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리장성 너머로 세계가 연린다
  • 이문재 기자 ()
  • 승인 1994.04.07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ㆍ중 정상회담/중국 바로 알아야‘경제 전쟁’서 승리

 “중국의 모든 강물은 황해로 흘러 한국의 강들과 만난다.”3월26일, 한ㆍ일 정상회담을 마치고 4박5일 일정으로 중국을 방문한 김영삼 대통령이 교민 리셉션에서 양국의 경제 협력이 새로운 차원을 맞고 있음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이어 김대통령은 한ㆍ중 정상회담을 마친 뒤 양국 경제인들과 만난 자리에서“좁은 길도 자주 다니면 대로가 된다”는 중국 성현의 말을 인용해 동반자적이고 실질적인 경제협력을 당부하기도 했다.

 중국은93년 기준으로 볼 때 인구 12억, 국내 총생산 4천7백억 달러, 수출 7백억 달러, 수입 6백40억 달러에 총 구매력은 일본을 능가하는 3조7천억 달러다. 한국의 3대 교역국, 한국 제 1위의 투자 대상국, 한국뿐 아니라 일본 미국 유럽연합 등에게도 중요한 교역 대상국으로 떠올라 있다. 중국은 거대한 스펀지처럼 외국 자본을 빨아들이면서 동시에 세계 시장으로 뻗어나가고 있다.

 경제 대국으로만 부상한 것이 아니다. 얼마 전 크리스토퍼 미 국무장관이 중국의 인권 상황을 문제 삼았다가‘큰 코’를 다쳤고, 호소카와 일본 총리도 같은 말을 꺼냈다가 무안 당하고 말았다. 북한 핵 문제 해결에‘힘 써달라’고 부탁해야 하는 우리도 크게 다른 처지는 아니다. 중국은 어느덧 외교 초강대국으로 우뚝선 것이다. 만리장성이 꿈틀거리면서 황해와 한반도를 시작으로 동북아와 세계를 그 안에 끌어들이려는 태세인 것이다.

 ‘한국의 미래는 중국에 달려 있다’는 미국 역사학자 폴 케네디의 지적은 비단 경제뿐 아니라 한국의 정치 외교 안보 통일 등 모든 분야에 해당한다. 다른 분야에 비하면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인들은 본능적으로 중국에 민감하다. 그러나 대다수 힌국인에게 중국은 아직도 어떤 장막에 가려져 있다. 우리는 중국을 너무 모르고 있는 것이다. 중국을 지나치게 큰 거인으로 보는 자세가 있는가 하면, 중국을 낙후한 개도국쯤으로 치부해 버리는 안이함도 있다. 중국 역사와 사회, 그리고 문화에 접근하는‘중국학’도 아직 걸음마 단계일 뿐이다. 김영삼 대통령이 일본과 중국 방문을 마치고 돌아왔다. ≪시사저널≫이 지난호(제231호)에서 커버 스토리로 다루었듯이‘동북아 경제 3각동맹’은 한층 실현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그러나 우리가 동북아 경제 전쟁 시대에서 패하지 않으려면, 우리의 주체성에 바탕을 둔 민첩한 적응력을 우선적으로 갖춰야만 한다. 정부 당국뿐 아니라 각 분야에서‘중국 바로 알기’에 실패하면, 김대통령이 북경에서 한 발언의 주어는 한국이 아니라 중국으로 바뀔지도 모른다. 양국의 강물은 황해에서 만나지만, 그 황해가 중국의 바다일 수도 있으며, 우리가 자주 다니며 넓힌 대로가 중국의‘고속도로’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李文宰 기자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