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잡는 먼 바다 고깃배
  • 정기수 기자 ()
  • 승인 1991.09.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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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양어선, 폭행 · 중노동에 연평균 2백50여명 사망 · 실종… 무모한 탈출 · 자살도 많아

요즘 시대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직업사회가 있다. 매년 평균 2백50여명이 각종 사고로 죽거나 실종된다. 아마도 노동조건이 가장 열악한 사업장, 그곳은 원양어선이다. 몇달간 계속해서 하루에 최소 12시간, 고기떼가 몰려오면 17~18시간씩을 일하면서 잠은 토막토막 ‘쪽잠’을 자야 하는 인간 능력의 시험장에 다름 없다. 그러나 이 정도만일사면 원양어선을 ‘현대판 노예선’ ‘바다 위에 떠 있는 강제노동수용소’라고까지 부를 이유는 없다.

옛날 군대서도 볼 수 없던 무잡이한 폭행이 지금 많은 원양어선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아마 삼청교육대가 그랬을 것”이라고 하는 선원들의 말에서 그 실상을 짐작해볼 수 있다(20쪽 관련기사 참조). 업체 2백50여개, 선박 8백여척, 선원 2만여명으로 총 어업생산량 중 절반 가량을 차지하고 있는 우리 원양어업의 현주소는 이렇게 인권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흔히 원양어선의 고기잡이를 인간의 한계를 넘는 작업이라고 말한다. 보인는 것은 해와 달과 별, 그리고 시퍼런 바다뿐이요 자고 나면 하는 일이 그물 내리고(투망), 올리고(양망), 고기 털고(혹은 이로 물어 뜯고), 고기를 쇠상자(팬)에 담아 급랭실로 옮기고, 냉동이 끝나면 고기를 어창에 쌓고(탈팬), 이 작업이 끝나고 나면 다시 그물을 내려야 하는 작업의 연속이다.

하루 15시간 노동. 8개월 계속된는 곳도
이러한 반복작업이 하루 평균 15시간씩, ‘악명높은’ 오징어 유자망어선 등의 경우엔는 무려 8개월 동안 계속되는 곳도 있다. 명태 트롤어선 등은 몇달에 한번씩 부산으로 들어왔다 나가지만 오징어 유자망어선은 어창에 고기가 가득차면 운반선이 와 실어가기 때문에 4월초부터 조업기간이 끝나는 11월말에까지 북태평양 해상서 거의 하루도 빼지 않고 조업하는 것이다.

현재 선원은 근로기준법 대신 특별법인 선원법의 적용을 받고 있다. 선원법은 제55~65조에서 1일 8시간 주 44시간 노동, 시간외 수당 지급 등을 명시하고 있으나 이것은 상선(컨테이너선 등)에나 적용될 뿐, 제 66종에서 어선과 7백톤급 이하 선박은 그 적용서 제외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평균 4백톤급으로 25~30명이 타는 우리 원양어선은 그러므로 오직 고기만 많이 잡을 수 있도록 근로기준법도 선원법도 적용되지 않고 있는 ‘치외법권 지대’인 셈이다.

고기가 많이 올라오는 날은 양망작업만 새벽 1시부터 오후 3시까지 14시간 계속할 때도 있다. 그리고 쪽잠(1~3시간)을 잔 뒤 바로 투망(4~5시간)을 또 시작해야 한다. 투망을 잘못하거나 태풍이 불고 조류가 심할 경우 폭 50m의 그물이 김밥처럼 똘똘 말리는, 뱃사람들이 ‘순대’라고 부른는 현상이 발생하여 선원들을 더욱 고생시키기도 한다. 말린 그물을 손으로 일일이 풀어야 하므로 이런 날은 작업시간이 24시간을 넘어갈 때도 많다는 것이다.

물 한 모금 못마시고 몇시간 동안을 계속 일하고, 화장실도 사관(간부선원)의 허락을 받아야 겨우 한번 다녀올 수 있는 하급 선원들은 그래서 항상 허리가 아프고 쪽잠이나마 편안한 잠을 못이룬다. ‘관짝’이라고 불리는, 벽에 널빤지를 붙인 침실 안의 쪽잠에서 ‘그물이 목을 휘어감거나 그물을 당겨도 당겨도 끝이 보이지 않는, 또 헤또(갑판장) 등 사관들르부터 무수히 얻어맞는’ 악몽을 꾼다는 것이다.

바닷물을 펌프로 올려 양치질 세수 목욕 등을 하고 무말랭이 같은 반찬에 식사를, 그것도 3~5분 내에 마치지 않으면 욕설이 날아오는 선상생활은 거의 지옥과 다름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기에 강제삭발 등 인격저거 모독행위를 하고 일을 게을리한다는 이유로(때로는 특별한 이유도 없이) 수시로 폭행이 가해지고 있으니 더 할 말이 없다는 것이다. 이때 선원들에게 있어서 바다는 “죽음보다 더 싫은 것”이 될 수도 있다.

