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 비결은 서비스의 집중
  • 글 박중환 기획위원 · 사진 나명석 기자 ()
  • 승인 1994.03.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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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부문 베스트 10 클릭닉 분석 전문화한 병원 대부분 상위권 올라

‘한국인 3대 성인병의 베스트 10 클리닉’ 평가 순위가 《시사저널》 제230호 커버 스토리에 보도되자, 의료계 안팎에서 비상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그 반응은 《시사저널》에 걸려 오는 전화에서 먼저 나타났다. 서울대 의과대 의료 관리학 교실은 《시사저널》과 코리아리서치센터가 창출한 ‘조사 틀과 평가 잣대’에 관해 깊은 관심을 보이며 자료 협조를 요청해 왔다. 서울중앙병원은 환자 만족도에서 낮은 점수를 받은 데 대해 불만을 표시했다. 한국소비자보호원의 한 관계자는 “의료의 질을 소비자 정보로서 체계화하여 보도함으로써 한국 언론 보도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라고 평가했다. 그런가 하면 사립대학 병원의 교수라고 밝힌 한 전문의는 “평가 자료 자체를 밝히고 검증 받기 전에는 납득할 수 없다”라는 반응을 보였다.

 격려해 주는 전화가 대부분이었지만 그 중 불만을 토로하는 내용도 몇몇 있었다. 《시사저널》은 3대 성인병에 대한 베스트 10 클리닉 평가 결과와 조사 · 평가 과정을 제230호 커버 스토리에 자세히 밝힌 데 이어, 암 · 고혈압성 질환 · 당뇨병 순으로 연재할 기사에 성인병별 의료진 및 기기에 관한 평가 자료 목록과 환자 만족도에 관한 설문 문항을 함께 싣는다. 이는, 권위 있는 전문의 16인으로 구성된 위원회와의 약속에 따른 것이다. 이번에 공개하는 자료가 여론을 폭넓게 수렴하여 의료의 질을 더욱 완벽하게 조사하고 평가할 수 있는 틀과 잣대를 마련하는 데 기여하기를 기대한다. 〈편집자〉

 암 부문의 평가 순위에서 맨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서울대병원이 연세대 신촌세브란스 병원에 뒤졌다는 점이다. 이런 순위에 접한 의료인이나 일반인이나 대개는 고개를 갸우뚱했을 법하다.

 이런 결과는 어디에서 연유했으며, 또 어떤 의미를 갖는가. 이는 《시사저널》과 코리아리서치센터가 창출한 조사 틀과 평가 잣대 구실을 한 세 가지 차원(△의료진 △기기 및 시설 △환자 만족도)과 각 차원을 구성하는 항목의 점수 그리고 각 항목을 구성하는 자료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쉽게 알 수 있다(오른쪽의 점수 및 순위 도표와 66~69쪽 좌우의 암 부문 평가 자료 참조).

 먼저 ‘의료진에 대한 평가(차원1)’에서는 신촌세브란스병원은 1위, 서울대병원은 2위였다. 그 항목 하나하나를 살펴보면 서울대병원은 ‘암 클리닉 의료팀’항목(자료 7), 환자수(자료 17) 및 진료 실적(자료 18)으로 짜여진 ‘환자 및 진료 통계’항목, 그리고 ‘암 연구소 업적(자료 16)’에서 수위를 차지했다. 서울대병원이 암 관련 전문의와 이들의 시술과 학술 · 연구 업적 면에서 가장 앞선 병원임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병원 및 암 클리닉의 일반 자료’항목(자료 1~6)은 2위였으며, 특히 ‘암 클리닉 의료팀의 운영 및 활동(자료 8~16)’‘가점(자료 19~20)’ 두 항목에서는 모두 4위에 머물렀다. 이런 부진이 서울대병원을 ‘의료진’ 차원에서 뒤지게 했으며, 종합 순위에서도 2위에 그치도록 한 결정적인 요인이 된 셈이다. 특히 이들 항목 가운데 일부(자료6, 자료 14, 자료 15 등)는 전문 클리닉화한 센터형 병원일수록 유리하게 평가받을 수 있는 것들이다. 이 때문에 과목 별로 분산해 진료하는 종합병원 형태인 서울대병원은 신촌세브란스병원 암센터에 비해 불리한 요소를 안고 있다. 게다가 ‘병원 및 암 클리닉의 일반 자료’와 ‘암 클리닉 의료팀의 운영 및 활동’ 두 항목의 가중치가 각각 20%와 27%로 높아 점수 차를 더 벌려놓았다.

