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종 종권을 둘러싼 최근 분규로 ‘절에 중이 없다’는 탄식 소리가 불교계 안팎에서 터져나오는 가운데 조계종에 새 바람을 일으키려는 사찰이 있다. 경기도 부천시 원미동 보운산 자락에 자리한 석왕사가 그곳이다. 이 지역 주민들에게 석왕사는 서울의 명동성당에 비견되는 종교 시설로 인식되고 있다. 과거 암울했던 군사 정권시절에 부천 시민들은 민의를 표출하는 곳으로 석왕사를 곧잘 이용했기 때문이다.
경내에 탁아소 · 양로원 등 운영
그 석왕사가 최근 들어 지방화 시대에 걸맞는 불교 대중화 사업을 펼쳐 주목 받고 있다. 조계종단에
소속된 많은 스님은 현재 종단 분규에 휩싸인 조계종이 거듭 태어나 걸어야 할 길의 본보기로 석왕사를 꼽기에 주저하지 않는다.
석왕사는 76년 4월15일 천막 법회를 시작으로 문을 열었다. 나라의 심장부인 서울의 관문이자 인천 앞 넓은 바다를 굽어볼 수 있는 보운산정에 부처님 진신사리와 서산대사 석상을 봉안해 민족의 웅비를 꾀하겠다는 오고산 스님(현 쌍계사 조실)의 발원으로 건립되었다. 건립 직후 석왕사는 지역사회에 ‘전인적 포교’를 슬로건으로 내걸었다.
그로부터 18년이 흐른 지금 석왕사는 경내 시설부터 그 흔한 사찰과는 다른 모습이다. 법당 둘레에 오밀조밀 늘어선 양로원, 정신박약아 수용시설, 유아원, 탁아소 등은 4천여평 경내를 비좁아보이게 할 정도이다.
건립 당시 총무를 맡았다가 82년 5월부터 주지로 있는 영담 스님은 석왕사의 그간 활동이 한마디로 ‘젊은 불교 만들기’였다고 말한다. ‘사찰은 나이든 여자들이나 찾는 곳’이라는 일반적인 인식을 바꾼는 데 주력해 왔다는 뜻이다.
이를 위해 석왕사측은 80년대 초부터 젊은 층과 어린이를 상대로 사찰을 개방하는 데 힘썼다. 공단 지역이 많은 부천의 특성을 살려 젊은 근로자들을 상대로 야학을 개설했다. 또 유치원과 탁아소를 세워 맞벌이 부부 자녀를 사찰에서 돌보기 시작했다. 이같은 사찰개방 조처에 처음에는 기존 신도들이 불만을 많이 드러냈다고 한다.
“노동자 잔치를 열어 사찰을 개방하니까 보수적인 신도들은 절이 과격하다며 싫어하였다. 또 어린이들을 사찰에 받아들이니까 노인 신도들은 절이 시끄럽다며 애들을 쫓아내기까지 했다. 그러나 나는 신도들께 부처님의 뜻을 상기시키며 불교가 늙어서는 안된다는 점을 설득했다. 조용한 절을 찾는 것이 목적이라면 산중 사찰을 소개해 드리겠다고 했더니 하나둘씩 뜻을 이해하고 동참해 주었다”
석왕사에서 특히 주력한 포교 활동은 어린이를 상대로 한 불교 알리기였다고 한다. 도시 어린이들이 불교를 ‘역이나 상가 앞에서 스님이 시주함 놓고 목탁을 두드리는 일’ 정도로 밖에 여기지 않는 현실을 바꾸기 위해 어린이를 위한 사찰 개방에 주력해온 것이다.
이에 따라 현재 경내에 설치한 탁아소와 유치원에는 매일 6백여 어린이가 찾아온다. 석왕사측은 87년부터 포교와 사회봉사 활동을 노인 · 장애아 · 주부에게까지 확산했다. 불교의 근본인 자비정신을 실천하기 위해 정신지체아와 자폐아들을 모아 ‘룸비니 특수아동 조기교실’을 열었고, 노인대학 · 주부교실(사진동우회)을 개설했다.
지역 신문도 발행, 지방화 시대 이끌어
석왕사가 이처럼 전통적인 사찰 이미지와 동떨어진 왕성한 사회봉사 활동을 벌여온 데 대해 영담
스님은 부처님의 4섭법을 들어 설명한다. “부처께서는 중생교화의 네 가지 섭으로 베품과 사랑스러운 말, 이타적 행동, 함께하는 삶을 강조하셨다.
이 중 현대 산업 사회에서 중생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함께하는 삶이라고 본다. 부처님 가르침을 받들고자 출가했으면 지역 주민 속에 들어가
수행하는 이타의 길을 걸어야 한다.”
이같은 그의 사찰 운영 방침에 따라 석왕사 법당은 불공을 드리는 장소일 뿐 아니라 지역 주민들이 친근하게 찾는 ‘다목적 홀’로 자리잡았다.
최근 들어 석왕사는 지방화 시대를 겨냥한 활동에도 뛰어들었다. 지역 언론인 《부천시민신문》을 발행해 고향의식 심기 운동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발행인을 맡은 영담 스님은 “부천은 지역 특성상 서울의 베드 타운 기능을 하는 곳이므로 고향으로 삼고 사는 사람이 드물다. 이런 실정에서 지방화 시대에 시민들이 주인 의식을 갖도록 하는 방법을 생각하다 지역 언론을 운영하기로 했다”라고 신문 발행 취지를 밝힌다.
현재 주간으로 나오는 《부천시민신문》은 매주 1만5천여 부를 발행한다. 시정 구석구석에 대한 감시 기능과 주민 여론 수렴 기능이 뛰어나다고 평가받는 이 신문은, 부천에서 웬만한 지방지보다 영향력 있는 매체로 자리 잡았다.
이처럼 왕성한 포교 및 사회봉사 활동과 함께 부천 석왕사가 주목 받는 또 다른 이유는 철저한 재정 공개 덕분이다. 현재 조계종 분규의 핵심이 사찰 수익을 둘러싼 ‘잿밥싸움’에서 비롯되고 있다는 점으로 볼 때, 석왕사의 재정 운영 방식은 뜻있는 스님들에게 모범 사례로 비친다. 석왕사를 찾는 신도는 연간 3만여명(관내 9천2백 세대)에 시주금 수익은 8억 여 원에 이른다. 석왕사에서는 이 수익을 신도 대표들에게 보고하고 지출 내역을 함께 짠 뒤 운영하고 있다.
이처럼 석왕사가 조계종 개혁의 본보기로 주목받는 데에는 무엇보다도 주지를 맡은 영담 스님의 역할이 크다. 법랍 27세인 영담 스님은 현재 종회 의원으로 있으면서도 불교 개혁을 앞장서 주창해온 중진 스님이다. 서의현 총무원장의 3선 연임을 둘러싸고 비롯된 이번 조계종 사태 때에도 영담 스님은 처음부터 서원장 3선 반대편에 섰다. 영담 스님은 최근의 분규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조계종 분규는 극소수 스님들의 물질만능 풍조에서 비롯한 것이다. 그러나 지금이라도 전국 사찰을 다녀보면 곳곳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정진하는 스님들이 훨씬 더 많다. 이번에는 반드시 그런 분이 조계종의 지주가 될 수 있도록 개혁이 성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