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 나도 펌프질 온천물 바닥난다
  • 박성준 기자 ()
  • 승인 1994.03.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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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곡 · 동래 등 “공급 능력 한계”… 성분까지 변화

온천을 찾는 사람들이 크게 늘었다. 전국의 이름 있는 온천에는 주말은 물론 평일에도 온천 이용객이 줄을 잇는다. 지난해 충북 중원군에 있는 수안보의 경우, 약1맥10만 명이 온천을 찾았다. 경북 울진군 백암 온천에는 2백20여만 명이 다녀갔으며, 충남 대덕 옆에 있는 유성 온천은 대전엑스포 덕분에 손님 5백65만 명을 맞아 흥청댔다.

 뜨거운 온천물이 쏟아지는 온천공을 이제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됐다. 예컨대 경남 창녕군 부곡 온천에서 가장 큰 부곡하와이는, 지난해 관광객 1백50만 명이 다녀가 입장료로만 약 1백50억원을 벌어들였다. 이 업소 판촉과장 천석진씨는 “사업장 규모에 비해 수입이 적었다”라고 볼멘 소리를 하면서도 “오는 98년까지 약 3백억원을 투자해 대규모 위락 단지를 만들 계획”이라고 밝힌다.

 현재 전국의 온천은 60여 곳이다. 한국온천협회에 따르면, 온천으로 지정되기를 기다리는 곳도 2백여 군데나 된다. 이렇게 온천산업은 갈수록 붐을 이루지만 정작 황금알을 낳는 온천 우물은 어떤가. 눈 앞의 이익을 중시하는 온천업자가 앞다퉈 물을 퍼올리는 바람에 온천물은 전에 없던 위기를 맞았다.

 국내에서 물이 가장 뜨겁다는 부곡 온천의 물부족증은 어느 곳보다 두드러졌다. 부곡 온천물의 용출온도(온천물을 바깥으로 뽑아냈을 때의 온도)는 평균 70℃. 온천이 처음 발견되었을 때인 73년 무렵, 이 지역은 땅에 구멍만 냈다 하면 뜨거운 물이 콸콸 쏟아져 나올 정도(自噴이라고 함)로 온천물이 풍부했다. 그런데 지금은 기계까지 동원해 물을 뽑아내는데도, 양수량이 시원치 않아 점점 깊숙이 물을 찾아 내려간다.

 소문으로만 떠돌던 이곳의 온천물 부족 현상은, 한국자원연구소가 펴낸 뒤 발간 사실조차 비밀에 부쳤던 보고서《부곡 온천 주수법 타당성 조사연구》가 확인해준다. 지난 92년 한국자원연구소가 경남 창녕군의 의뢰를 받아 작성한 보고서는, 이 지역의 지형 · 지질 구조와 수계 · 강수량 등을 조사한 일종의 ‘부곡 온천 신체검사표’이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부곡 온천 우물 깊이(온천 수위)는 82~85년은 연간 약 30m씩, 86년부터는 약 20m씩 깊어졌다. 특히 앞의 기간은 창녕군이 부곡을 온천지구로 지정해 개발이 한창 진행되었던 때로, 온천 개발이 수위에 영향을 주고 있음을 보여주는 결정적 증거가 된다. 이 보고서는 ‘부곡 온천이 근 20년 동안 개발에 개발을 거듭한 결과, 온천 수위가 오늘날 지하 2백50m까지 떨어져 공급 능력이 한계에 이르렀다’고 밝혔다.

우물 깊이 대부분 기준 이하로 내려가
 또 이 보고서는 과잉 양수가 온천 우물 깊이를 떨어뜨릴 뿐만 아니라 물의 성분까지 변화시키고 있음을 보여준다. 온천물에 포함된 총고형물의 농도가 낮아짐에 따라 나트륨(Na) 칼슘(Ca) 황산가스(SO) 탄산경도(HCO)값이 줄어든 것이다. 특히 부곡온천을 ‘유황천’으로 만든 성분인 황화수소(HS)는, 74년 9.0PPM 수준에서 92년 보고서가 나올 당시 0.05PPM으로 줄어들거나 아예 검출되지도 않았다. 부곡 온천은 더 이상 유황천이라고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보고서는 이렇게 성분이 변화한 원인을 ‘과잉 양수 탓에 지하수 흐름이 빨라져 암석과 지하수의 접촉 시간이 줄어들고, 용해 작용이 둔화한 결과’라고 분석했다.

