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에 둥지 트는 5ㆍ6공 세력
  • 이흥환 차장대우 ()
  • 승인 1994.04.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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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자당 조직책 따내는 등 급부상…“선택받은 TK의 부활”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장관이던 김만제씨와 재무부장관을 지낸 사공일 씨가 각각 포항제철 회장과 교통개발연구원 이사장으로 취임한 것은 공교롭게도 같은 날인 3월8일이었다. 두 사람은 5ㆍ6공 경제 정책의 실무를 맡았던 사람들이다. 그랬던 사람들이 김영삼 정부 집권 2기에 들어와 공직을 차지하고 앉았다. 물론 김영삼 정부가 데려다 쓴 5ㆍ6공 인사가 이들만은 아니다.

“김대통령, 마음은 7공인데 몸은 5ㆍ6공”
 그러나 이들의 등장을 보는 시각은 결코 예사롭지 않다. 김영삼 대통령은 인물난에 허덕이고 있다. 민주계에서 뽑아 쓸 인력이 바닥났다는 얘기가 민자당 민주계 내부에서조차 공공연하게 나도는 실정이다. 대구ㆍ경북 출신인 민자당 민정계의 한 지구당위원장은 “김대통령의 마음은 7공인데 몸은 5ㆍ6공”이라고 말한다. 그만큼 인물난이라는 현실의 벽이 높다는 말이다.

 민주계는 특히 풍부한 행정 경험을 갖춘 인물을 갈망하고 있다. 김대통령을 보좌하는 상도동 가신 출신 핵심 인사들이나 새 정부 출범후 새로‘수혈’된 재야 출신 인사들은 풍부한 행정 경험과는 거리가 멀다.

 김대통령 취임 직후 민자당 민정계가‘싹쓸이’당하는 것이 아니냐는 얘기가 돌았다. 동시에 별일 없을 것이라는 분위기도 공존했다. 김대통령이 국정 운영의 책임을 진 자리에 올라앉은 이상 행정 경험을 갖춘 인물을 필요로 할 것이고, 그런 인물은 모두 민자당 민정계 인사 들이니 별탈 없으리라는 낙관론이었다. 이들의 낙관론은 크게 빗나가지 않았다.

 5ㆍ6공 관료들의 약진 사례는 이 두 사람만이 아니다. 민자당은 3월8일 10개 사고 지구당의 새 조직책을 발표했다. 10명 중 3명이 과거 정권의 관료 출신이다. 시흥시장ㆍ경기도 기획관리실장 경력을 가진 이철규씨가 경기도 시흥ㆍ군포 조직책을, 최인기 전 내무부 차관이 전남 나주시 조직책을, 경북 부지사 출신 김광운씨가 경북 울진 조직책을 각각 맡았다.

 김대통령은 정치판 물갈이를 외치고 있다. 재야 출신인 정성철 정무1장관 보좌관(차관급)과 노동운동가 출신인 김문수씨를 각각 서울 강남 을ㆍ부천 소사 조직책으로 임명한 것은 개혁적인 인물을 중시한다는 정치판 물갈이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이 와중에 과거 정권의 관료 출신을 새 조직책에 임명했다.‘새 피’못지 않게‘윤활유’도 필요했다는 증거다.

 김경원 전 주미대사가 국제화추진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권영해 전 국방부장관이 한국야구위원회 총재로 자리를 옮겨 건재함을 보인 것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

 정가 일부에서는 5ㆍ6공 행정 관료 출신들의 주가가 올라가는 것을‘선택받은 TK’의 부활로 보기도 한다. 5ㆍ6공 관료 중 태반이 대구ㆍ경북 출신인 점을 감안하면 틀린 시각이 아니다. 김만제 포철 회장이 경북 선산 출신인 것말고도 김영삼 정부에서 대구ㆍ경북 출신 인사가 많이 눈에 띄는 것이 사실이다. 민자당 부천 오정의 새 조직책으로 임명된 오성계 변호사(경북고 출신)도 대구 출신이다.

4월 군 인사 때‘하나회’처리 관심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김윤환 의원의 부상이다. 새 정부가 출범한 이래 그는‘옛 인물’이라 자처하고 움직이지 않았다. 움직일 수 없었다는 말이 옳을지 모른다. 김대통령의 일본ㆍ중국 방문길에 그가 동반하자 정가는 김윤환의 부활을 조심스럽게 거론했다.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김의원의‘부활’은 어쨌든 대구ㆍ경북 세력의 편입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과거 정권 인사들이 속속 권력 주변에 둥지를 트는 것에 대해 민주당의 한 의원은“결국 권력의 핵인 민주계가 스스로 약체임을 인정하고 보약을 달여 먹는 셈”이라면서“보약은 정권 유지를 위한 아편 같은 존재이다. 보약을 먹을수록 개혁 의지는 퇴보할 수밖에 없다.”라고 평한다.

 민자당 공화계의 한 의원은“정권의 특성이나 색깔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정권 유지도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정권 유지를 위한 고육지책이라는 평들이다.

 재야 출신으로 민자당 조직책 후보에 거론되는 한 인사는“새로운 감각의 인력이 도처에 깔려 있는데, 왜 굳이 5ㆍ6공 인사들을 쓰는지 이해하기 힘들다는 의견도 많다. 시대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과 일정 기간 함께 갈 수밖에 없다”라고 말한다.

 한 경제학 교수는“5ㆍ6공 인사들, 특히 경제 관료 출신이 재등장하는 것은 경제 개혁의 반대 방향으로 가는 것이다. 사공일 전 재무부장관이 국가경영우선순위조정위원회(가칭)를 구성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결국은 대기업 중심의 신재벌 정책을 지향하는 것이다”라고 지적한다.

 김대통령은 권영해 국방부장관에 이어 하나회 출신인 이병태 국방부장관을 기용했다. 왜 하나회 출신이냐는 잡음이 나오자 김대통령은“하나회 출신이지만 주도 세력이 아니었고, 개혁 의지가 강하다”라고 잡음을 눌렸다. 5ㆍ6공 관료 출신 못지 않게 비중이 큰 것이 군 인물이다. 4월 초에는 장성급 군 인사가 예정되어 있다. 집권 2기에 접어든 김대통령 인사 정책의 한 단면을 들여다볼 기회다.
李興煥 차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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