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대책 없는 선전포고
  • 문정우 기자 ()
  • 승인 1994.04.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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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계 개편’맞서 정면 돌파 불가피…구체적 방안은 마련 못해



 지난 3월11일 김영삼 대통령과 이기택 민주당 대표의 영수회담이 끝난 뒤 열린 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는 모처럼 단합된 목소리가 나왔다. 별 준비 없이 대통령을 만난 이대표에 대한 불만도 터져나왔지만, 김대통령의 야당 무시를 성토하고 강력히 대응해야 한다는 것이 전체적인 분위기였다.

 그 이전까지만 해도 민주당의 처지는 어정쩡했다. 김영삼 대통령의 개혁을 일정 부분 긍정적으로 바라보며 야당이 도와줘야 한다는 당내 여론도 있었다. 김대통령 취임 초기에는 인위적인 정계 개편 가능성을 점치며 여권내 개혁 성향 인사들과 활발히 접촉하는 움직임마저 있었다. 지난 연말 민자당의 예산안 날치기 통과와 정부의 쌀개방 확정 때도 어느 정도 절제가 엿보였다. 그러나 영수회담 이후 민주당의 갈 길은 정리된 느낌이다.

 민주당은 김대통령이 어떤 형태로든 민주당과의 공조는 생각지 않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나아가 김대통령이 ‘쟁점 없는 영수회담을 통해 통치자로서 자신의 이미지는 한층 높이면서 카운터 파트너인 야권의 위상을 떨어뜨리려 한다’고 본다. 그리고 ‘사고 지구당 조직책 선정에서 지금까지 야당 몫이었던 재야의 진보 인사를 영입해 민주당의 입지를 상대적으로 축소·약화시키는 고단위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고 분석한다(이상 민주당 당무기획실 정세 보고)

 따라서 불확실한 여권과의 계파를 초월해 공조를 모색하기보다는 강력한 투쟁을 통해 야성을 회복하는 것만이 민주당의 살 길이라고 자연스럽게 공감한 것 같다. 마침 북한 핵과 우루과이 라운드 등 외교 현안에 대한 정부의 미숙한 대처, 김대통령 측근들의 사전 선거운동 시비 등이 터져 민주당은 강력한 대여 투쟁을 벌일 다시 없는 호기를 맞았다.

 민주당은 현재 사전 선거운동 시비에 관련된 대통령 측근들을 해임하라고 촉구하며 정부의 외교정책 혼선을 규탄하는 성명을 하루에도 2~3차례씩 발표하여 대여 공세의 고삐를 바짝 죄고 있다. 그리고 4월 중순 이후부터는 장외로 나가 농민단체 등과 손잡고 우루과이 라운드 협정서 비준 반대 투쟁을 벌인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민주당은 김대통령이 정치권의 인적 구성을 하부로부터 완전히 새로 짜는 이른바 화학적 의미의 정계 개편을 시도하고 있다고 본다. 3당 통합과 같은 물리적 개편을 통해 정권 안정을 꾀하지 않고, 지방자치 선거와 총선 등 각급 선거를 통해 측근 인물을 행정부와 의회에 대거 진입시키는 김대통령 특유의 정면돌파이다. 만약 이 방식이 성공을 거두면 민주당은 설 자리가 없어진다. 지난 영수회담에서 김영삼 대통령이 이기택 민주당대표를 무시하는 듯한 태도를 보인 것은 물갈이를 통한 정계 개편에 대한 자신감의 표현이라고도 볼 수 있다. 민주당으로서도 정면 돌파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인 것이다.

 그러나 현재 민주당의 형편은 선전포고는 했지만 전략과 전술조차 마련하지 못한 꼴이다. 다행이 정부·여당이 잇달아 실책을 저질러 당분간 버틸 수 있는 ‘탄약’은 벌었지만 그 이후에는 대책이 없다. 내년 6월의 지방자치 선거와 96년 총선에서 김대통령의 물갈이 전략을 정면돌파해낼 만한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당장 코 앞으로 닥쳐온 대구 동 을 보궐선거에서 박철언씨 부인 현경자씨가 민주당에 입당하면 지원해야 한다고 당내 최대 계파인 내외문제연구소가 공언할 정도로 심각한 인물난을 겪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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