 부곡 온천보다는 덜 심각한 상태이지만 부산 동래 온천도 그대로 가다가는 물부족증에 빠질 날이 멀지 않았다. 92년 한국자원연구소가 펴낸 또 하나의 보고서 《부산 동래지구 온천부존량 조사》는 그러한 예측이 기우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 보고서는 부산시가 지난 91년 이 지역에서 새로 발견된 은천공 4개를 개발하기 앞서 그것이 온천지구 전체에 미치는 영향을 알아보기 위해 연구소 전체에 미치는 영향을 알아보기 위해 연구소측에 조사를 의뢰해 나왔다. 보고서는 동래 온천도 과잉 양수로 인한 수위강하 위험성이 있다고 지적하면서, 이를 막기 위해 이 지역 전체의 적정 양수량(새로 발견한 온천공 포함)과 온천 수위(안정 수위. 적정 양수량으로 양수할 때의 수위를 말함)를 제시했다. 당시 한국자원연구소가 계산한 적정 양수량은 하루 1천9백t이었다. 또 안정 수위는 지하 백m였다. 안타깝게도 이 기준은 잘 지켜지지 않고 있음이 분명하다.

 동래 지역 온천공은 부산시 상수도사업본부와 사설 온천업체가 나눠 갖고 있다. 상수도사업본부 산하 시설관리사업소(보통 양탕장으로 부름)측에 따르면 부산시가 정해놓은 양탕장의 양수량은 하루 7백t이다. 또 이곳에서 온천을 운영하는 동래온천협회 한 회원의 말에 따르면, 기존 사설 업소는 8개인데 한곳에서 뽑아내는 수량은 평균 2백~3백t이다. 업소당 양수량을 2백t씩 잡아도 전체가 1천6백t. 부산시가 한 신규 업소에 정해준 양수량은 하루 7백t이다. 이로 미루어 볼 때, 이 지역 전체가 하루에 쓰는 온천 수량은 자원연구소가 제시한 적정량을 훨씬 넘을 것으로 보인다.

 온천 수위도 한국자원연구소가 권고한 수준을 이미 넘어섰다. 보고서가 나올 당시 우물 깊이는 67~88m였는데, 갈수록 수위가 낮아져 현재 온천 우물 깊이가 대부분 백m이하로 내려간 상태이다. 그 가운데는 수위가 1백 69m까지 떨어진 곳도 있다. 그런데도 업자들은 다른 말을 한다. 온천 업소인 허심청 판촉실장 신영기씨는 “온천물이 모자란다는 소문에 대해 들은 바 없다. 수위가 떨어지는 까닭은 기후와 계절 때문이다”라고 반박한다. 그러나 한국자원연구소는 동래 온천 보고서에 ‘안정 수위’가 백m 이하로 내려가면 우물 능력이 불량한 것으로 규정했다.

 온천물 고갈 위험성은 부곡과 동래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충남 대덕 부근 유성 온천의 경우, 온천지구 주변 주민들 사이에서는 ‘지난해 대전엑스포 손님 때문에 유성의 온천 우물이 모두 말라버려 더 이상 물이 나오지 않는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대덕 과학기술원 유전공학센터의 한 연구실에서 근무하는 연구원 ○○씨(31)는 “온천물이 모자라 업자들이 수돗물을 덥혀 온천물과 섞은 뒤, 원탕에서 나온 물처럼 판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이곳 사람들은 그러한 소문을 사실로 믿는다”라고 말한다.

업자들은 “주변 관리 잘못” 주장
 온천업자들은 온천 우물 깊이가 내려가는 원인을 다른 데에서 찾고 있다. 온천 고갈 현상의 주범은 온천지역 주변 관리 잘못 때문이라는 것이다. 지난 2월17일 부곡 온천에서는 ‘부곡 온천 활성화를 위한 세미나’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한국온천협회 조경도 회장은 “지하수 개발이 온천을 망친다. 온천지구 바깥 최소한 2㎞ 이상을 특별 관리구역으로 설정해 지하수 채취를 금지하고 시설물 설치도 제한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온천지구 감독 기관인 시 · 도 당국은 온천물이야 마르건 말건 세수에만 눈이 어두워진 느낌이다. 정부는 현재 온천지구로 고시한 지역에 대해 일반 토지에 적용하는 것보다 백배 가까이 높은 지가를 적용하고 있다. 또 당국은 온천업자가 쓰는 물에 대해 세금을 따로 물린다. 게다가 이용자에게는 시설 이용료 명목으로 부가가치세까지 부과한다. 온천협회 조회장은 “누구나 쓸 수 있는 온천물에 이렇게 무거운 세금을 부과하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을 것”이라며 불만을 털어놓는다.

 국내 유일한 온천 판정 기관인 한국자원연구소는 “고갈 · 오염을 막으려면 온천 수량 · 수질 · 수위를 지속적으로 통제 · 감시할 장치부터 마련해야 한다”라고 말한다. 이 연구소 성익환 박사는, 이를 위해서는 온천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난 81년 제정된 온천법은, 온천에 대한 개념 규정과 관리 조항이 허술해 온천이 난립하고 기존 온천을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없게 만들어 왔다.

 온천은 예로부터 피부병 · 신경통 등 각종 질병에 효험이 있다고 알려져 왔다. 온천업자들은 저마다 자기네 온천물이 최고라고 선전한다. 이제는 온천물에도 최고라는 주장보다 ‘지속가능한 개발’이라는 개념을 도입해야 할 때이다.
朴晟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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