“서울대병원 거듭날 자극제 됐다”
 이런 결과는, ‘베스트 10 클리닉’의 평가틀과 잣대가 의료 서비스 체제를 어떻게 갖추고 환자에게 어떤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느냐에 맞춰져 있기 때문에 나온 것이다. 다시 말하면 서울대병원의 암 진료 전문의가 우수해도 의료 서비스의 질이 떨어진다면 그만큼 낮은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서울대병원이 2위에 그친 데 대해 서울대의과대학 교수들의 반향은 여러 갈래로 나타났다. 한 외과 교수는 “평가 자료를 제대로 제출하지 않아 낮은 점수를 받게 되었을 뿐이다”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또 “병원당국이 자료 협조를 제대로 안한 탓도 있지만 《시사저널》과 코리아리서치센터가 자료 보완을 더 철저히 하지 못한데 있다”고 지적했다. 한 내과 교수는 “어찌되었든 최고라는 우월 의식에 빠져 있는 서울대병원이 깨어날 좋은 자극제가 되었다”라고 했다. 다른 내과 교수는 “과감한 투자와 경영 혁신이 없으면 몇년 못가 2류 병원으로 뒤질 수 있음을 학교 당국자나 정부가 알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런 자책에도 불구하고 서울대병원이 갖고 있는 우수한 의료진과 고난도 시술 분야에서의 탁월한 수준은 부인하기 어려울 듯하다.

 암 부문을 ‘최고’로 끌어올린 연세대 신촌세브란스병원 암센터는 70년 3월 출범했다. 초기에는 시행 착오를 겪다가 80년대 초 센터로서의 면모를 갖추었고, 93년부터 독립적으로 운영하면서 암 진료 체제를 집중화하였다. 암센터의 전속 기능은 치료방사선 부문이며, 관련 진료 과목의 전문의는 신촌세브란스병원과 함께 운용되는 체제를 갖추고 있다. 그 때문에 치료방사선종양 분야에 5명, 약물 치료 분야에 5명, 방사선물리 분야에 1명씩 전문의가 전속돼 간호사 19명과 함께 암센터의 주축을 이루고 있다.

“신촌세브란스 암센터, 이미 세계 수준”
 암센터 치료방사선과 김귀언 교수는 “여러 분야의 시술 면에서 이미 세계적인 수준에 있다”라고 자부했다. 그는 “최근 독일에서 개발했다고 언론이 소개한 열 치료법은, 신촌세브란스 암센터에서 이미 84년 이후 온열 요법이란 이름으로 무려 7백여 명에게 시술해온 방법으로, 간암 치료에 특히 효험을 보고 있다”라고 밝혔다.

 한편 가톨릭의대 여의도성모병원은 ‘의료진’차원에서 4위인 데 비해 가중치가 33%로 높은 ‘기기 및 시설’차원에서는 2위로 껑충 뛰어 종합 순위 3위에 올랐다. 이 병원은 암 진료를 전문 클리닉화하여 서비스 체제를 집중화한 데다가, 선진국 수준임을 자부하는 골수암 진료 체제를 특수 센터화한 것이 높은 평가를 받는 데 한 몫 한 듯하다. 반면 골수암을 제외한 암 전반에 걸쳐 앞설 것으로 보였던 가톨릭의대 강남성모병원이 여의도성모병원보다 훨씬 뒤진 6위였다. 이런 역전은 여의도성모병원과 강남성모병원이 ‘의료진’ 차원에서는 4위(115.6점)와 5위(115.4점)로 엇비슷하지만, ‘기기와 시설’ 차원에서 2위와 9위, ‘환자 만족도’에서 5위와 10위로 큰 격차를 보인 데서 비롯되었다. 두 차원 간의 격차에 대해 평가 위원회 가운데서도 이의를 제기하는 위원이 있었다. 만약 이런 이의가 옳다면 이는 강남성모병원의 평가 자료가 여의도성모병원에 비해 허술하게 작성된 탓이라 할 수 있다.

