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작으로 그린 시대 풍속사
  • 이문재 기자 ()
  • 승인 1991.09.12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중편 《우리시대의 소설가》 펴낸 조성기씨

제15회 이상문학상 수상작으로 소설가 조성기씨(40)의 중편 《우리시대의 소설가》가 결정되었다. 지난 8월 초 수상작이 결정되던 무렵 그는 백두산 천지를 밟고 있었다. “백두산의 정상이기도 하지만 위험한 낭떠러지이기도 한 천지처럼 이 상의 수상은 기쁨과 부끄러움, 그리고 두려움을 안겨주었다”고 그는 수상소감을 밝혔다.

문학사상사가 주관하고 김윤식 최일남 이재선 이문열 권영민씨 등이 심사한 '91이상문학상은 《우리시대의 소설가》에게 주어진 것이 지만 작가가 연작 형태로 천착해온 ‘우리시대의…’ 시리즈를 포함한 것으로 보아도 무방할 듯싶다. 조씨는 89년 중편 《우리시대의 무당》을 시작으로 《우리시대의 법정》 《우리시대의 사랑》 등 ‘우리시대의…’ 연작 7편을 발표하나 바 있다.

수상작 《우리시대의 소설가》는 작가가 7편의 중편으로 계획하고 있는 연작 장편의 ‘표제작’으로 원래는 (?)라는 꼬리가 달려 있었다. 작품 속의 소설가가 우리시대의 진정한 소설가는 아니라는 작가의 판단유보였다. 이 연작은 제목 뒤에 (!) (…) 따위의 문장부호를 달면서 구도자적인 소설가, 인기와 줄다리기하는 소설가 등 우리 시대의 소설가를 통해 문학과 전환기적 위기 상황을 반성해보자는 의도 아래 쓰여질 예정이다.

강만우라는 40대 수설가가 등장하는 《우리시대의 소설가》는 소설이 좋지 않다고 작가에게 환불을 요구하는 독자와, 소설 속에서 강만우가 쓰고 있는 중편 ‘말의 섶’이 중첩되면서 우리시대의 소설가와 우리 시대를 희화화한 풍자소설이다. 문학적 이상과 자존심은 높지만 현실의 압력 또한 만만치 않아서 소설가 강만우는 갈수록 샌드위치처럼 조여든다.

내면과 현실을 ‘청동의 문체’로 표현, 강인하고 장중한 세계를 서야 한다고 갈망하는 강만우는 그러나 에로물을 요구하는 신문사 문화부장, 리얼리즘 문학관으로 작가를 폄하는 독자, 그룹과외로 소설가라는 문화적 장신구를 몸에 걸려는 중산층 주부들, 그리고 베스트셀러의 위력 앞에서 무너진다. 자신의 소설에서처럼 칼빈과 맞서 자신의 신념을 지키다가 그 신념의 책에 의해 불태워진 중세의 세르베투스는 되지 못하는 것이다. 작가는 “칼빈과 세르베투스를 통해 문학이론의 교리화를 풍자했다”고 말했다.

수상작에서 드러난 일상성과 에로티시즘, 그리고 액자소설 등이 ‘우리시대 시리즈’의 한 특징을 이룬다. 최근에 나온 장편 《우리시대의 사랑》(세계사)은 기독교 세계관에 바탕한 작품들을 선보였던 작가에겐 하나의 반란이며 권위주의에 대한 모독으로 보인다. 네개의 중편으로 엮어진 이 장편은 권력과 제도 등이 행사하는 거대한 모독과 그에 반응하는 개인의 모독으로 압축된다. 거대한 모독은 성의 사회학이며 개인의 발산하는 작은 모독은 성의 심리학으로 읽힌다. 성의 상품화, 브레이크가 없는 욕망의 질주 등으로 설명되는 자본주의 사회를 성과 금기라는 창문으로 해석해내는 것이다. 욕망의 실체와 그 배후에 대한 그의 탐색은 소설문학의 지평을 넓히는 데 이바지하고 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좋은 문학이란 하비 콕스가 지적한 아케디아의 세계, 즉 욕망에 이끌려 생각없이 휩쓸리는 일상세계를 향해 끊임없이 반성의 계기를 제시하는 것”이라고 작가는 말했다. 이미 2백여 개가 넘는 ‘우리시대의…’ 시리즈 주제를 설정해 놓은 그는 연작형식이 주는 순발력과 다양성을 최대한 살려 우리시대의 거대한 풍속사를 완성할 생각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