野統 소용도이에 민자 ‘철렁’
  • 조용준 기자 ()
  • 승인 1991.09.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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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경기 충청 등 중부권서 야권 바람몰이 우려… ‘영남당’ 전락 가능성도

야권이 하나로 결집, 단일 세력을 창출한 것은 여권에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이는 l4대 총선이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소용돌이 속에서 진행될 것임을 예고하는 사건이기도 하다. 집권여당은 정치일정 및 차기 대권구도에 따른 모든 전략을 전면 수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신민당이 지역당으로 남아 있는 한 14대 총선에서도 유리한 고지에 서리라 확신하고 있던 거대 민자당은 이제 거꾸로 역습을 당하고 있다.

야권통합의 압박을 비교적 덜 받는 강원도 출신 민정계 한 중진의원마저도 “이율곡 선생이 10만 양병설을 부르짖었을 때 조정은 당쟁에만 신경쓰느라 귀담아 듣지 않았다. 민자당은 파쟁에만 치우쳐 있느라 야권의 동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야권통합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가슴이 덜커덕 내려앉으면서 이율곡 선생의 일화가 제일 먼저 떠올랐다”고 술회할 정도이다.

14대 총선이 불과 6개월 정도밖에 남지 않은 현시점에서 서울 경기 충청 강원도에 지역구가 있는 민자당 지구당위원장들은 그 누구보다도 심각한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다. 대부분의 민자당 지구당위원장들이 타계파의 조직을 완전히 흡수했다고 보기 어렵고, 조직책에서 탈락한 구 지구당위원장들의 반발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에 이들은 안팎의 도전에 시달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울, 유례 없는 대혼전 양상 보일 듯
우선 서울 지역을 살펴보자. 지난 광역의회 선거에서 나타난 득표수로 따져볼 때 민자당은 40.6% 신민 ·구 민주당의 합산 득표율은 48.3% 로 나타났다. 민자당 득표수가 신민 ·민주당의 합산득표수보다 앞서는 곳은 42개 선거구 중에서 딱 두 곳, 종로구(李鍾贊 의원)와 강남을구(李台燮 의원)뿐이었다. 광역선거 결과만으로 14대 총선을 점쳐본다면 통합야당 민주당이 무려 40개 선거구를 휩쓸 가능성이 있다고 예상할 수 있다.

물론 이는 하나의 가정에 불과하다. 14대 총선이 치러지기까지 정치권에 어떠한 변화가 생겨날지 모르고, 광역선거 당시의 야권지지표가 전부 민주당에 쏠린다고 볼 수 없기 때문에 이 선거 결과를 14대 총선에 그대로 적용하기 어려운 측면도 있다. 민주당이 14대 공천을 앞두고, 민자당이 보여주었던 해묵은 지분싸움을 재현할 경우 통합 야당의 위력은 현저히 떨어질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지난 13대 총선과 광역선거 결과를 종합 비교하면 14대 총선을 미리 예상할 수 있는 하나의 잣대가 될 것 같다.

13대 총선 당시 옛 평민당 후보에게 1천표 내외의 차로 힘겹게 승리를 거두었던 민자당 의원들은 한층 더한 심리적 부담감을 갖게 된 형편이다. 이들은 金榮龜(동대문을 ·민정계) 白南治(노원갑 ·민주계) 金鎔采(노원을 ·공화계) 金在光(은평을 ·민주계) 金杞培(구로갑 ·민정계) 劉基洙(구로을 ·공화계) 의원 등이다.

광역 선거에서 근소한 표차로 민자당 후보가 당선됐거나, 신민 ·민주 합산표가 민자당 후보를 월등히 앞선 곳도 민자당 의원에게는 일단 위협적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지역구에는 徐廷和(용산구·민정계) 朴容萬(성동병 ·민주계) 申五澈(도봉갑 ·공화계) 姜聖模  서대문갑·민정계) 姜信玉(마포을 ·민주계) 羅雄培(영둥포을·민정계) 徐淸源(동작갑·민주계) 金佑錫(송파갑·민주계) 金德龍(서초을 ·민주계) 金東圭(강동갑 ·민주계) 金重緯(강동을 ·민정계) 의원 등이 해당된다. 이 지역들은 신민 ·민주 합산표가 적게는 5천표부터 3만 표까지 앞섰던 곳이다.

이에 따라 14대 총선은 서울의 경우 유례없는 대혼전 양상을 나타낼 것으로 보인다. 이중 상당 지역에 벌써부터 거물급들이 속속 출현, 긴박감을 더해주고 있다. 서초을구의 경우 민자당 金泳三 대표의 핵심측근 김덕룡 의원을 향해 金容甲 전 총무처장관 이 일찌감치 도전장을 냈고, 朴世直 전 서울시장도 구미시와 이곳을 두고 한창 저울질중이다. 최근에는 張世東 전 안기부장이 사무실을 개설, 출마 검토 중이라는 추측을 낳고 있다. 김용갑씨는 연고지인 밀양을 버리고 서초을에 출마하는 이유에 대해 “진정한 정치발전을 위해서는 양김시대를 청산하는 것이 시급하다. 김영삼씨의 핵심 측근인 김덕룡씨를 14대 총선에서 떨어뜨리는 것도 양김시대 종식에 일조할 수 있으리라 판단했다”는 독특한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통합야당 출범으로 관심을 더욱 끌게 된 또 하나의 선거구는 강남을구. 이 지역은 광역선거 결과 여권 지지표가 비교적 안정 된 것으로 나타나 종로구와 더불어 통합야당의 집중공격 대상 지역으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민자당의 李台燮 의원이 수서사건과 관련, 다음 공천을 받지 못할 것이 확실해지면서 지역구를 가지지 못한 민자당 중견 인사들이 잔뜩 눈독을 들이고 있어 민자당내의 공천 경합도 치열하다. 김 대표의 핵심측근이면서 민자당 당무위원인 姜仁燮 씨가 일찍이 사무실을 열고 활동을 벌이고 있어 이 지역이 자기네 몫임을 강조하는 민정계와 한판 힘겨루기가 불가피하게 됐다.

