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권통합 양金 시대 다시 오는가.
  • 이흥환 기자 ()
  • 승인 1991.09.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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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으로의 긴 여로 끝에 마침내 야권이 단일 통합야당을 출범시켰다. 6공화국 들어 민자 · 민주· 민중· 신민 당에 이은 5번째 신당 창당이다.

야권통합의 협상과정은 한국 정치현실의 현주소를 여실히 보여주는 한편의 정치 다큐멘터리였다. 당권 고수를 위한 세겨루기와 계파 지분확보를 위한 버티기가 연출됐는가 하면 은밀히 밀사가 오가기도 했고 밀담 내용을 의도적으로 공개하기도 했다. 협상이 막바지 진통을 겪으면서 며칠 사이에 엎치락뒤치락 반전을 거듭한 ‘야권통합’이라는 제목의 이 다큐멘터리는 대통합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법적 절차만 남겨놓은 통합야당이 탄생하면 통합 신당인 ‘민주당’(가칭)은 한국 야당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 하게 되고, 야권은 87년 이래 시달려온 ‘분열 고질병’을 일단 치료하는 셈이 된다.

노· 김 총재 밀월구도 막 내려
통합야당은 정국구도의 일대 전환을 예고한다. 3당 합당으로 비대해진 몸집 덕에 약체인 신민당과 민주당을 상대로 ‘좋은 시절’을 보낸 여권은 벌써 바짝 긴장하는 눈치다. 물론 원내 의석수에서 통합야당은 집권 여당인 민자당에 훨씬 못 미친다. 하지만 야권 신당은 의석수만으로는 계산할 수 없는 ‘통합 프리미엄’올 최대한 활용함으로써 거대여당에 맞설 수 있게 됐다.

광역의회선거에서의 참패, 지지부진했던 통합협상, 또 하나의 야권분열로 비쳤던 이른바 소통합과 제3의 야권신당 추진 등은 야권의 이미지를 먹칠하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갈기갈기 분열되기 직전의 대통합은 시선을 집중시켰고 바닥세를 면치 못하고 허우적거리던 야권의 위상을 일거에 끌어올린 것이 사실이다.

통합야당이 가져올 변화 중의 하나는 민자당과 신민당, 盧泰愚 대통령과 金大中 신민당 총재 간의 ‘밀월구도’가 막을 내린다는 것이다. 노· 김 사이의 밀월은 야권통합을 가로막던 장애물이었지만 역설적으로 보면 야권 대통합의 촉진제이기도 했다.

김 총재를 배제한 채 소통합을 추진한 신민당 정치발전연구회와 민주당 통합파를 서로 가깝게 만든 것은 바로 노· 김의 밀월관계이자 더 나아가 김 총재의 내각제 개헌 선회 가능성 이었다. 정발연과의 소통합이 어렵다고 판단을 내린 민주당 통합파는 김 총재와 개별적으로 접촉하는 과정에서 이 점올 확인하고자 했고, 김 총재는 내각제 개헌 불가를 확신시켰다. 대통합 협상을 급진전시킨 계기의 하나가 김 총재의 ‘결백 증명’이었던 셈이다.

노· 김 밀월구도의 종식은 또한 통합야당의 총공세를 의미한다. 20일 간의 국정감사 일정이 포함돼 있는 1.3대 마지막 정기국회는 이런 의미에서 야당이 정부 여당을 몰아붙이는 대성토장이 될 수도 있다. 정치성 예산 삭감투쟁이나 6공의 경제 실정 추궁 등 야당의 공격거리는 얼마든지 있다. 게다가 내년 상반기 총선거에서의 승리를 겨냥하고 있는 통합야당으로서는 이번 정기국회를 선거전의 출발점으로 삼을 만하다. 하지만 국정감사 기간이 정치 지도자들의 유엔참석 일정과 겹쳐 자칫 관심 밖으로 밀려나기 쉽고, 14대 총선을 앞둔 ‘파장국회’인 탓에 야당의 대여 공세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여권 내 김 대표 입지 크게 강화
호남 대 비호남 구도로 6공 후반기의 정치 일정을 끌어나가려던 여권의 전략이 어떻게 바뀔지도 관심사이다. 우선 신민당의 지지기반을 호남지역으로 한정시켜놓고 호남 대 비호남의 대결을 유도, 선거전을 수월하게 승리로 이끌려던 민자당의 14대 총선 전략은 수정이 불가피하게 되었다. 민정계 일부에서는 김대중 총재가 야권을 ‘평정’하기는 했지만 역시 지역적 한계를 벗어나긴 힘들 것이라고 낙관하고 있지만 마냥 느긋해 할 수만은 없는 형편이다.