 서울중앙병원을 종합 4위에 오르게 한 1등 공로가 ‘기기 및 시설’차원(1위)에 있다면 종합 4위에 머물게 한 방해 요인은 ‘환자 만족도’(16위)일 것이다. 서울중앙병원이 불만을 보이는 것도 바로 여기에 있다. 개원 5년째로 연륜이 극히 짧은 서울중앙병원이 종합 순위에서 급부상한 것은, 실제 소유주인 현대 그룹이 갖고 있는 풍부한 자금과 특유의 성장지향적 경영 방식과도 영관이 있어 보인다. 이 병원의 한 경영 관계자는 “개원 이후 병원에 필요한 의료 기기와 시설에 대한 투자 요청을 재단에서 거부한 적이 한번도 없다”라는 말을 했다. 그런데도 환자 만족도가 크게 떨어진 것은, 짧은 기간에 환자가 많이 몰리는 데서 빚어진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의료진’과 ‘기기 및 시설’ 평가에서는 각각 6위와 1위로 둘 다 좋게 나타났다. 그러나 ‘환자 만족도’에서, 의료진에 대한 인식과 기기 및 시설에 대한 환자의 평가는 둘 다 21위였다. 평가 자료에서 나타나는 실상과 환자의 인식 사이에 큰 격차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런 모순은 급성장하는 서울중앙병원에 대해 환자의 기대감이 큰 데서 빚어진 실망과 불만 때문에 생긴 것으로 풀이 할 수도 있다.

대구 두 병원 10위권 들어
 종합 5위인 원자력병원은 암 부문 베스트 10에 든 클리닉 가운데 그 순위를 두고 가장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킨 병원이다. 국립원자력연구소 부설 기관인 이 병원은 63년 설립된 이후 국내 방사선 치료에 관한 한 선구자라 할 수 있다. 이 병원의 입원 환자 가운데 90%가, 외래 환자의 절반이 암 환자이다. 또 19개 진료 과목의 전문의 60여 명이 모두 암 환자를 진료하는 점 등을 미루어 병원 전체를 암센터로 보아도 족할 듯하다. 특히 이 병원은 국내에 1대뿐인 중성자 치료기와 같은 첨단 기기와 암 전용 시설을 두루 갖추고 있다. 이 병원 치료방사선과 유성렬 과장은 《시사저널》 평가 결과에 대해 “암 분과위원회에 치료방사선과 전문의가 한 사람도 없어 이 분야에서 가장 앞선 원자력병원이 원천적으로 소외되었다”라고 불만을 나타냈다. 암 치료는 약물 요법과 방사선 요법, 수술 요법으로 나누어진다. 방사선 요법은 과학 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그 몫을 더해가고 있다. 유과장은 원자력병원이 “한국인에게 많이 발병하는 위암?유방암?폐암뿐만 아니라 침샘?전립선?뼈?근육?직장과 같은 방사선 치료가 어려운 부위의 종양 치료에 단연 앞서 있다”고 자부했다.

 이런 점에서 원자력병원이 ‘기기 및 시설’차원에서 여의도성모병원(2위)보다 낮은 4위에 그친 것은 인색한 평가였다는 지적이 설득력 있어 보인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원자력병원이 보유한 몇몇 기기는 투자에 비해 쓰임새가 적은 것들이라며 4위는 공정한 평가였다고 말하기도 한다. 원자력병원이 센터형 병원의 강점을 갖고 있으면서도 종합 순위를 더 끌어올리지 못한 것은 ‘환자 만족도’에서 18위로 뚝 떨어진 데 원인이 있다.