민자 당무회의. 중선거구제 새삼 거론
꾸준하게 언론에 오르내렸던 洪思德 전 의원이 재기를 노리고 있고, 전 통일민주당정책 연구실장이었던 李信範씨도 최근 강씨 사무실 맞은편에 연구소를 개설, 총선 출마를 기정사실화했다. 강씨와 이씨는 지난 대통령선거 당시 김영삼씨의 참모로 함께 일했으나 3당 통합으로 서로 다른 길을 걷게 된 경우이다. 현대건설 李明博 회장의 출마설도 끊이지 않고 있다. 특히 이씨의 부인이 여대동창모임을 통해 표밭을 일구고 있다고 알려졌다.

인천 지역은 서울과는 약간 사정이 다르다. 인천시 전체를 볼 때 광역선거에서 민자당은 41.6%의 득표율을 보인 반면, 신민 ·구 민주 합산 득표율은 26.3% 에 머물렀으며 각 선거구별로 따져도 민자당 득표율을 앞선 곳은 단 한 곳도 없다. 따라서 인천시를 독점하고 있는 민자당국회의원 7명은 일단 안정권에 들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무소속 출마자의 전체 득표율이 무려 30.1% 로 강세를 보였기 때문에 인천 지역의 경우는 이들 무소속 지지표의 향배가 다음총선을 가름할 절대 변수로 떠올랐다. 특히 이 지역의 야권이 기초 ·광역 두 선거에서 야권 단일후보를 내놓아 성공했던 경험이 있고, 야권의 분열에 실망한 상당 수 표가 무소속으로 기울었다는 분석이 나 오고 있어 여전히 마음 놓을 상황이라고 보기 어렵다.

경기도의 경우 광역선거에서 무소속 후보가 인천시처럼 강세를 보였으나 신민 ·구민주 합산표가 민자당을 앞서거나 거의 비슷한 곳은 경기지역 28개 선거구 중 11개 지역이나 됐다. 수원을(李秉禮 ·공화계) 성남갑(李大構 ·공화계) 안양갑(李仁濟 ·민주계) 안양을(申河澈 ·민주계) 부천중(林茂雄 ·민정계) 부천남(崔箕善 · 민주계) 광명시(金炳龍 ·공화계) 안산 · 웅진(張慶宇 ·민정계) 구리시(田珞源 · 민정계) 고양군(李澤錫 ·공화계) 등이 이에 해당된다. 이 선거에서 민자당은 모두 442%를 득표했고 신민 ·구 민주당은 33%, 무소속은 21.3% 의 득표율을 보였다. 경기도는 지난 13대 총선 결과 여당 대 야당의 비율이 17 : 11 이었으나 3당 합당으로 인해 성남을(李講九 ·구 평민당)만이 유일한 야당지역으로 남아 있다.

14대 총선에서 서울 ·경기 등의 중부권이 최대 혈전장이 되리라는 것은 쉽게 짐작 할 수 있다. 지난 11일 민자당 당무회의에서 새삼스럽게 중선거구제로의 개정론이 대두된 것은 바로 이 같은 위기의식을 바탕으로 했다고 볼 수 있다.

중부권 누가 장악하느냐가 여야간 관건
여당의원들은 국회의원 선거철마다 불어 닥쳤던 야당 바람의 ‘악몽’이 기억날 수밖에 없다. 민자당 대부분 의원들은 “야권이 통합이라는 새로운 원병을 얻은 이상, 어떤 바람이 불지 모른다”고 걱정을 하고 있다. 야당 의원들도 “야권 특유의 바람몰이를 통해 신민 ·구민주당의 단순 득표율을 훨씬 뛰어넘는 상승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장담하고 있다.

전국구를 제외한 2백24개 의석 중에서 서울 ·인천 ·경기가 차지하는 의석수는 모두 77개로 전체의 30%에 해당된다. 따라서 거대 여당 민자당도 중부권에서 실패한다면 그야말로 ‘영남당’이라는 지역당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고, 신생 민주당 또한 중부권에서 표 획득에 실패한다면 통합 야당의 명분과 의의가 크게 퇴색할 것이 분명하다. 어떤 당이라도 중부권의 참패는 곧 대통령 선거마저 치르기 힘든 상황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 총선 이후 정국의 주도권을 과연 어느 당이 잡느냐는 중부권을 누가 장악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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