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 많은 나라가 부자 된다
  • 김상현 기자 ()
  • 승인 1994.04.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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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으로 이용할 가능성 무한대…그린 라운드 대비 국내서도 본격 연구

‘우루과이 라운드처럼 가만히 앉아서 당할 수만은 없다’. 오는 6월‘생물다양성에 관한 협약’비준을 앞두고 과학기술처ㆍ환경처 등 정부 부처와 관련 연구소ㆍ학술단체 들이 팔을 걷고 나섰다.‘생물다양성보전 연구 프로젝트(Biodiversity Korea 2000)’라고 명명된 이 작업은, 늦어도 6월까지 총체적인 국가 생물 다양성 보전계획을 수립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3월24일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 임업연구원 대회의실에서 생물다양성 보전 연구 계획의 시작을 알리는 첫 공개 토론회가 열렸다. 이 토론회에는 과기처ㆍ환경처 관계자, 한국해양연구소ㆍ한국과학기술연구소ㆍ국립환경연구원ㆍ한국생물다양성협회 등 44개 학술단체 대표와 대학교수 들이 참가했다.

 생물 다양성은 단순히 개체의 많고 적음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다. 李仁圭교수(서울대ㆍ생물학)는“생물다양성은 생물 종류의 다양성뿐 아니라 생태계의 다양성, 생물 유전자의 다양성을 총체적으로 가리키는 말이다. 이러한 다양성은 수십억 년에 걸친 변이, 자연선택, 종 분화의 결과이므로 진화의 개념이라고 볼 수 있다”라고 정의했다.

 생물다양성의 위기는 지구상의 생물종이 매일 50~1백종씩 사라진다는 통계 자료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이대로 가면 2000년에 가서는 지구상의 생물 중 50만~1백만 종이 사라질 것이다. 지난해 12월 29일부터 발효된 생물다양성 협약은, 지구 생태계 자체가 교란될지 모른다는 인류의 위기감에서 나온 대안이다. 92년 6월 라우회의로 불리는 유엔환경개발계획 회의에서 처음 채택한 이 협약에는 1백50개국 이상이 가입했다. 민간 기업의 이익을 해친다며 협약 가입을 거부하던 미국도 지난해 6월 서명했다.

 현재 지구상에는 척추동물 41만종(이 중 포유동물은 4천여종), 곤충 75만종, 식물 25만종 등 모두 1천만~1천2백만 생물종이 산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 규모는 실제 존재하는 생물종 수의 10%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통설이다. 李柄勖교수(전북대ㆍ생물학)는 우리나라도 사정은 마찬가지라고 말한다.“한 나라의 생물상을 조사하는 것은 그나라 자연의 역사와 현재를 파악하고 연구하는 기본인데도 실제 서식하는 종류의 절반도 조사되지 않은 형편이다.”현재 한국에는 2만2천여 종의 동ㆍ식물이 사는 것으로 조사되어 있다(동물 1만4천여종, 식물 7천5백여종).

 지금까지 인류가 식량으로 이용한 식물은 3천종 정도로, 조사된 시물 25만종의 1%에 불과하다. 이 중에서 전체 식량 수요의 90% 이상을 감당해온 식물은 20여 종을 채 넘지 못한다. 그러나 이제 사정은 달라지고 있다. 생명과학이 발달하면서 이전까지는 전혀 쓸모없다고 생각되던 종이 새로운 식량 자원으로 떠올랐을 뿐 아니라, 의약품이나 공산품 원료로도 쓰이게 된 것이다. GMO(유전공학적으로 개조된 생명체)라는 단어는 그 달라진 사정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어떤 생물 자원이 언제 어떻게 이용될지 아무도 모른다. 잠재적인 유전자원을 더 많이 보유한 나라가 부국이 되는 것이다. 필요한 유전 자원이 없는 나라는 다른 나라에서 사올 수 밖에 없다. 생물다양성 문제는 나라간의 통상문제이기도 한 것이다. 생물다양성 협약을 그린 라운드라고 부르고, 각 나라가 안보 문제 못지 않은 중대 사안으로 보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생물다양성 보존 연구 계획은 본회의와 14개의 실무 연구 그룹으로 나뉘어 있다. 14개 그룹은 다시 △법률 및 정책 분야를 다루는 일반 주제 부문 △척추동물ㆍ무척동물ㆍ해양 동식물ㆍ미생물 등을 연구하는 분류별 주제 부문 △유전 자원ㆍ種자원ㆍ서식지 및 생태계를 조사하는 보전 전략 부문 등 세 부문으로 갈라진다.

