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 평등시대 열린다
  • 오민수 기자 ()
  • 승인 1994.03.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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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1일부터 행정정보 공개 … 국민 모두가 국회의원 대접 받아

모든 행정 기관에 대해 국민 개개인이 ‘국회의원에 버금가는’ 권리를 누리게끔 하는 법률이 있다. 국가의 기밀과 기업의 영업 비밀,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제외하고 국민이면 누구나 행정 기관이 보유하고 있는 정보를 열람하고 요구할 수 있도록 보장한 행정정보공개법이 바로 그것이다.

 이 법이 실시되면 비록 정부를 궁지에 몰아넣는 문서라고 할지라도, 공개를 요구한 사람에게 해당 기관은 정보를 내놔야 한다. 이 법은 이미 세계 11개 국가에서 시행되고 있다. 이 법의 제정을 대통령 선거 공약으로 내걸었던 김영삼 정부는 빠르면 내년, 늦어도 내후년 안에 시행하겠다며 박차를 가하고 있다. 금융실명제가 경제 개혁을 의미한다면 행정정보공개법 제정은 행정 개혁에 견줄 만하다.

 지난 3월2일 총부처는 내년으로 예정된 정보공개법 제정에 앞서 국무총리 훈령으로 ‘행정정보공개 운영지침’을 각 행정 부처에 시달했다. 이 훈령에 따라, 행정부는 올해 7월1일부터 △보안 업무 규정이나 다른 법령 등에 의해 비밀로 지정되거나 △국가 안전이나 국방 또는 외교에 관계되거나 △개인의 사생활을 침해하거나 △범죄의 예방 · 수사 · 형집행에 지장을 초래하는 정보를 제외하고 국민의 정보 청구가 있을 경우 공개해야 한다. 1~2년 안에 어차피 처러야 할 일이기 때문에 법 제정 이전에 ‘몸 풀기’를 하겠다는 뜻이다. 벌써 총부처는 각 행정 부처의 담당 공무원을 상대로 행정 정보 공개에 관한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정부는 총리 훈령에 따라 행정 정보 공개 제도를 운영하면서 나타나는 부작용과 시행착오를 점검한 후, 올해 안에 공청회 등을 거쳐 행정정보공개법 시안을 마련할 방침이다. 이 법안은 내년 정기국회에 상정될 예정이고, 그렇게 되면 헌법에서 보장하는 국민의 알권리가 명실상부한 법률적 근거를 갖게 되는 셈이다.

 남북 분단으로 인해 지나칠 정도로 보안을 강조하고 오랜 군사독재를 거치면서, 그동안 행정부는 국민 앞에 기껏 정권의 치적을 나열한 ‘홍보’를 내놨지만 이제는 가공되지 않은 ‘정보’를 내놔야 할 판국이다. 국정감사 때마다 국회의원의 자료 요구에 공무원들이 쩔쩔매듯이 당장 올해 7월1일부터는 국민의 정보 공개 청구에 진땀을 뺄 수도 있는 것이다. 이것은 정보화 사회가 재촉하는 어쩔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다.

‘부처 할거주의’ 고질병 사라져
 본래 정보는 축적과 독점의 성격을 갖기 마련이고, 행정부의 위상과 기능이 높아지는 정보화 사회에서 중요한 정보는 행정부로 모이게 되어 있다. 그리고 이미 다수의 미래학자들은 국민 위에 군림하는 행정부의 위험을 경고한 바 있다. 정보는 곧 권력이고 재산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정보화 사회에서는 정부와 밀착한 기업이 배타적으로 정보를 확보함으로써 막대한 이익을 볼 수도 있다. 행정 정보 공개 제도는 바로 이러한 폐단을 사전에 방지하고 정보의 균등한 소유를 가능케하자는 것이다. 지금까지 부의 균등한 분배가 사회정의였다면 앞으로는 그 자리를 정보의 균등한 분배가 대신하게 된다.

 80년대 한국 사회 쟁점 중의 하나가 토지 공개념이었다면 90년대에는 정보 공개념이 사회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요즘 정보에 민감한 기업과 사회단체, 그리고 관련 학자들은 행정정보공개법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들은 대개 ‘비록 용두사미가 되더라도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것이 낫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 법이 가져올 행정 변화가 매우 크고 긍정적이기 때문이다.

