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병 VDT 증후군
  • 박성준 기자 ()
  • 승인 1991.09.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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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속한 사무자동화추세와 더불어 전산업무 종사자들 사이에 컴퓨터 질환이 확산되고 있다. 전문가들을 통해 실상과 증상, 그리고 대책에 대해 알아본다

“ 컴퓨터 전자파 겁낼 필요 없다”
은행에 입사한 지 2년째 되는 姜賢珠씨(25)는 근무시간의 대부분을 컴퓨터 단말기 앞에서 보낸다. 카드계에 소속된 강씨는 매일 거래처에서 보내온 매출전표를 컴퓨터에 입력하는 작업을 하기 때문이다. 강씨가 혼자 처리하는 매출전표는 하루 평균 2백 ~3백장에 이른다. 그는 “거래금액 ·거래처의 고유번호 ·거래자의 카드번호 등 수십 자리 번호를 일일이 입력해야 하기 때문에 잠시도 자리를 뜰 수 없다”고 말한다.

강씨는 업무전산화 덕분에 야근이 사라지는 혜택을 보았지만 최근 들어 급격히 시력이 떨어지고 팔과 어깨가 결리는 등 신체적 이상을 느끼고 있다. “작업 중에 가끔 앞이 안 보이고 어깨와 팔이 수시로 아프고 결린다”는 것이다. 통증 때문에 어깨에 파스를 붙이는 일이 잦아졌고 얼마 전엔 난생 처음 안경까지 맞추게 됐다. 그의 직장 동료 뿐 아니라 다른 직장인들 가운데도 강씨와 유사한 고통을 호소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급격한 사무자동화 추세와 더불어 직장인들, 특히 사무직 근로자들 사이에서 신종 직업병으로 알려진 VDT(Video Disp1ay Termina1) 증후군이 점차 확산되고 있다. 은행 ·기업체 ·정부기관의 전산실 종사원, 연구기관 ·출판사의 컴퓨터 조판원 등 주로 전산 업무에 종사하는 직장인 사이에서 VDT 증후군에 대해 걱정하는 소리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더욱이 컴퓨터 단말기에 지속적으로 노출된 사람은 “딸을 낳을 확률이 높다”거나 “유산이나 기형아를 출산할 가능성이 있다” 는 소문까지 그럴 듯하게 나돌아 우려감은 더하다.

지난 5월 충남 대덕 한국표준연구소 金喆中 박사팀은 ‘ VDT 작업대의 인간공학적 설계 및 평가기술에 관한 연구’ 1차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조사대상자 4백여명 가운데 절반 이상이 시력장애 두통 근육통 등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3월에는 한국여성민우회와 ‘노동과 건강연구회’(노건연)가 6개 시중 은행을 대상으로 VDT증후군 실태를 공동조사한 결과 한국에서도 이미 이 질병이 퍼지기 시작했음을 확인했다.

VDT 작업자, 어깨 결림 ·시력장애 많아
VDT증후군 가운데 가장 잘 알려진 증상이 ‘경견완장해’이다. 일명 ‘키펀치병’으로 불리는 경견완장해는 어깨의 관절과 손목의 통증, 근육수축 같은 이상이 발생해 손이 퉁퉁 붓거나 심한 경우 양팔을 들지 못하는 증세를 보인다. 주로 자료입력 ·타이핑 등 장기간 컴퓨터 단말기 작업을 반복 ·지속하는 사무직 여성근로자들 사이에서 많이 발생한다.

그러나 경견완장해는 VDT증후군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지난해 7월 한국산업안전공단과 중앙의대 안과학교실이 VDT 사업장 20개소 3천여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VDT 작업자들에겐 눈의 조절 기능 이상으로 인한 안정피로 근시화 시력저하 등 시각장애가 많은 것으로 밝혀졌다. 미국과 일본에서는 각각 6백50만명, 3백만명이 안구건조증과 피부건조증에 시달리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전문가들은 컴퓨터 단말기에서 반사되는 빛 ·전자파 등이 눈의 조절기능 이상 ·근 시화의 원인이 된다고 주장한다. 지난해 7월 열린 산업안전보건대회에선 “컴퓨터 단말기에서 나오는 고압의 정전기가 누액분비를 감소시키고 각막염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는 보고를 하기도 했다. 중앙대 용산병원의 申京煥 교수(안과학)는 “시각 이상이 컴퓨터 단말기에서 나온 빛이나 전자파 때문이라고 확실히 단정하긴 어렵지만 눈의 안정피로 등으로 병원을 찾는 직장인이 늘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라고 밝힌다.

이와 관련해 작업자들로부터 주목받아온 것이 텔레비전 브라운관 ·컴퓨터 단말기 등에서 발생하는 전자기파의 유해성 여부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전자기파가 혈압상승으로 인한 정신적 긴장상태뿐만 아니라 월경불순 ·불임, 심지어 기형아 출산의 원인이 된다”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방재공학 연구소 李換學 소장(방재 의학)은 “인공 전자기파에 계속 노출될 경우 인체에 자연적으로 형성된 자장이 교란 돼 신체에 각종 이상이 발생한다”고 경고한다. 이 소장은 특히 “임산부가 전자기파에 장시간 노출될 경우 기형아를 낳을 가능성까지 있다”고 주장한다. 임산부가 자연존재량 이상의 전자기파를 쐴 경우 자궁 속의 양수가 이를 모두 흡수하지 못해 태아의 신경조직 형성에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이 소장은 이러한 현상을 “전기로 태아를 고문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주장한다.

“VDT작업에 맞는 단말기 설계 시급”
VDT증후군의 실체를 밝힐 전자기파 유해논쟁은 아직 국내에서 확실한 결론을 얻지 못하고 있다. 전자기파의 유해성을 연구 해온 李珖默 교수(기톨릭의대 ·예방의학)는 “한때 전자파 문제가 크게 부각된 적이 있으나 세계보건기구에서도 무해하다고 판정히는 등 최근 들어 전자기파의 유해성은 부정되고 있는 추세이다”라고 말한다. 흰쥐의 생체실험을 통해 컴퓨터 단말기의 전자파가 혈압상승의 원인이 될 수 있음을 밝힌 서울시립 강남병원의 李根德 과장(신경정 신과)은 “아직 충분한 임상실험이 없는 상태이기 때문에 뭐라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전문가들은 전자파의 유해성 문제와 별도로 VDT증후군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는 일이 시급하다는 데는 의견을 같이한다. 한국 표준연구소의 김소장은 “작업장의 조명 ·채광 ·조도 ·광원반사 등에 대한 연구를 기초로 VDT작업에 알맞은 컴퓨터 단말기의 설계가 시급하다”고 강조한다. 서울 사당의원 산업보건연구실의 朴贊浩 연구원은 “현재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진 VDT작업지침을 속히 마무리하고 정부가 규정한 ‘업무상 재해 인정기준’도 수정 ·보완해야 한다” 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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