꺼진 불씨 다시 지핀 양당 ‘밀사’
  • 서명숙 기자 ()
  • 승인 1991.09.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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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光玉 의원 ·李富榮 부총재 ‘통합접점’ 찾아 … 민주 비주류 “밀실 야합이다”

야권통합 논의가 갑자기 급진전된 배경에는 두 사람이 있었다. 신민· 민주 양당 사이의 통합 논의가 지난달 17일 김대중 신민당 총재의 기자회견으로 교착상태에 빠진 이후, 사실상 야권통합 기류는 신민당 정치발전연구회(정발연)와 민주당의 소통합 쪽으로 치달았다. 그러나 그 마저도 4일 이기택 총재 초청형식의 모임이 정발연의 ‘내부사정’으로 불발되면서 정가에서는 “대통합도, 소통합도 물 건너갔다”는 비관적인 관측이 고개를 들었다.

그러나 물길은 돌연 대통합 쪽으로 돌려졌다. 꺼져가는 야권통합의 불씨를 다시 살려낸 것은 신당의 지도체제와 관련한 소위 ‘신공동대표제’(법적으로 김대중 총재 단독등록, 정치적으로 공동대표)라는 절충안이었다. 김대중 신민당 총재가 제안한 상임공동대표제와 민주당 당론인 공동대표제라는 평행선은 상임공동대표제에서 상임을 빼되 순수공동대표제에는 없는 법적 단독등록을 보장한 새 안의 출현으로 극적인 ‘접점’을 찾게 된 것이다. 이 접점을 찾아낸 야권통합의 두 막후 인물이 친구 사이인 李富榮 민주당 부총재와 신민당 韓光玉 의원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신민당 통특위 간사이기도 한 한광옥 의원은 신민당의 ‘단골 밀사’로 일컬어질 정도로 막후  교섭의 전문가. 평민당 당시 총재비서실장을 지내는 등 김 총재의 의중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그는 지난 4월 ‘김대중· 김영삼 대구회동’의 막후 교섭역도 맡았었다. 이번 야권통합 논의과정에서도 민주당 金正吉 원내총무와 함께 공식적인 통합 창구 역을 맡아 협상을 진행해왔다.

재야인사로 더 잘 알려진 이부총재는 지난 2월 민주당의 확대창당 당시 ‘민주연합’(민연)을 이끌고 처음으로 제도권 정당에 발을 디딘, 제도정치권 내에서는 ‘신참자’.

이부총재는 서울대 정치학과, 한의원은 서울대 영문과 출신으로 대학동기인 이 두 사람이 교착상태에 빠진 양당의 공식 통합창구 대신 ‘비공식’ 라인을 가동한 것은 8월말께부터.    민주당과 정발연 의원들이 1차 공개모임을 가짐으로써 별도의 교섭단체를 구성할 것이라는 풍문이 나돌 때였다. 민주당은 두 갈래의 창구를 동시에 가동한 셈이다.

‘법적 대표성’ 이부총재가 먼저 제의
한의원과 이부총재의 여러 차례 만남 끝에 ‘공동대표제를 전제로 한 김 총재의 법적 대표성 인정’이라는 절충안을 먼저 제의한 것은 이부총재였다. 이부총재의 설명에 따르면 “정발연의 탈당미수로 김대중 총재의 당내 장악력이 더 커질게 뻔하고 민주당은 또다시 자중지난에 빠져 협상력이 크게 약화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신민당이 더 낮은 수준의 협상안을 요구하기 전에 서로 반보씩 양보하는 절충안을 내놓는 것이 국민 여망인 야권통합을 실현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이부총재를 직접 면담, 이 안을 설명 받은 김 총재는 여전히 상임공동대표제나 순수집단지도체제에 집착하면서도 이 안에 ‘상당한 흥미’를 보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와 동시에 민주당 이 총재를 비롯한 몇몇 주류 의원들도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이어 양당 총재는 3일 밤 박계동 비서실장의 김 총재 자택 방문, 4일 밤 한광옥 의원의 이 총재 자태 방문 등으로 ‘깊은 교감’을 주고받기에 이르렀다. 법적인 단독대표를 보장받은 이상 크게 아쉬울 게 없다는 김 총재의 계산과, 소통합 무산으로 더욱 어려워진 당내외 상황을 타개할 수 있다는 이 총재의 계산이 맞아떨어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기류가 언론에 의해 포착되고 ‘야권 통합 임박’의 보도가 잇따라 터져 나오면서 한광옥 의원· 이부총재의 막후교섭은 강력한 반발에 직면했다. 막후 교섭과정에서 소외된 민주당 비주류가 8일 서울시내 한일관에서 모임을 갖고 “친위 쿠데타” “ 3당 야합을 연상케 하는 밀실야합”이라고 거세게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이 자리에서 김광일 의원은 “밀실야합에 반대해 탄생한 민주당에서 야권통합을 밀실에서 몇몇 인사들이 담합하는 것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비민주적 행위”라고 맹렬히 공격했다. 심지어 비주류 인사들 사이에서는 “이 총재를 등에 업은 이부영의 쿠데타”라는 이야기까지 터져 나왔다.

비주류와 영남지역 위원장들의 비난은 표면적으로는 막후에서 전개된 비민주적인 절차와 방식에 맞춰졌다. 그러나 반발의 궁극적인 이유는 소위 ‘신공동대표제’라는 지도체제의 모양새에 있었다. 反 DJ정서가 강한 영남지역 위원장들로서는 ‘김 총재가 도장을 쥔’정당 소속으로는 출마할 수 없다는 게 지배적인 판단이기 때문이다.

이 총재도 언론의 보도가 너무 앞서가는데 불만을 터뜨리며 “단독대표 보장안에 합의한 사실이 없다. 언론에 의해 보도되는 바람에 순수공동대표제를 끝까지 밀어붙이지 못하는 게 아쉽다”며 막후 협상이 이부총재 개인의 선에서 이뤄진 것임을 강력히 시사했다. 그러나 당내에서는 이 총재가 이부총재의 안에 ‘상당 정도의 동의’를 해놓고도 원외지구당 위원장들의 반발과 여론의 향배를 좌고우면하며 모든 책임을 당 공식기구의 결정에 떠맡기려 한다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이런 당내 정황은 민주당의 공식 협상대표들이 9일 2차 실무회의에서 다시 순수공동대표제를 제기하는 상황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이는 지분문제에 대한 신민당의 양보를 받아내는 동시에 당내 반발세력에 대해 ‘끝까지 순수공동대표제 관철을 위해 노력했다’는 명분용이라는 인상을 짙게 풍기는 것이었다.

결국 한광옥 의원과 이부영 부총재의 막후교섭은 접점을 찾지 못하고 지리한 줄다리기를 하던 야권통합에 결정적인 계기로 작용한 셈이다. 다만 그 막후교섭이 지역감정의 고리를 풀고 야권의 대동단결을 기능케 한 불가피한 행위인지, 민주당 비주류의 주장대로 김 총재의 페이스에 말려든 비민주적인 쿠데타인지는 당분간 논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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