민주계는 야권의 대통합 추진을 환영하고 나섰다. 金泳三 대표최고위원은 “야당이 강해야 여당도 강해진다”는 논리로 통합야당에 미소를 보냈다. 김 대표는 광역의회선거 이후 노대통령과 김대중 총재가 가까워지는 것을 잔뜩 긴장한 채 지켜보고 있었다. 민정· 공화계와 김대중 총재가 연합하는 내각제 개헌은 불가능하다고 강변했지만, 의구심을 완전히 떨쳐버리지는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통합야당의 탄생은 김 대표에 두 가지 선물을 안겨주게 된다. 내각제 개헌 등 노대통령과 김대중 총재가 손을 잡을 가능성이 사라진다는 것과, 야권 내의 김 총재 위상이 격상됨에 따라 여권 내에서 김 대표의 입지가 한층 더 강화된다는 점이다. 위협받던 양김 구도가 다시 확고하게 자리를 잡는 셈이고, 김 대표의 노대통령에 대한 발언권에 좀더 무게가 얹혀지게 되는 것이다.

민자당의 일부 중진 의원들은 통합야당으로 양김 구도가 복원되긴 하겠지만 양김씨에게 반드시 유리한 것은 아니라고 지적하기도 한다. 세대교체론이 부상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치권은 골바로 국회의 원선거와 대통령선거를 치르는 정권교체기에 돌입하게 되고, 각 정파는 그 어느 때보다도 강한 단결력과 지도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뚜렷한 대안 없이 세대교체를 주장 하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통합야당과 양김 구도의 정착은 차기 권력구조 문제와도 연관을 맺고 있다. 김대중 총재는 차기 대통령선거에서 야당이 승리한다는 강한 자신감을 내비치고 있다. 김 총재는 부통령 제도를 도입한 순수 대통령제를 여권에 제의해놓은 상태이며, 여권 일부에서도 내각제 개헌이 성사되지 않을 경우 대통령-부통령의 러닝메이트제 도입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어 사태 진전에 따라서는 여야 간에 순수 대통령제 개헌 논의가 새롭게 부상될 가능성도 있다.

통합 신당은 한 지붕 다섯 가족
통합야당의 앞길을 가로막는 장애물도 적지 않다. 민주당의 朴燦鍾· 金光一 의원이나 영남지역의 일부 원외 지구당위원장 등은 야당통합을 비난했다. 이들 중 일부는 이미 신당 불참을 선언해 ‘반통합파’라는 새로운 별명을 얻었고, 통합신당 참여파는 이들 비판세력의 이탈을 감수한다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또 일부 이탈자가 있더라도 신당 출범이라는 대세에는 큰 영향을 끼치지 못하리라는 견해가 지배적이기 때문에 반통합파는 정치적 낙오세력이 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통합 신당 내에는 신민당 주류· 정발 연· 신민주연합· 민주당 주류· 민주연합 등 최소한 5개의 이질적인 정파가 공존하게 된다. 민주당 의원들은 신민당 주류의 독주 가능성을 끊임없이 견제할 것이고, 반대로 신민당 주류는 나름대로 세 확보와 기득권 유지를 위해 애쓸 것이며, 사안에 따라 각 정파 사이의 이합집산이 예상되는 등 불협화음의 요소는 수두룩하다. 야권통합의 협상과정이 어려웠던 만큼 신당 출범 후의 항로 역시 험난하기 짝이 없을 것이다.

한집 살림을 차린 후에라도 이들 각 세력들이 이런 부정적 요인을 극복하고 한 지붕 밑에서 과연 얼마나 일치된 결속력을 보일지는 미지수이다. 통합야당의 첫 시험대는 국회의원 총선거이다. 그에 앞서 서울 등 일부 지역의 공천을 둘러싼 당내 갈등도 예상되지만, 우선 총선거를 치러야 한다는 점에서는 각 파의 이해관계가 일치하기 때문에 당내 불협화음을 최소화하는 노력은 불가피할 것 같다.

통합 신당은 김대중· 이기택의 ‘정치적 공동대표’라는 다분히 ‘정치적’인 지도체제로 운영된다. 김 총재 한사람을 법적 대표로 내세우되 이 총재가 김 총재와 동급 수준에서 공동으로 당을 운영한다는 것이 협상 결과이지만, 실제로는 김 총재의 주도 아래 당이 운영되리라 는것이 일반적인 관측이다. 당 대표의 법적 권한은 당헌· 당규로 명시하도록 돼 있으나 실질적인 당권은 대표의 당 장악력에 따라 좌우될 수밖에 없다.

통합야당의 출범은 민자당과 더불어 보수 양당체제로 정국이 운영됨을 의미한다. 통합 신당의 앞날에 대한 궁금증 못지않게 민자당이 야권 신당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도 관심거리 중의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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