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밀리 엄마들의 ‘분노의 수업’
  • 김당 기자 ()
  • 승인 1994.03.31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분교 폐교 부당하다” 자치 교육 … 당국선 “무인가 교습 처벌”



 아이들이 줄고 있다. 교육부에 따르면 올해만도 전국적으로 국민학교 학생 수가 22만명이나 줄었다. 그와 더불어 올해는 이미 3백개에 이르는 국민학교(분교 및 본교)가 3월2일자로 통폐합되었다. 이들은 대부분 농촌에 있는 학교들이다. 특히 올해 통폐합된 학교가 늘어나는 까닭은, 교육부 관계자의 말을 빌리면, 취학 연령 아이들이 줄어든 데다 ‘우루과이 라운드 태풍’의 여파로 도시로 빠져나간 농촌 인구가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산 절감과 학력 향상을 내세운 통폐합의 논리는, 영세농의 자연 도태를 부추기는 ‘규모의 경제 논리’와 더불어 거부할 수 없는 대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 두밀리라는 한 작은 마을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태는 그 동안 아무도 거부할 수 없었던 이와 같은 대세가 과연 온당한 것인지 묻고 있다.
 두밀국민학교(분교)는 올해 입학한 6명을 포함해 학생 수가 25명인 작은 학교이다. 그래도 지난해의 21명에 견주면 4명이 늘었다. 그러나 이 아이들은 지금, 지난 2월까지만 해도 마음껏 뛰놀던 널찍한 운동장과 정든 선생님 두분을 잃고서 빨간 도장이 찍힌 채로 봉인된 교문 너머로 학교를 바라볼 수밖에 없는 처지이다. 이 학교 또한 다른 학교들처럼 3월2일자로 폐교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학부모들과는 달리 두밀리 학부모들은 빼앗긴 학교를 되찾기 위해  마을회관에서 제 자식들을 손수 가르치고 있다. 교육 행정당국의 표현을 빌리면 ‘무인가 장소’에서 ‘무자격 교사’들이 하는 ‘무인가 교습 행위’이다.

“예산절감 · 학력향상 이유는 근거 없어”
 두밀분교가 폐교되었다는 결정이 주민들에게 정식으로 통고된 것은 지난해 12월10일이었다. 그뒤로 주민들은 교육개혁위원회와 국무총리실 등 관계요로에 폐교 결정을 재고해 달라고 진정을 했지만 묵묵부답이었다.

 교육청의 폐교 논리는 분명하다. 정부 시책에 따라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정부 시책이 내세우는 근거는 예산 절감과 학력 향상이다. 가평군 교육청에 따르면 지난해 두밀분교의 1년 예산은 5천4백만원으로 학생 1명당 2백50여만원꼴이다. 그런데 정부 시책에 따라 통폐합할 경우 학생 1명당 백만원 이상을 절감하게 된다는 것이다. 또 통폐합을 하면 지난해까지 교사 2명이 전학년을 둘로 나누어 가르쳤던 3복식 수업을 단식 수업으로 바꾸게 돼 학력이 향상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주민들은 이 모두를 부정한다. 주민들에 따르면, 통학버스를 구입해 운영하게 되므로 차량 구입비, 유지비, 기사 월급 등을 감안할 때 예산 절감 효과는 그다지 크지도 않거니와 오히려 교통사고의 위험이 크고 통학버스를 놓칠 경우 등 · 하교하기도 어렵다는 것이다. 또 3복식 수업을 받아온 두밀분교 아이들이 다른 아이들보다 학력이 뒤진다는 증거는 없다는 것이 주민들의 주장이다. 며칠 안되지만 평생 처음으로 교사 노릇을 해본 학부모들은 오히려 한 학급이 10명 안팎인 농촌 학교의 복식 수업이 도시의 콩나물 교실에 견주어 여러 장점도 있다고 주장한다.

 우선 학생과 교사와의 친밀한 관계로 사제간의 두터운 정이 유지되고, 학생 수가 적어 교사가 잡무에서 해방돼 학생 지도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두밀분교의 경우 지난해까지만 해도 방과 후에 아이들이 학교에 남아 자율 학습을 하거나 고학년 아이들이 저학년 동생들을 학교 운동장에서 데리고 놀 수가 있어, 어린들이 모두 나서 농사  일을 해야 하는 농촌에서 더할 나위 없는 탁아소 역할까지 맡아왔다는 것이다. 