 암 부문에서 괄목한 병원은 종합 7위인 계명대 동산병원과 종합 8위인 경북대병원. 대구에 있는 이 두 병원은 지방에 있다는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서울의 유명 병원을 제치고 10위권 안에 앞서거니 뒤서거니 진입했다. 계명대 동산병원은 ‘기기 및 시설’에서 여의도성모병원과 함께 2위를 기록하여 경북대병원(9위)을 앞지르는 데 크게 한 몫을 했다. 이밖에도 동산병원이 ‘의료진’ 차원 부문 가운데서 경북대병원보다 앞선 것은 ‘병원 및 클리닉의 일반 자료’‘암 클리닉 의료팀의 운영과 활동’ 두 항목이다.

 대구 지역의 두 병원이 10위권에 진입한 것과는 대조적으로 제2 도시인 부산은 한 곳도 없다.
 고려대 안암병원은 ‘기기 및 시설’차원에서 4위를 기록하였으나 ‘환자 만족도’에서는 26위로 바닥까지 떨어져 종합 순위 9위에 그쳤다. 91년 7월 현 신축 건물로 옮긴 안암병원은 첨단 기기를 갖추었으며, 주요 진료 업무를 전산화한 덕분으로 ‘기기 및 시설’에서 높은 점수를 받은 것으로 평가되었다. 그러나 진료 체제를 기존 종합병원 형태를 유지함으로써 ‘의료진’에서 불리한 점수를 받게 됐다.

 공동 10위인 연세대 원주기독병원과 순천향대병원은 세 가지 차원에서 엇비슷한 평가를 받았다. 그 가운데 ‘환자 만족도’차원에서 둘다 20위 이하의 낮은 순위를 얻어 한발짝 더 앞서는 데 실패했다.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은 세 부속 병원 가운데 본원인 신촌세브란스병원과 원주기독병원이 10위권에 든 반면, 영동세브란스병원은 등외로 밀려났다. 일부 위원은 이 병원에 대한 매우 낮은 평가 결과에 의아함을 나타냈다. 이 병원은 연구?학술 기능 대부분을 본원인 신촌세브란스병원에 의존하는 데다가, 마감일 직전에 제출한 자료 가운데 부실한 것도 더러 있어 나쁜 결과를 받은 것으로 분석되었다.

평점 기준 마련에 어려움
 암은 발병 부위에 따라 수십 가지로 나누어진다. 그 부위에 따라 발명 원인과 요법도 달리하는 특성을 갖고 있다. 그런 까닭에 암 진료의 서비스 수준을 평가하는 것도 약간씩 달라 하나의  평가 기준을 마련하는 데 어려운 점이 많았다. 따라서 각 자료에 평점하는 기준을 마련하는데 한계가 있어 평점의 기준을 별도로 마련하지 못했으며, 주요 부위별 권위 있는 전문의로 구성된 암 분과위원회에 그 기준을 일임해 평가를 받았다.

 개개 자료에 대한 평점과 가중치는 둘다 최고 5점에서 최저 1점 사이에서 점수를 부여하는 방법으로 했다. 최종 점수 격인 종합 점수는 개개 자료?항목?차원 순으로 표준화한 뒤 지수화하는 통계 방법으로 처리했다(통계 방법과 처리 과정은 제230호 커버스토리 참조).

 암의 발병 원인을 찾아내고 치료 백신을 개발하려는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특효 치료제가 개발되기 전에는 공포의 대상일 수밖에 없다. 암에 걸리기 쉬운 요인을 일상생활에서 피하는 예방 용법이 나오고 있으나 이런 것만으로 두려움에서 벗어나기는 어렵다. 그나마 암이라는 공포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길은 정기적인 검진을 통해 하루라도 빨리 발견하여 치료하는 것뿐이라고 전문의들은 충고한다. 특히 한국 사람에게 많이 발병하는 위암?대장암?유방암 등은 유전적 성질을 갖고 있어 가족 중에 앓았거나 앓는 사람이 있으면 적어도 1년에 한차례 이상 검진하는 것을 게을리해선 안된다. 정기 검진은 암뿐만 아니라 모든 질병으로부터 건강을 보호하는 최선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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