한 인상을 주는 것은 개헌의 가능성에 대한 판단 자료가 될 수 있다.

순수 대통령제 개헌론 대두
권력구조 개편과 관련해 내각제 외에도 순수 대통령제가 심심찮게 거론되고 있다. 여권에서 순수 대통령제에 가장 적극적인 인사는 박철언 체육청소년부 장관이다. 박장관은 내각제 실현이 어려울 경우 차선책으로 순수 대통령제가 도입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제도는 대통령 밑에 부통령을 두는 미국식 대통령제를 말한다. 박장관은 “대통령이 여소야대의 상황하에서도 임기 동안 소신있게 직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순수 대통령제가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신민당 김총재도 14대 총선에서 부통령제 도입을 당론으로 걸겟다고 말하고 있어 박장관의 순수 대통령제와 일맥상통한 감을 주고 있다.

그러나 신민당 김총재가 이 제도에 대해 원칙적으로 반대하지 않는다 해도 현단계에서 공론화돼 13대 국회에서 개헌으로까지 이어지기는 어려워 보인다. 이종찬 의원은 순수 대통령제에 대해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행정부가 의회를 장악하려는 의도에서 나온 발상이다. 여권 일각에서 추진하겠지만 국민이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순수 대통령제를 하려면 인사청문회를 도입하는 등 미국식 그대로 해야 하는데 그것이 우리 정치문화와 맞느냐도 검증돼야 한다.” 게다가 순수 대통령제를 당론으로 채택하는 데는 일정한 절차가 필요한데 14대 총선 전 실현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는 이제 소모적인 개헌시비는 그만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남재희 의원 역시 “토론을 위한 것일 뿐 현실성은 없는 이야기”라고 단언한다. 민주계의 황병태 의원은 “순수 대통령제는 미국만이 할 수 있는 제도로서 다른 나라에는 적절치 않다”며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신민당의 조세형 의원은 “부통령제 도입은 영호남 안배 차원에서 여야의 선택 폭을 넓힐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13대 국회에서 의 개헌은 정당성에 하자가 있다. 반드시 14대 선거에서 국민에게 물어봐야 한다”고 말한다.

무것보다도 순수 대통령제로의 개헌은 내각제 포기를 뜻한다. 내각제에의 미련을 버리지 않고 있는 노대통령은 개헌의 열쇠를 움켜쥐고 있는 김대중 총재가 14대 총선 후에 선회할 수 있는 기회를 열어놔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전후 사정을 따져 보면, 내각제든 순수 대통령제든 13대 국회에서의 개헌은 어렵다고 할 수 있다. 유엔정국이 개헌정국으로 연결될 것이란 추측은 무리한 해석으로 보인다. 또 14대 총선 후에는 정국의 판도가 어떻게 달라질지도 모르는 일이다. 내각제를 전제로 한 ‘통일헌법’안은 서울대의 ㄱ교수에 의해 이미 민들어졌다고 알려진다. 그러나 이것 역시 14대 국회에서의 개헌을 가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14대 총선 이전의 개헌 논쟁은 사실상 무의미하다고밖에 볼 수 없다.

그러면 유엔정국의 실체는 무엇인가. 유엔가입 이후 어떤 정치상황이 전개될 것인가. 정치관측통들은 민자 · 신민 양당구도 아래 여야의 밀월관계가 한동안 계속될 것으로 내다본다. 여권 핵심부도 “김대중 총재와 손잡고 6공화국을 끝낸다”는 방침을 세웠다고 알려지고 있다. 이를 두고 공화계의 한 의원은 ‘4당 합당’이라고까지 말한다. 이런 가운데 정부는 정부대로 정당은 정당대로 통일문제에 대한 주도권을 잡으려고 ‘한 건’을 하기 위해 경쟁할 것으로 보인다.

김대중 총재는 선명성 훼손의 위험을 무릅쓴 유엔행으로 다져진 노대통령과의 신뢰관계를 기반으로 통일정국을 주도할겨고 할 것이다. 그는 그동안 꾸준히 추진해온 북한 방문을 실현시키려고 노력할 것이다. 지난 7월16일 청와대 회동에서 김총재는 노대통령에게 자신의 방북문제를 타진했으나 대통령의 반응은 부정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가 반대하는 북한방문을 독자적으로 추진하지 않는다는 것이 김총재측의 확고한 방침이다. 그러나 이달 24일 저녁 유엔가입 축하 리셉션에 초대될 북한 대표들로부터 직접 방북 요청을 받을 경우를 대비해서 김총재가 해야 할 답변을 정부측과 상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불투명한 정치일정, 후계구도와 관련한 민자당 내 권력투쟁, 그리고 야권통합 문제 등이 서로 얽힌 가운데 각 정파가 유엔가입으로 조성된 새로운 분위기를 이용하려는 각축전은 치열하리라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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