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유럽에 스며드는 ‘게르만의 꿈’
  • 프랑크푸르트 · 허광(자유 기고가) ()
  • 승인 1994.04.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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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민족자결권 앞세워 영향력 확대…주변국들 ‘패권주의’ 경계

89~90년, 독일 동유럽에서 시작된 대격변은 유럽의 정치 정세를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동독 · 유고연방 · 소연방 · 체코슬로바키아가 사라지고 통일 독일과 일군의 소민족 국가가 등장했다. 자본주의 세계 시장에 노출된 동부 및 중부 유럽은 이제 민족분쟁과 내전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있다.

“발칸 지역에 위성국 세우려 한다”
이런 와중에 독일은 주변 국가들로부터, 통일 후유증에 시달리면서 한편으로는 또다시 유럽에서 패권을 추구하기에 여념이 없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주변국의 비난은 독일이 유럽의 통합, 즉 유럽연합(EU)으로 가기 위한 마스트리히트조약 실현을 지연시키면서 발칸 지역에 위성 국가를 세우려 한다는 데로 모아진다. 동서 간의 체제 대결이 사라진 후 모든 나라가 새로운 평화 질서를 막연하게 꿈꾸고 있을 때 독일 정부는 아무런 저항에 부딪히지 않고 ‘새 독일’의 패권 확보에 몰두해 왔다는 것이다.

유럽연합 조약은 원래 독일 통일에 대한 프랑스의 회답이자 유럽 내부의 타협책이었다, 즉 ‘관세 없는 단일 시장’으로 독일의 경제적 욕구를 채워주고, 군사적으로는 ‘유럽통합군’이라는 공동지휘 체제를 통해 프랑스와 영국의 핵 전력에 대한 독일의 접근을 허용하는 대신 ‘유럽 단일통화’로써 독일을 길들인다는 것이었다.

독일 통화인 마르크가 유럽 단일통화로 대체되면 독일의 금융과두 체제는 경제 정책의 자율성을 잃게 된다. 유럽 통화는 독일과는 거리를 둔 유럽 중앙은행이 통제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독일의 고금리 정책으로 유럽 통화는 그 실행 전 단계에서부터 심각한 문제를 노출했고 지난해 8월 이후 유럽 통화제도는 사실상 방향 감각을 잃었다. 단일통화 없는 유럽연합은 더 이상 유럽연합이 아니다.

기존의 유럽공동체(EU) 속에서 독일의 경제력은 영국과 프랑스의 합계를 앞질렀고 주변 국가와의 경제력 격차는 나날이 커지고 있었다. 따라서 유럽공동체는 히틀러가 이루지 못한 무형의 ‘독일제국’으로 변모해 왔다고 해도 무리가 아닌 상황이다.

독일의 고금리는 국가 채무로 인한 인플레 압력을 저지하는 유일한 수단이다. 국가 채무는 통일비용 조달을 위한 것이므로 독일의 국가 이익, 즉 동 · 서독의 통일이 유럽연합의 이익에 앞서 관철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계획 경제의 낡은 유물로 치부돼온 옛 동독을 위해 독일이 그동안 독일의 번영을 보장해온 유럽공동체를 와해시키면서까지 추구하고 있는 ‘국가 이익’이란 과연 무엇인가. 이는 자본주의의 영리 원칙에 어긋나는 시대착오적인 것이 아닌가.

독일 외교사에서는 독일제국 건설을 위한 두 가지 노선이 상호 보완 · 교차하는 관계를 이루어 왔다. 즉 경제력에 의한 독일제국 건설 노선과, 무력 합병 및 소국 분할에 의한 독일제국 건설 노선이 그것이다. 유럽연합 조약을 좌초시킨 독일 정부 및 독일은행(도이치방크)의 최근 결정은 독일 외교가 무력 합병까지는 아닐지라도 소국 분할 노선에 큰 비중을 두기 시작했음을 나타내는 징표로 볼 수 있다.

동유럽 외교서 ‘소국 분할’ 노선 드러내
최근의 독일 외교, 즉 소국 분할 노선이 쉽게 실감되지 않는다면 지난 2~3년 동안 민족자결권을 내세워 동유럽에 개입해온 독일 외교의 궤적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첫째, 유고연방의 분열이다. 분열되기 전인 80년대말 유고는 유럽공동체에 가입하려고 협상을 벌이고 있었고 비교적 잘 정비된 기간산업 시설로 인해 서방 기업체로부터는 가장 이상적인 저임금국으로 주목받고 있었다. 이런 이유로 미국 · 영국 · 프랑스가 끝까지 유고를 단일 연방으로 유지하려고 했으나, 독일은 바티칸 · 오스트리아와 손잡고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의 분리를 지원했다. 그리고 보스니아 · 헤르체고비나가 스스로를 국가로 선포하기 이전에 미리 국가로 승인하기까지 했다. 둘째, 체코슬로바키아는 89년의 무혈혁명 이후 동유럽 국가의 유럽공동체 가입 가능성을 입증할 수 있는 선두 주자로 부각되었다. 그러나 여기서도 독일은 슬로바키아 분리주의자들을 일찍부터 지원해 현재 슬로바키아 총리인 메지르의 선거전을 적극 도왔다. 셋째, 소연방 해체 이후 핵무기 관할권을 둘러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분쟁에서 독일만이 우크라이나를 지원하고 있다. 두 나라는 러시아의 위협을 근거로 지난해 군사 조약도 맺었다.

