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시 지옥 탈출구 찾는다
  • 박성준 기자 ()
  • 승인 1994.04.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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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 정원 5% ‘추천 입학제’ 확정…입시 감독권 가진 교육부는 당혹

새 대학 입시 제도가 시행된 지 1년만에 거센 도전을 맞고 있다. 몇몇 대학은 자체에서 마련한 95학년도 입시안에 현행 입시 제도를 근본적으로 뒤흔드는 획기적 발상을 담아 교육 정책을 수립·집행하는 교육부에 당혹감을 안겨준다. 95학년도 대학 입시안을 마련하면서 ‘추천 입학제’ 제도를 확정한 사학 연세대학교는 도전 대열의 맨 앞에 섰다.

 연세대 입학관리처는 지난 3월7일 특별전형 제도를 신설하는 것을 뼈대로 한 ‘입학제도 개혁안’을 발표했다. 연세대는 개혁안에서 ‘발전 잠재력은 있으나 지역 특성, 가정 형편 사정으로 정상적인 대학 진학 길이 막힌 학생들을 입학 정원 5% 범위에서 따로 뽑겠다’고 선언했다.

 이 방침이 불우 학생을 배려하는 차원에 그쳤다면 개혁안은 그다지 새로울 것이 없다. 문제는 이 대학이 ‘성적’ 아닌 ‘추천’으로 학생을 선발함으로써 입시 제도에 교육 정책 과제의 하나인 ‘분배적 사회정의론’을 구현하겠다고 나선 데 있다.

 연세대는 우선 지역 특성 때문에 교육 기회가 적은 농촌 학생을 추천 입학 대상으로 삼았다. 세부적으로는 전국 1백36개 군에서 학생 1명씩을 해당 군 교육장의 추천을 받아 선발하겠다는 계획이다. 연세대는 또 이 방식을 경제 사정 때문에 공부할 시기를 놓친 근로자, 장기 하사관이나 낙도 교사 등 격·오지 근무자 자녀, 해외 교포 자녀에게도 확대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지난 20년간 교육받을 기회는 꾸준히 확대된 것이 사실이지만, 지역·계층간 불균형 상태는 여전히 심각하다. 실제로 올해 연세대 학생연구소가 94학년도 신입생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대도시 출신 학생 비중이 압도적인 반면 농촌에 있는 학교를 졸업한 학생은 극히 드물었다(45쪽 도표 참조). 연세대는 이를 지방 교육의 피폐화를 보여주는 단적인 증거라고 지목한다.

서강대 · 포항공대도 도입 검토
연세대는 추천제가 대학의 자율권 신장 면에서도 단단히 한몫 할 수 있다고 본다. 그동안 각 대학은 체육 특기자나 일부 교직원 자녀(정원외 입학)에 한해서만 특별 전형을 실시했다. 그런데 연세대는 95학년도부터 특기자의 범위를 ‘음악·문학·수학·과학에서 소질 있는 학생’까지로 점차 넓히고, 추천 방식도 과별 특성에 따라 △지정 고등학교제에 의한 추천 입학 △학생 스스로 입학 희망 대학에 자기를 홍보하는 자기 추천 입학제 등으로 다양화하겠다고 밝혔다. 말하자면 학교 재량에 따라 개성 있게 학생을 뽑겠다는 것이다. 연세대는 장기적으로 대학별 고사를 폐지하려는 생각까지 가지고 있다.

추천 입학제를 고려하는 대학은 연세대뿐만이 아니다. 서강대·포항공대도 비슷한 내용의 제도를 시행하겠다고 잇따라 발표했다. 서강대가 고려하는 대상은 독립유공자 자녀, 소년·소녀 가장, 환경미화원 자녀이다. 이 학교 백종현 교무처장은 “아직 연세대처럼 구체적인 시안을 마련하지 않았지만 뼈대에 대한 논의를 이미 끝냈다”라고 밝힌다. 포항공대의 한 입시 담당자도 “공식 입장으로 정한 상태는 아니다. 그러나 교수들 사이에서 추천 입학제가 활발하게 논의되는 것은 사실이다”라고 전한다.

