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꺾은 경찰청 人事
  • 문정우 기자 ()
  • 승인 1991.09.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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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지역 출신 우대에 ‘불만’

치안본부가 경찰청으로 현판을 바꿔단 뒤 한달여가 지났다. 내무부 산하기관에서 준독립기관이라고 할 수 있는 내무부 외청으로 지위가 격상되고 기구도 확대 개편된 만큼 경찰이 생긴 이래 사상 최대규모의 인사이동이 진행되고 있다.

지난 8월1일자로 초대 경찰청장을 비롯한 경무관급 이상 경찰 수뇌부 35명이 자리바꿈을 한 데 이어 8일에는 전국에서 총경급 1백54명이 승진 또는 전보발령을 받았으며 현재 경정급 이하에 대한 인사가 계속되고 있다.

기구가 확대된 덕분에 이번 인사에서는 9명의 총경이 경찰의 별이라고 할 수 잇는 경무관으로 승진했으며, 7명의 경무관이 별중의 별이라고 할 수 있는 치안감 자리에 올랐다. 총경 이하 중견 간부의 자리도 크게 늘어나 경정 16명 경감 2백명 경위 20명 경사 5백13명 등 모두 7백49명의 중견간부들이 승진의 기쁨을 누릴 것으로 보인다.

수뇌부 일부는 ‘흠집’있는 인물
그러나 이같이 많은 사람들이 승진되고 있으나 경찰의 내부 분위기는 그렇게 밝지만은 않은 것 같다. 특히 일선 경찰관들 중에는 이번 인사의 공정성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이 많다.

서울시경의 한 중견간부는 “예전의 인사는 누가 어디로 옮길지 대충 짐작이 갔었는데 이번 인사는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다. 정보의 정자나 수사의 수자도 모르는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관련 부서의 장으로 날아내려오고 있다”고 말한다.

이 간부는 또 “일선 경찰들은 이번 인사를 윗사람들의 잔치라고 말한다. 윗사람들만 대폭 늘어났기 때문에 일선 경찰들은 가만히 앉아서 강등됐다는 기분을 느끼고 있다. 또 결재를 받거나 지휘를 받아야 할 사람이 늘어나 일만 번거로워지게 생겼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불만이 터져나오고 있기는 지방도 마찬가지이다. 모 지방경찰청에서는 예상한 것과는 너무나 다른 내용의 총경급 인사명령이 중앙에서 내려오자 중견 간부들이 “해도 해도 너무하지 않느냐”고 강하게 반발했다고 한다. 이 지방의 경찰청장은 내부의 반발이 거세자 중앙에 몇 차례나 전화를 걸어 재고를 요청했으나 묵살당했다고 한다.

‘매물’이 많이 쏟아져나오자 인사이동을 둘러싸고 은밀하게 금품수수가 성행하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서울시경의 한 고참 형사는 “경찰사회에서는 돈을 써야만 일이 된다는 것이 상식처럼 돼 있다. 경찰끼리도 민원을 부탁할 때는 돈을 쥐어줘야만 해결될 정도이다. 나도 한직으로 밀려나지 않음려면 빨리 손을 써야겠다”고 귀띔했다. 이번 인사를 둘러싸고 계속 잡음이 흘러나오고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 서울 일선 경찰서의 한 정보과 형사는 “어느 조직이나 인사 뒤에는 뒷말이 있게 마련이다. 이번의 경우도 대부분은 탈락자들이 퍼뜨리고 다니는 공연한 소리인 것 같다. 하지만 이번 인사에는 분명히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무엇보다도 경찰청 인사는 첫단추부터가 잘못 끼워졌다”고 얘기했다.

첫단추가 잘못 끼워졌다는 것은 金元煥 현 경찰청장 등 경찰 수뇌부의 인사를 빗대서 하는 말이다. 초대 경찰청 수뇌부의 진용은 철저하게 특정 지역 출신과 청와대바람을 쏘인 사람들로 짜여졌다. 그래서인지 개중에는 흠집이 난 사람들도 기어있는 실정이다.

김청장은 경북 안동 출신으로 동아대 법대를 졸업한 뒤 경찰에 투신해 치안본부 정보1부장과 경북도경국장을 거쳐 지난 88년에는 청와대 치안비서관을 역임했으며 청장으로 발탁되기 전에는 서울시경국장으로 있었다. 서울시경국장 재직 중 강경대군 치사사건이 터져 위로는 국무총리와 내무부 장관이 경질되고 아래로는 지휘 책임자들이 처벌을 받았으나 자신은 경찰청장으로 승진하는 ‘관운’을 누렸다.