‘유럽 통합’에 어두운 그림자
민족자결권을 앞세우는 독일 정부의 동유럽 외교는 다른 서방국들과는 달리 도덕적 이상주의를 명분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독일의 녹색당과 일부 평화운동가들의 지지를 얻고 있다. 그러나 현실로 나타나는 이상주의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유고연방 해체 후의 민족분쟁으로, 이슬람교도와 크로아티아 주민의 피가 흐르고 있는 지역에는 이제 독일이 행정을 관리해야 한다는 주장이 일고 있다. 동유럽 지역에는 식민 시대를 연상케 하는 독일의 고문관들이 이미 상당수 파견돼 각국의 법률 제도를 기초하고 행정부를 감독 · 통제하고 있다. 게오르기안의 상법, 루마니아의 수표법, 몰다비아의 투자법, 슬로베니아의 특허법 등은 독일식 제도가 이식된 최근의 실례이다. 민족자결권이라는 명분이, 다른 나라의 내부 분열을 이용하여 이들 국가를 독일의 영향권으로 흡수하는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는 셈이다. 민족자결권에 근거를 둔 독일 통일이 동독의 흡수 · 합병이라는 수순을 밟은 것도 같은 범주에서 이해할 수 있다.

민족자결권은 동유럽 국가들에 흩어져 있는 게르만 민족의 단결을 위한 슬로건으로도 이용되고 있다. 폴란드에서 리투아니아에 이르기까지 이 지역에 거주하는 독일 민족에게만 자결권이 부당하게 거부되고 있다는 주장이 기세를 얻고 있는 것이다. 독일 통일이 완료된 후 제2의 독일인 ‘볼가 · 게르마니아공화국’이 러시아 복판에 세워져야 한다는 주장, 그래서 러시아에 사는 2백만 독일 혈통이 여기에 이주해야 한다는 주장은 이제 결코 소수 비밀 조직의 목소리가 아니다. 발틱 연안국들을 유럽으로 통하는 자유무역지대로 활용해 유럽의 홍콩으로 만든다는 구상도 있다. 또 이 지역의 독일인들은 독일 정부의 충분한 지원이 없을 경우 다음 선거에서 공화당(독일의 극우 파시스트당)을 지지하겠다고 벼르고 있기도 하다.

독일 정부는 독일 통일을 국제적으로 완결지은 2+4 조약에서 폴란드 · 체코와의 현 국경선을 승인하겠다고 약속했다. 따라서 이들 국가 내에 있는 독일 민족의 자결권에 기초한 국경 변경에는 분명한 제약이 있지 않는가 하는 의문이 나올 수 있다. 그러나 그 당시 독일 정부가 현 국경선을 인정한 것은 4대 강국의 압력에 따른 것이었다. ‘독일 민족은 자신의 단일체를 완성해야 한다’는 독일 기본법의 전문이 수정되지 않는 한, 그리고 ‘독일 연방은 37년 당시 독일제국의 국경을 상속하고 있다“는 독일헌법재판소의 해석이 유지되는 한 정치 · 경제 상황 변화에 따른 국경선 변화의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통일 이후 독일 밖의 독일인들은 독일 혈통이 입증되기만 하면 독일 정부의 경제 지원을 받게 되었고 선거권도 갖게 되었다. 체코의 언론사는 대부분 독일의 영향력을 받고 있고, 독일 정부는 체코 정부에 대해 토지개혁으로 손해를 본 독일계 주민에  대한 피해 보상을 안할 경우 차관 원조를 줄이겠다는 압력도 해사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과거가 반복되지 않는다고 단정해 말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동유럽에 다른 서방국 전체의 투자액을 합친 것보다 더 많은 자금을 쏟아 붓고 있는 독일 자본은 국가 체계의 분할을 통해서 이 지역의 분리 운동에 길을 터주고 있다. 크로아티아 · 리투아니아 · 우크라이나 등 동유럽의 극단적 민족주의 세력은 역사적으로 독일 민족주의 세력과 결합돼 있다. 이들 두 세력에 의한 유럽의 독일(게르만)화는 곧 유럽연합 · 유럽공동체의 침식을 뜻한다. 유럽통합 움직임이 더 이상 통일 독일의 야망에 맞지 않아 좌초한다면 유럽연합 조약은 새 유럽의 첫 작품이 아니라 낡은 유럽의 마지막 작품이 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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