“한 두명 죽여도 ‘실종자처리’하면 그만”
어떤 선원들은 배 타는 첫날부터 ‘포를 떠버릴 놈’ ‘회를 쳐 먹을 놈’ ‘한 두명 죽여도 실종자로 처리하면 그만이다’ ‘바다에 빠져 죽어도 고기 2톤4값밖에 안된다’는 등의 무시무시한 폭언을 듣게 된다. 부상당해 작업을 못하겠다고 한다거나 행동이 느려지면 사정없는 폭력이 가해진다고 하선한 선원들은 자주 체험담을 전하고 잇다.

최근 문제된 부산 금도수산 소속 2백35톤급 오징어 유자망어선 제7금도호에 탔던 갑판원 6명은 사관들로부터 “건방지다는 이유로 웃통을 벗기우고 뱃머리 기둥에 묶여 대나무에 그물줄을 감아 만든 채찍으로 집단폭행당했으며 누군가는 금방 온몸이 피투성이로 변해 쓰러지기도 했다”고 경찰에 진정서를 낸 바 있다.

이들은 “사관의 성미에 안차게 일하거나 심지어 밥을 느리게 먹어도 갑판에 집합시켜 팬티까지 내리게 하고 쇠막대기로 때렸다. 한번은 한꺼번에 50대씩 맞아 모두 엉덩이에 피멍이 들었다. 또 썩은 오징어를 물고 서 있게 하는 등 인격모독적 기합도 서슴지 않았다”고 폭로하기도 했다.

폭행과 중노동에 못이겨 중도하선하고자 해도 거의 불가능하게 돼 있다. 부상 정도가 심하거나 큰 병을 얻어 ‘거추장스런’ 인력이 되어야만 운반선이 올 때 하선시킬 뿐 선장이 좀처럼 허가해주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선장 허가서 없이 일시 기항지 같은 곳에서 이탈할 경우 밀항단속법 위반으로 구속된다. 천신만고끝에 돌아와서도 환영받기는커녕 도리어 감옥에 들어가는 사례가 종종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망망대해에서 빠삐용식의 무모한 탈출이 적지 않게 시도되고 투신자살자도 나오는 것으로 알려져 잇다. 지난 89년 8월7일 자정, 유자망어선 마히1호 선원 백상덕(24) 김성중(26)씨는 일본 북해도 앞바다에서 스티로폴 부이 5개를 묶은 ‘구명장비’와 함께 몸을 던져 일본으로의 탈출을 기도했다. 이들은 상어떼와 사투를 벌이다 파나마 화물선에 구조됐으나 김씨만 살고(구속) 백씨는 6일 만에 숨졌다.

지난해 7~8월 상어 유자망어선 제12대동호에서는 한달 사이에 5명이 없어지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경찰수사 결과 한명은 구명튜브를 이용한 탈출, 다른 한명은 선체요동으로 인한 실족, 나머지 3명은 스티로폴 부이를 이용한 집단탈출로 나타났는데 모두 상어밥이 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처럼 자포자기로 바다에 투신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선원에 따라서는 폭행에는 폭행으로 대항하는 선상반란을 일으키는 일도 가끔 있다. 지난 6월18일 북태평양 하와이 근해에서 조업중이던 은희수산 소속 88스텔라호에서 갑판원 김모씨(22) 등 하급선원 10여명이 난동을 부려 배가 부산으로 회항한 사건이 그런 예다.

이에 앞서 6월7일 동화수산 제102화동호에서도 갑판장 홍모씨(40) 등 선원 6명이 쇠파이프 손도끼 식칼 등을 들고 선장을 포함한 사관 11명과 대치, 부산항으로 돌아갈 것을 요구하며 3일 동아나 선상반란을 일으켰다.

또 지난해 6월에는 가나 국적 참치잡이 원양어선 지라솔1호에서 일하던 해외송출선원 고모씨(27)가 작업중 상어를 주낙으로 당겨올리다 빠뜨리는 순간 빗발같이 쏟아진 선장 이모씨(41)의 욕설에 격분, 다음날 새벽 잠자던 이씨를 참치처리용 식칼로 찔러 중상을 입힌 다음 1기사(1등기관사) 김모씨(27)도 찔러 살해한 일이 있었다.

선원이 폭행을 당하고, 그래서 탈출하거나 자살하고 심지어 선상반란까지 일어나는 이같은 기막힌 현상의 원인은 도대체 무엇인가. 업자나 해경(범죄수사) 해운항만청(선원관리) 수산청(어로감독) 등 관계당국은 물론 원양수산노조에서도 선원인력난을 그 첫째 이유로 꼽는다. 험난한 바다생활을 견디기 힘든 사람들이 무작정 배를 타게 되기 때문이라는 얘기다.