새 1종 절종되면 곤충 90종 사라져
 생물다양성 보전 연구 계획 운영위원회 대표위원인 金啓中 박사는 국내의 생물다양성 현황, 위기에 놓인 생물종과 그 서식지를 알아 내는 것이 최우선 과제라고 강조한다.“기존의 국내 동ㆍ식물상이나 곤충상에 대한 조사는 주로 분류학적 시각에서 한 것이라 불충분하다.‘보전’개념이 추가되어야 한다. 보호해야 할 생물을 알아도 그 서식지를 모르면 멸종을 막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미국 펜실베이니아 주립대 곤충학과 교수이자 생물다양성연구센터 소장인 김박사는, 지난해부터 서울대 초빙교수로 와 있으면서 정부에 생물다양성 연구의 중요성을 홍보하는 한편, 조재명 임업연구원장, 이인규 서울대 자연과학대 학장 등과 함께 이 연구 계획을 출범시켰다.

 도시 개발ㆍ남벌ㆍ남획ㆍ토지 과용 등으로 인한 생물종의 급속한 소멸은, 생태계 진화의 방향과 힘까지 바꾸어버린다는 점 때문에 그 심각성을 더한다. 한국자연보존협회 원병오 회장은“조류의 생태계에서 단 1종의 새가 절종되면 곤충은 90종 이상, 식물은 35개종, 어류는 2~3종 가량이 함께 멸종되어 버린다”라고 걱정했다. 생물다양성의 위기는 해양에서도 마찬가지이다. 藻類學 전문가인 이인규 교수는“무분별한 국토 개발로 연안의 청정구역이 오염되면서 막대한 해조류가 멸종 했거나 멸종 위기에 처했다”라고 말한다. 조류의 멸종은 그것을 먹이로 삼는 숱한 어류에 멸종 위협이 될 수밖에 없다. 현재까지 알려진 국내 연안의 해조류는 7백20여종, 남북한을 합하면 1천 종이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이교수는 그러나 “일본이 2천~3천종인데 견주면 우리는 아직 절반도 알려지지 않은 셈”이라고 말했다.

“기초 생물학 분야 지원 절실”
 본격적인 생물다양성 조사는 최종 보고서가 나오는 6월 이후에나 가능하리라 보이지만, 그에 대한 대책의 대강은 전문가들 사이에서 이미 어느 정도 합의를 이룬 것 같다. 그것은 정부가 개발과 보전에 대한 분명한 원칙과 기본 계획을 먼저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유엔환경개발계획 회의에서 확인한‘지속 가능한 개발’원칙에 따라 생물학적 다양성을 보전하는 일과, 인간의 요구에 따라 토지를 생산적으로 이용하는 일을 조화시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서해안의 대규모 매립 공사와 영종도 신공항 건설 공사는 정부의‘지속 가능한 개발’능력과 의지를 가늠하는 시금석이 될 전망이다.“영종도에 새 공항을 건설하게 되면 갯벌 매립으로 수많은 생물 자원이 멸종될 뿐 아니라 철새들의 훌륭한 도래지 하나가 사라지는 결과를 낳게 된다. 정부는 개발 비용의 10분의 1, 백분의 1이라도 생태계 파괴 규모를 줄이는 데 투자해야 한다.”원회장의 주문이다.

 문제는 또 있다. 학계도‘3D 현상’에서 예외는 아니어서, 분야별 인력 편중이 심하다. 버섯 같은 고등균류, 지의류 등 이끼식물의 경우 전문가로 꼽을 수 있는 사람은 2~3명밖에 안된다. 분류학ㆍ생태학 분야의 전문 인력도 백여 명밖에 안돼 실제 생물의 3분의 1도 다룰 수 없는 상황이다.

 생물다양성은 한 지역에 주어진 환경 요인의 총체적 산물이다. 그만큼 지역에 따른 특성이나 구성원이 다르다.“문화유산과 마찬가지로 우리 자연환경에서 형성된 고유한 생물 자원도 꼭 보존해야 한다”라고 이인규 교수는 강조했다.
金相顯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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