 주민들이 두밀분교에 남다른 애착을 갖는 까닭은 , 이 학교 건물은 물론 축대와 담까지 모두 주민들이 지난 65년에 손수 지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주민들은 또 아이들이 옮겨갈 상색국민학교도 2~3년 안에 폐교될 학교라는 점에 우려를 나타낸다. 이같은 우려는 통폐합을 둘러싼 의혹과 연결된다. 상색국교가 올해 두밀분교와 합치지 않았다면 전교생이 70여명 밖에 안돼 폐교되거나 적어도 분교가 될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

 주민 장호순씨에 따르면 실제로 폐교 거부 투쟁을 하면서 92년 및 93년 3월 두 번에 걸쳐 상색국교에서 두밀분교 학생을 서류상으로 빌려간 것을 확인했다는 것이다. 즉 두밀분교에 적을 둔 아이들을 학기 초에 서류상으로 잠깐 빌렸다가 학생 수를 보고한 뒤 다시 두밀분교로 전학시키는 편법을 썼다는 것이다. 따라서 상색국교가 두밀분교와의 통합을 적극 추진했고, 또 교육청에 두밀분교의 올해 취학 학생 수(25명)를 실제보다 적게 보고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이같은 지적은 가평군내 국민학교 현황을 보면 설득력이 있다. 올해 가평군 내에서는 두밀분교를 포함 6개교가 폐교되었는데 학부모들이 폐교를 요청한 금대분교를 제외하면 모두 두밀분교보다 학생 수가 적다. 또 폐교 대상이지만 폐교는 되지 않은 관내 분교는 8개교인데 이 중 한곳을 제외하고는 모두 두밀분교보다 학생 수가 적다. 물론 학생 수가 통폐합의 절대 기준은 아니다. 그러나 또 다른 기준인 통학 거리를 보더라도 기준에 맞아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에 대해 가평군 교육청 심재하 학무과장은 “현재의 통폐합 지침대로라면 가평군 내에 남을 학교는 별로 없다. 주민들의 학교에 대한 애착은 이해하지만 절차상 아무런 하자가 없는데 민원에 따라 국가 시책을 변경할 수는 없다”라고 말했다. 교육부 의무교육과의 한 담당자도 “두밀분교의 통폐합은 전적으로 경기도 교육감이 결정한 것으로 절차상 하자가 없으므로 예외는 있을 수 없다”라고 못박았다.

주민들, 헌법소원 등 법적 대응 준비
 그러나 예외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부산시 교육청에서도 최근 도심 공동화에 따라 학생 수가 크게 줄어든 충무국교를 폐교하고 8백여m 떨어진 인근 남부민국교로 통합하려 계획을 재검토하기로 결정한 바 있다. 부산시 교육청 초등교육과의 한 담당자는 이에 대해 학부모들의 교통 문제 걱정과 동창회의 폐교 불가 여론 등을 교육위원회에서 받아들인 결과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지난해 ‘농어촌 소규모 국민학교 경영 개선방안’연구 계획에 참여한 한국교육개발원 김용우 고등교육연구부장은 “통폐합 자체는 불가피하지만 현재의 통폐합 기준(학생 수가 1백80명 미만이고 4㎞ 이내에 흡수 학교가 있을 때)을 획일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무리이다. 복식 수업을 하더라도 일정한 학력 수준이 유지된다면 주민들의 의견을 고려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강희자씨 등 엄마 선생님 3명은 지난 3월7일 가평군 교육청으로부터 ‘무자격 교사’의 ‘무인가 교습 행위’를 중단치 않으면 법에 따라 처벌하겠다는 경고장을 받은 상태이다. 그러나 당국의 엄포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무인가 교습 행위는 계속될 전망이다. 주민들은 아이들을 가르쳐줄 임시 교사를 찾는 한편으로 행정소송이나 헌법소원 등 법적 대응을 준비하고 있다. 두밀리에서 7년째 목회를 하고 있는 한명석 목사는 이 사건의 의미를 “비록 실패하더라도 그동안 지역적 특수성은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일방통행으로 지시만 해온 교육행정가들에게 큰 교훈이 될 것”이라고 풀이했다.
김 당 기자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