당국에선 ‘불법 소개업자’ 수수방관
선원 부족현상이 심각해진 것은 육상임금이 크게 오른 87년 이후이다. 이때부터 탄광처럼 원양어선이 기피직업(혐오직업)으로 전락, “사회에서 적응하지 못한 실업자들의 도피처에 불과한 곳”이 되고 말았다는 것이 원양수산노조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현재 대부분의 원양어선의 경우 갑판원 12~15명 가운데 70~80%가 무경험자들로 구성돼 있다. 해운항만청은 종래 1년 이상의 국내선 승선경험이 있어야 발급해주던 선원수첩(선원들의 여권)을 소양 · 안전교육을 10일간만 받으면 내주고 있다. 그런데 이것마저 무시하고 단 하루의 안전교육으로 선원수첩을 만들어내는 불법 브로커들이 있어도 전혀 단속이 이뤄지지 않을 만큼, “제발 배만 탄다고 해주십시오”라고 애원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들 브로커(불법 선원소개업자)는 서울(용산역 주변)과 부산(자갈치시장 주변)에 사무소를 두고 스포츠신문 등에 광고를 내서 실업자들을 유혹하고 있다. 이들이 중노동과 폭행에 몸을 망친 대가로 건지는 돈은 1년에 많아야 4백만~5백만원에 불과한데도 ‘연봉 1천만~1천2백만원 보장’ ‘가족의료보험 퇴직금 보너스 3백% 보장’ ‘주택청약 1순위 무담보 대출 가능’ 등 터무니없는 과장 광고로 젊은이들을 ‘노예선’으로 보내고 선주들로부터 ‘인신매매 중개료’를 받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단속해야 할 기관에서는 수수방관이다. 어쩌면 그렇게라도 해서 원양어업의 명맥을 이어주고 있는 그들이 업자와 당국의 눈에는 고맙게 여겨지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원양업체 관계자들은 한결같이 “배고파서 배를 타던 옛날 선원들과 지금 사람들은 큰 차이가 있다”며, 한 예로 “빠른 속도로 그물이 나갈 때(투망) 과거에는 갑판원들이 사관의 지시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각자 위치를 지켰는데 지금은 뒷짐지고 폼잡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고 불평한다.

바다라는 조건 자체가 풍랑 등 생명의 위협이 끊임없이 닥쳐오는 것인데다 어로작업 또한 웬많한 정신력과 노동력으로는 어림도 없어 요즘 세대들 가운데는 열이면 아홉이 견뎌내지 못한다고 간부선원들은 말한다. 선상생활에서 당연히 지켜져야 할 상명하복 등 엄격한 규율마저 거부하는 선원들이 많다는 것인데, “팀워크가 깨지면 조업이 불가능하고 그물에 걸려 바다에 휩쓸려들어가는 등 안전사고도 나게 마련”이라고 사관들은 입을 모은다.

악폐의 원인은 이익배당 방식
그러나 이들의 주장이 일면 이유가 있다 하더라도 일상화된 집단폭행만큼은 변명의 여지가 없을 것 같다. 폭행의 배경에는 선장을 비롯한 사관들의 자질문제도 포함되지만 좀더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 바로 ‘보합제’라는 이익배당 방식이다. 월급 외에 사관과 일반선원들의 실질적 소득원인 수당을 지급하는 방식인데, 이것이 하급선원들을 ‘채찍으로 갈겨서라도’ 일을 시키도록 하는 악폐 중의 악폐를 만든다.

예를 들어 오징어잡이 원양어선의 경우 조업기가나 8개월 동안 총 1천톤 이상을 잡아야만 보합을 적용하기로 계약이 됐다고 할 때, 그 이하이면 월급(선장 70만~1백만원, 선원 30만~50만원)밖에 받지 못하므로 1천톤을 넘겨 보합금(선장 5천만~8천만원, 선원 3백만~5백만원)을 받기 위해 무제한적인 장시간 노동을 강요하고, 이 과정에서 선원들이 쉬고 싶어하거나 아프다고 하면 무자비하게 폭행이 가해지게 된다는 것이다.

일반선원 중에서도 동료선원의 폭행에 가담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역시 보합금 때문이다. 몇명이 중도하선할 경우 바로 충원이 안돼 그만큼 작업량이 가중되고 자칫하면 계약어획고를 채우지 못하게 돼 목돈의 꿈이 수포로 돌아갈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동료를 증오하게 만드는 것이다.

선주와 선장이 짜놓은 이같은 구조적인 문제의 개선을 비롯해 선령 20~30년의 노후선박 교체와 장비의 현대화 등이 이뤄져야 선원수급난 속의 원양어업이 그나마 유지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민주화됐다고 하는 사회에서 선원들이 겪고 있는 정말 상상할 수 없는 인권침해 사례에 대해 사회 전체가 좀더 진지한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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