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가는법 소매 잡는 관행
  • 한종호 기자 ()
  • 승인 1994.04.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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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직 기관장들의 대민 선심행위가 위법인지를 두고 벌어진 여야 공방은 앞서가는 정치관계법과 뒤에 처진 정치 관행 사이의 거리가 얼마나 큰지를 잘 보여주었다.

 이번 공방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위원장 김석수)가, 3월20일 서울 시내 4개 구청장이 관내 취학 아동에게 책받침이나 공책 혹은 축전을 보낸 행위가 사전 선거운동에 해당하는지를 조사하겠다고 밝히면서 시작됐다.

 그런데 조사 결과를 발표한 3월23일 선관위는 구청장들의 행위를 “사전 선거운동으로 단정할 수도 없고 백% 직무 행위로 단정할 수도 없다”라는, 참으로 뭐라고 ‘단정할 수 없는’입장을 보이며 ‘주의를 촉구’하는 데 그쳤다. 이에 발끈한 민주당은 “선관위가 아직 구태를 벗지 못했다. 모처럼 기대했던 선거혁명의 싹을 짓밟는 행위다”라며 선관위를 성토하고 나섰다.

 민주당은 이에 그치지 않고 최기선 인천시장과 박태권 충남지사가‘상식 수준 이상의 물품과 향응’으로 사전 선거운동을 벌이고 있다고 폭로했다. 민주당의 주장에 따르면, 박지사는 3월23일 하림각(서울 종로구 부암동)이라는 고급 중국음식점에서 충남 출신 고위 공직자 천명이 참석한‘고향의 밤’행사를 열고 참석자에게 △3만원짜리 정식 △시ㆍ군 특산물△공주 출신인 웅진그룹 윤석금 회장 명의의 5만원짜리 장쾌삼을 돌렸는데 이 날 행사에 1억원정도가 들었을 것이라고 한다. 또 최기선 인천시장은 시정 설명회 형식을 빌어 7천여 명에게 우산과 손목시계를 돌렸다고 한다. 박지사와 최시장은 모두 김영삼 대통령의 측근으로 단체장 선거 출마가 유력한 인사들이다.

 여야는 모두‘개혁’의 이름으로 각각 이들의 행위를 옹호하거나 비판하고 있다. 민주당은 이를 정치개혁의 정신에 걸맞지 않은 잘못된 관행이라고 지적하고 정부에 관련 공직자를 해임하라고 촉구했다.

 최형우 내무부장관은 취임 이후 개혁 차원에서 공무원은 세일즈맨 정신으로 국민에 대한 서비스를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해 왔다. 민자당의 문정수 사무총장은 최ㆍ박씨의 행위가‘대민봉사와 서비스’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민주당 박상천 의원은“민자당 주장대로 환심용 선물이 행정상 직무 행위나 서비스 행정에 해당된다면 더 많은 주민에게 더 고액의  금품을 제공한 단체장이 서비스 행정에 탁월한 공무원으로 훈장을 받아야 할 것이다”라고  비아냥거렸다. 관행과 대민 서비스를 내세운 민자당의 항병은 궁생하기 짝이 없지만, 현실에서는 여전히 그같은‘과거의 관행’이‘미래의 정치 개혁’을 압도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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