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무의 옷 몸에 두른 쾌락의 종말
  • 이세용 (영화평론가) ()
  • 승인 1991.09.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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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타는 따로 울지 않는다>

감독 : 이석기
주연 : 손창민 이혜숙

이석기 감독의 <낙타는 따로 울지 않는다>는 실화를 바탕으로 썼다고 알려진 김한길의 원작소설을 각색한 영화. 쾌락과 젊음을 맞바꾼 재미교포의 마약체험, 도박과 섹스의 순례기이다.

부패한 전직 고위층의 아들(손창민)이 라스베이가스를 무대로 흥청망청 젊음을 탕진한다. 범죄조직과도 관련을 맺는가 하면 돈을 물쓰듯 소비하고, 사랑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여자(이혜숙)와 가까워지기도 한다. 결국은 자신의 고독과 허무를 이기지 못한 채 카지노에서 인생을 마감하는 이야기가 화려한 도시풍물을 볼거리로 제공하면서 전개된다.

이 영화에는 도박 범죄 마약 같은 반사회적인행위가 우리 영화로서는 충격적일 만큼 과감하게 등장한다. 또한 영주권을 얻기 위한 위장결혼, 교포 상대 한인 신문사의 부조리 등 여러가지 에피소드가 자못 복잡하다. 하지만 <낙타는…>는 미국에서 로케이션하나 다른 한국영화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등장민물들은 하나같이 실패한 쓰레기들이고, 성과 환락의 원색적인 묘사가 스크린을 채운다.

<낙타는…>가 보여주는 것이 재미 한인사회의 실상 가운데 하나일지 모른다. 어쩌면 더 엄청난 현실의 일부분을 겨우 표현했을 뿐이라고 주장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보면서 느끼는 감정은 사뭇 다르다. 이 영화는 등장인물들의 성격에 일관성이 없고 극적 구성이 개연성을 갖지 못함으로써 에로티시즘과 포르노그라피의 경계를 넘나들 뿐이다.

에로티시즘이라니, 당치도 않다. 에로티시즘은 머리 속에서 진행되는 것, 상상적인 것인데 인간의 원초적인 본능을 드러내며 생의 활력소로 작용한다. 그러나 포르노는 다르다. 포르노의 끝은 휴지같은 허무이고 멸망일 뿐이다. 따라서 <낙타는…>의 흥행성공이 영화의 작품수준을 따지는 데 보탬이 되지 않는다.

사회적으로 말썽을 일으킨 ‘가진 사람’ 자식들의 행각을 통하여 우리 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아메리카 드림의 허상을 밝히려는 과정이 꼭 이래야만 하는가. 관객의 감수성이 견뎌내기 어려운 장면(우희와 꼬마기수의 예)을 통하여 무엇을 말하려는 것인지 도무지 어렵기만 하다.

현재 극장에서 상영되는 대부분의 영화들처럼 관객이 원하는 것을 보여주겠다는 서비스 정신에 충만한 필름들이 너무 자주 ‘대중성’을, 저급한 수준에 머물고 있는 작품성 부재의 알리바이로 삼는다. 그러나 사실은 대중이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를 ‘결정하는 기준’과 이를 ‘표현하는 방법’ 자체가 비판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삶에 대한 뼈아픈 자성이 없는 젊은 남녀가 눈물을 글썽이고 센티멘털한 대화를 나누며 인격분열을 일으킨다. <낙타는…>를 포스트 모더니즘 영화라고 주장하는 행위는 만든 쪽을 위해서도 보는 쪽을 위해서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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