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 격동, 프랑스정국 강타
  • 파리 · 진철수 유럽지국장 ()
  • 승인 1991.09.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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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은 프랑수아 미테랑 프랑스대통령에게 매우 뜻 깊은 날이었다. 이 날은 그의 대통령 재임 기간이 3천7백 65일째로 드골 대통령의 기록을 깨고 제5공화국 역사상가장오래 재임하는 대통령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통령 관저 엘리제궁은 요즘 축하무드와는 동떨어진 우울한 분위기에 싸여있다. 소련의 제2혁명의 여파로 1993년 하원의원 선거에서 사회당이 패할 것이며, 이에 실망한 미테랑 대통령은 1995년까지 예정된 제2차 7년 임기가 끝나는 것을 기다리지 않고 미리 은퇴할 것이라는 추측이 활자화될 지경이 되었기 때문이다. 선거가 내일 모레도 아닌데 가정 위에 가정을 쌓아올려 그런 황당무계한 시나리오를 짜내는 것을 우파 정객들의 장난에 불과하다고 웃어버릴 수 있으면 좋겠지만, 약간은 근거가 있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그 근거란 무엇인가. 첫째 프랑스 공산당은 서유럽에서 가장 보수적인 공산당이라는 소리를 듣는 스탈린 노선 지지정당이기 때문에 앞으로 약체화될 것이며, 과거에 공산당과 협조관계를 맺었던 탓으로 사회당도 덩달아 타격을 입을 것이라는 계산이다.

둘째 근거는 모스크바에서 반 고르바초프 쿠데타가 일어났을 때 미테랑 대통령이 뚜렷한 비판적인 자세를 보이지 못하고 애매한 반응을 보였는데 이는 외교문제를 능숙하게 처리하는 것이 장기인양 행세해온 미테랑 답지 않은 실수라는 것이다. 우파는 소련 쿠데타에 대한 프랑스 정부의 대응 문제를 가지고 대정부 불신임안을 하원 개원(10월) 벽두에 제기할 예정이다. 공산당 의원들이 기권하거나 부표를 던지면 불신임안은 부결될 것이지만, 사회당의 체면을 손상시킨 근거를 우파는 얻게 된다. 공산당 지지 없이는 정권을 유지 못하는 정부가 서방 여러 나라 중에서 프랑스 정부밖에 없다고 우파측은 사회당을 몰아세울 작정인 것이다.

“보수정객들. 서투른 ‘러시아 발레’를 추고 있다”
이 시나리오대로 1993년 하원선거에서 우파가 하원을 장악 할 경우 미테랑 대통령의 입장은 매우 난처해질 것이다. 1986년에서 1988년에 걸쳐 우파 자크 시라크를 총리로 앉히고 좌우 ‘동거’시대를 경험한 미테랑이 또 한번 거북한 ‘동거’시대를 감수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상황이라면 미테랑은 차라리 대통령 선거를 2년 앞당기고 은퇴해버릴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이런 시나리오가 현실화될 가능성에 대비해 대망을 품은 정계의 야심가들이 갑자기 준비 공작의 피치를 높이기 시작했음은 물론이다. 그 대표적인 예는 시라크 전 총리(현 파리시장) 의 지난 4일 모스크바 방문이다. 우파의 대통령후보 예선에 나설 뜻을 가지고 있는 프랑수아 레오타르와 함께 급히 모스크바로 날아간 시라크는 우선 옐친 러시아 대통령을 만난 다음 고르바초프 대통령도 만나고 돌아왔다. 선전효과 1백%를 노린 재빠른 몸가짐을 과시한 것이다. 시라크는 지스차르 데스탱 파에 속해 있는 레오타르와 동행했으면서도 떠나기 전날 우파 동지이며 경쟁자인 지스카르 데스탱과 통화를 하면서 모스크바 행차예정에는 전연 언급하지 않았다.

우파 정객들의 이러한 경쟁 상태를 미테랑 대통령 측근은 모처럼의 반격자료로 삼았다. 정부 대변인이며 문화부 장관인 자크랑은 “국익과 직결되는 외교를 국내 정치의 도구로 이용하는(시라크) 처사를 보고 슬퍼진다”고 말하면서, 보수 정객들이 서투른 ‘러시아 발레’를 추고 있다고 꼬집었다. 사회당 쪽의 대통령후보 경선에서는 전 총리 미첼 로카르와 EC위원회 위원장 자크 들로르가 경쟁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10월에 75세가 되는 미테랑의 3선 출마를 예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한마디로 소련의 격동은 프랑스 정국까지 흔들 기세이다. 분열 기미를 보이고 있는 공산당이 약해지면 얼마나 약해질 것인지, 사회당이 어떤 식으로 공산당과의 관계를 청산할 것이며 그 과정에서 과연 사회민주주의 노선으로 우선회할 것인지 앞으로 주시해야 할 일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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