초대 서울지방경찰청장에 임명된 李寅燮씨는 경북 영일 출신으로 대구대 법과를 나와 서울 청량리 경찰서장과 본부 작전과장을 거쳐 86년과 88년 두차례에 걸쳐 청와대에서 근무했으며 89년 9월부터 경기도경국장을 맡아왔다. 이청장의 경기도경국장 재직중 화성 연쇄살인사건이 터졌는데 이 사건은 아직 해결되지 않고 있다.

경찰청 발족과 함께 신설된 자리인 경찰청 차장에 임명된 金孝恩씨는 경남 창원 출신으로 중앙대 법대를 나와 본부 대공부장을 거쳐 인천경찰국장을 역임한 뒤 89년 9월부터 청와대 치안비서관으로 일해왔다. 인천국장 재직 때 이른바 ‘빠찡코 사건’으로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또 이번에 신설된 경찰위원회 상임위원으로 임명된 姜斗鉉씨(단국대 교수)는 노태우 대통령과 경북고등학교 동창으로 지난 76년에는 전남도경국장을 지냈다. 전남도경국장 재직중 비리사건에 연루되 옷을 벗은 것으로 알려져 경찰 내부에서는 그리 환영을 받지 못하고 있다. 강위원의 부인과 김옥숙 여사도 역시 경북여고 동기동창이라고 알려져 있다.

경찰청 내부의 실무 요직도 이른바 TK들이 많이 차지했다. 보안국장 윤정원씨는 경북 상주 출신으로 경북대 문리대를 나와 서울 동부서장 · 본부 경무부 · 제주국장 등을 거쳤으며, 경비국장 김화남씨는 경북 안동 출신으로 고려대 법대를 나와 본부 대공2부장 · 본부 감사부장을 역임했다.

경찰청측에서는 이번 인사에서 특정 지역 출신들이 집중적으로 발탁된 것은 근무평가를 공정하게 하다보니 우연히 그렇게 된 것 뿐이라는 식으로 얘기하고 있다. 경찰청측은 경무관급 인사 당시 기자들이 총경에서 경무관으로 승진한 9명 중 어째서 호남출신은 한명도 없느냐고 묻자 “호남 출신을 발탁하려고 시경의 모과장 등에게 후하게 평점을 주었으나 너무나 근무평점이 떨어져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한 바 있다.

경무관급 64명 중 경남 · 북 출신이 28명
그러나 일선 경찰관들은 영남이 아닌 지역 출신은 대부분 근무평점을 잘 받을래야 받을 수 없는 곳으로 배치되고 있다고 얘기하고 있다. 또 승진기회도 적기 때문에 관리자로선의 능력을 쌓을 수 있는 길이 근본적으로 봉쇄되고 잇다는 주장도 하고 있다. 그래서 경찰관들 사이에서는 출신 지역을 놓고 3급지니 4급지니 하는 자조적인 말들이 유행하고 있기까지 하다.

실제로 90년 현재 경무관급 이상 경찰 고위관료의 출신지별 분포를 보면 출신 지역이 승진이나 전보에 상당한 영향을 끼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전체 64명 중 경북 출신이 16명으로 가장 많고 경남 12명 충남 8명 충북 7명 경기 5명 서울 · 전남 · 전북 각 4명, 이북 출신 7명 등의 순이다. 보직을 살펴봐도 경북 · 경남 출신들은 대부분 요직을 차지하고 있으며 기타 지역 출신들은 이른바 ‘한량한 보직’을 맴돌이하고 있는 실정이다.

올해로 경찰관 생활을 한 지 22년째에 접어든다는 ㄱ씨는 “국민에게 봉사하는 경찰로서 거듭 태어나려면 우선 인사가 바로 서야 한다. 이사가 제대로 이뤄져야 경찰관들간의 인간관계가 회복돼 조직에 힘이 생기고, 그래야 현재 경찰 비리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처우개선 문제가 해결될 길이 열릴 것이다”라고 얘기했다.

ㄱ씨는 “솔직히 말해 현재 경찰의 실정은 도둑의 돈을 받아 연명하고 있는 꼴이다. 도둑에게 손을 벌리지 않으면 목구멍에 풀칠도 하기 힘들다. 이런 문제는 누가 해결해줄 수 잆는 것이다. 경찰관들이 단결해 부단히 정부에 요구하고 국민을 설득해야 하는데, 그럴 수 있으려면 모두가 수긍할 수 있는 인물들이 윗자리에 올라야 한다”고 덧붙였다.

요즘에는 경찰에도 우수한 인력들이 유입되고 있다. 경찰대학 출신들이 입지를 넓히고 있으며 고시 합격자 중에서도 경찰의 문을 두드리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그러나 고참 경찰관들은 능력보다는 출신 지역이나 인맥이 우선되는 흙탕 속에서 ‘경찰의 희망’이라고 불리는 그들마저 시들어가고 있다고 개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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