 우선 행정이 투명해진다. 국민에게 공개될 것을 전제로 행정의 전 과정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공무원들은 마치 유리 상자 안에서 업무를 보는 셈이다. 이와 관련해서 지난 90년 숭실대 법학과에서 의미 있는 석사 논문이 나왔다. 천안시 공무원들을 상대로 행정 정보 공개에 관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주로 고위직 공무원보다는 하급 공무원들이 절대적으로 찬성하고 나섰다는 점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행정 정보가 공개되면 모든 행정 처리에 담당자의 책임이 뒤따르기 때문에 지역 유지나 고위층의 압력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때문이다. 외부의 압력을 거절할 ‘비빌 언덕’이 생긴다는 것이다.

 게다가 행정부의 고질인 부처할거주의도 사라지게 된다. 지금까지는 행정부끼리 서로 정보를 내주지 않으려는 폐단이 있었다. 그러나 행정정보공개법이 시행되면, 필요한 정보를 다른 행정 부처에 요구할 수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행정부 내에서 부처간 협조와 통합이 이루어지게 된다.

 이밖에도 정보 소유가 평등해짐으로써 기업 · 노동자 · 사회단체 간의 세력 관계가 재편성되고 급속하게 높은 수준의 정보화 사회로 진입하게 된다. 또한 학문 연구도 활발해진다. 그동안 행정 정보에 대한 학문적 접근이 지나치게 제한적이었지만, 이제는 필요한 정보를 합법적으로 취득함으로써 한 단계 높은 연구가 가능할 것이다.

범죄집단 · 다국적 기업이 약용할 가능성
 그리고 무엇보다도 행정부를 감시하는 시민운동이 활성화한다. 시민운동 단체가 정부가 잘못한 내용을 담은 정보를 ‘합법적이고 상시적으로’입수할 수 있기 때문에 공무원들은 국민의 입장을 존중하게 되며, 부정 부패 및 정경 유착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할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면 미국 소비자운동의 대부 격인 랠프 네이더는, 소비자 보호를 위한 행정이나 기업체의 정보를 행정 정보 공개 제도를 통해서 확보하고 있다. ‘록히드 사건’으로 나카소네 정권이 몰락한 것도 바로 그 배경에 미국의 행정 정보 공개 제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의 한 언론사가 미국 중앙정보국(CIA)에 공식적으로 정보를 청구함으로써 록히드 사건의 전말이 드러나게 된 것이다.

 그러나 행정 정보 공개 제도 때문에 발생하는 부작용도 결코 만만치 않다. 미국의 경우 마약단속국에 정보 공개를 청구하는 사람의 약 40%가 마약 범죄자나 전과자인데, 이들은 행정 기관의 방침이나 마약 제조 · 실험 자료와 같은 비밀 정보를 요구한다. 한국에서도 충분히 예견되는 일이다. 하지만 정작 전문가들이 고민하는 문제는 따로 있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현재 가장 우려되는 점은 간첩이나 다국적 기업이 행정 정보 공개 제도를 통해 국가 기밀과 한국 기업의 영업 비밀을 빼내가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미국에서는 정보 청구자의 약 80%가 기업이나 기업을 대리하는 변호사이다. 아예 특정한 종류의 정보를 전문적으로 수집해서 기업에 파는 장사꾼도 생겨났다.

어디까지 공개하느냐가 쟁점
 그밖에도 △정보 제공자가 노출됨으로써 공공기관의 정보수집에 차질을 빚고 △담당 공무원이 책임을 피하기 위해 웬만하면 비밀문서로 처리하며 △개인의 프라이버시가 침해될 수 있고 △공개를 위한 문서 목록 작성과 전담 기구 설치 등으로 행정 부담이 증가하며 △공개 청구 민원이 쇄도해서 행정 업무가 정체될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고 구더기 무서워서 장을 안 담글수는 없는 노릇이다. 행정 정보 공개 제도의 긍정적인 측면을 극대화하고 부작용을 줄이는 것은 결국 ‘무엇을 공개하고 또 무엇을 공개 대상에서 제외할 것인가’를 명확히 하는데 달려 있다. 행정정보공개법 제정에 관한 쟁점도 바로 이것이다. 지금의 총리 훈령에 따르면, 각 행정 기관마다 전 · 현직 공무원과 외부 전문 인사 5인으로 구성된 행정정보공개심의회에서 행정 정보의 공개 또는 비공개를 결정하게 되어 있다.

 정부의 입장과 경실련 등 시민운동단체의 의견은 바로 이 지점에서 충돌한다. 숭실대 강경근 교수는 “심의회에 국회 추천 인사가 포함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행정정보공개법이 비공개를 위한 면죄부로 전락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吳民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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