교육부는 일부 대학의 추천제 도입 움직임에 대해 일단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지만 부담스러움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이다. 새 입시 제도를 시행한 지 1년 만에 다른 입시안이 나온 데다, 그 방향이 기존 입시 제도의 틀을 근본적으로 뛰어넘고 있기 때문이다. 현행 교육법 시행령은 대학의 학생 선발 방법을 △내신 성적과 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 △내신 성적과 대학별 고사 성적 △내신 성적, 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 대학별 고사 성적을 합산해 뽑도록 세 가지 유형으로 규정해 놓았다. 교육법이 이렇게 학생 선발 방식을 유형화한 까닭은 대학 입시의 최대 관건인 객관성을 확보하기 위해서이다.

 교육부는 특히 연세대 개혁안에 대해 침묵을 지키며 신중한 자세를 보인다. 교육부는 이미 연세대에 공문을 보내 지난 20일게 관련 자료를 받아갔으나 아직 공식 입장을 보이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교육부 서남수 학무과장은 “추천제의 취지는 환영할 만한 내용이지만 관련 법 개정 작업 등 복잡한 문제가 얽혀 있어 섣불리 판단할 수 없었다. 시간을 두고 검토해 종합 평가를 내놓기로 했다”라고 설명한다.

연세대측은 교육부가 시간을 끄는 데에는 뭔가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학교 김준석 교무처장은 “교육부가 추천제 도입에 난색을 보이면서 겉으로 내세운 이유는 법적 제약이다. 실제로 법적 제약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탄력적으로 법을 운영하면, 굳이 관련 법을 고치지 않고서도 문제를 해결할 여지는 충분하다”라고 말한다. 연세대측은 교육부가 미지근한 태도를 보이는 까닭은, 당국이 누려온 입시 감독권이 추천제로 인해 무너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기여 입학제 전 단계’라는 의심도
추천 입학제에는 법적 제약말고도 선발 과정의 공정성이라는 측면에서도 위험 요소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심지어 교육계 일각에서는 추천 입학제가 아직 사회적 합의를 얻지 못한 기여 입학제로 가기 위한 전 단계라는 눈길도 있다. 고려대를 비롯한 다른 대학에서 추천제 도입을 망설이는 까닭도 그 때문이다. 고려대 김학렬 교무처장은 “우리도 추천 입학제를 검토하고 있다. 그러나 공정성을 보장하기 위해 얼마나 설득력 있는 장치를 확보하느냐 하는 점이 문제다. 당분간 수능시험 성적이나 대학별 고사 성적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라고 밝힌다.

연세대는 이번 개혁안을 단순히 95학년도 입시안으로 볼 것이 아니라 과거의 교육 모순 전체를 해결하고 새로운 교육 철학을 정립하기 위한 시도로 보아달라고 강조한다. 연세대는 기존의 입시 방식이 성적이라는 객관적 잣대에만 치우쳐, 대학 교육은 물론 입시에 맞춰 수업을 진행할 수밖에 없는 초·중등 교육까지 파행으로 치닫게 한 원인이 되었고, 학생들을 ‘시험의 노예’로 만들어 왔다고 비판한다.

연세대 입시 개혁안을 마련하는 데 중심 역할을 했던 김한중 교수(예방의학과)는 개혁안 취지를 설명하면서 발상의 전환을 강조했다. 대학 교육에는 크게 자아 실현 기능과 인재 육성 기능이 있는데, 한국에서는 사회적 필요에 따라 인재 육성 기능만 강조해 왔다는 것이다. 그는 “이제 잃어버렸던 자아 실현 기능을 회복할 때이다”라고 말했다.

지난 3월31일 서울 여의도 사학연금회관에서는 한국대학교육협의회(회장 김희집)가 주최한 입시 관련 워크숍이 열렸다. 이 자리에는 교육부 입시 담당자도 참석해 내년도 입시 방향을 발표했다. 내용은 ‘현행 입시 제도의 골격은 그대로 두고 시행상 문제점만 보완해 나가겠다’는 것이다. 교육부 관리의 입에서 모처럼 대학 스스로 제시한 입시 개혁안에 대한 언급은 전혀 들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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