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찍에는 채찍” YS에 등 돌린 언론
  • 문정우 기자 ()
  • 승인 1994.04.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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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무조사 실시에 ‘짝사랑 끝’…정부에 융단폭격

일본 지지동신이 발행하는 국제 정보지 《세계주보》는 1월1일자 신년 특대호에서 특집으로 아시아 각국의 정보(신문)를 읽는 방법을 소개했다. 지지통신 서울 특파원은 이 기사에서 한국 언론의 가장 큰 특징을 ‘대통령 찬미에 열을 올리는 것’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이른바 문민정부라는 김영삼 정부 아래에서 이같은 현상이 벌어지는 이유를 ‘군사 정권 시대에 채찍을 맞으면서도 당근을 향유해와 뭔가 켕기는 데가 있을 수밖에 없는 한국 언론이 부정부패 추방의 파도가 덮치지 않을까 두려워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지지통신의 지적이 아니더라도 그동안 김영삼 정부와 언론의 관계는 전반적으로 매우 우호적이었던 것이 사실이다. 장관이나 청와대 비서진 인선과 같은 부분적인 문제에 대해 언론이 이의를 제기한 적은 있지만 정면으로 김영삼 정부의 실책을 거론한 적은 별로 없었다.

반면 정부가 언론을 대하는 태도는 매우 고압적이었다. 지난해 4월7일 신문의 날을 전후해 김영삼 대통령과 오인환 공보처장관은 개혁에 언론이 동참하기를 강조하면서 신문 발행부수 공개와 언론인 재산 공개를 종용했다. 지난해 5월 슬롯 머신 사건이 터졌을 때는 ‘슬롯 머신 업자와 밀접한 관계를 맺은 언론계 인사에 대해 본격적으로 사정에 착수한다’는 얘기가 정부측에서 흘러나왔다. 6월에는 <중앙일보> 기자가 당시 권영해 국방장관 관련 보도로 구속되기도 했으며, 7월에는 각 부처에 언론의 오보 사례를 수집하고 적극 대처하라는 총리실의 훈령이 전달되기도 했다. 언론계는 정부측의 이런 ‘내정 간섭’에 대해 불만을 삭이며 참아왔다. 그런데 최근 들어 언론과 정부의 관계에 ‘이상’이 감지되기 시작하고 있다. 상무대 사업비 유용, 사전 선거운동, 북핵 · 우루과이 라운드 등 일련의 현안에 대한 정부 대책에 대해서 언론이 융단 폭격을 해대고 있다. 김영삼 대통령의 측근 실세에 대해서도 ‘추태’ ‘실태’ ‘꼴불견’등 강도 높은 수사를 동원해 가차없이 비난을 퍼붓는다. 언론의 태도 돌변이 얼마나 의외인지 요즘 증권가에서는 ‘아니 <○○일보>마저’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이다.

40일 동안 1백20여 항목 조사
이에 대한 정부 여당측 반응도 신경질적이다. 민자당 문정수 사무총장은 3월31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자금 개혁이 안된 곳은 언론계와 종교계뿐”이라고 불만을 터뜨렸다. 문총장은 이어 “최기선 인천시장과 박태권 충남지사가 나름대로 열심히 하려고 노력하는데 (언론이) 정치 공세로 밀어붙이는 것 같다. 언론도 정상적인 세무사찰을 받는 등 개혁된 자세를 보여야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경재 공보처 차관은 신문의 날인 4월7일 주간신문상 시상식 치사에서 “최근 언론의 폐해가 제기되고 있으며, 특히 보도 외에 경영면에서 정직하지 못한 부분이 적지 않다. 언론이 부패해 있으면서 사회 정의를 지향하는 것은 모순”이라고 지적했다. 이차관은 언론 경영에서 정직하지 못한 부분으로 △신문 부수 공개 거부 △광고 강매 △세금 회피 △보도와 관련한 재산상의 이익 추구 등을 구체적으로 들었다.

김영삼 대통령도 4월1일 언론사 사장단을 초청해 방중 · 방일 성과를 설명하는 자리에서 언론에 대한 비판을 강도 높게 제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언론이 정부의 실책을 지적하고 비난하는 것은 당연하고 바람직한 일이다. 문제는 그 동기가 과연 순수한가 하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정부가 언론에 취한 몇 가지 조처는 언론과 정부의 긴장 고조에 대해 시사하는 점이 적지 않다.

국세청은 3월15일부터 <경향신문> <중앙일보> <서울신문> <한국일보> 등 4개 일간지와 KBS에 대한 세무조사에 착수했다. 국세청은 이들 언론사에 각각 8명씩 실무관계자를 파견해 무려 40일 동안 세무조사를 벌일 계획인데, 중앙 언론사에 대한 세무조사는 15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이들 국세청 실무자들은 밥 한끼도 언론사에서 제공받지 않고 1백20여 항목에 걸쳐 대대적인 세무조사를 벌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세청 실무자들 사이에서 ‘언론사 경영이 이렇게 구멍가게 식인 줄 몰랐다’ ‘상상외로 미심쩍은 부분이 많다’라는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으므로 언론사들은 매우 곤혹스러운 처지인 것으로 보인다.

이들 언론사에 대한 세무조사는 8월께 모두 끝낼 예정인데, 국세청이 과연 세무조사 결과를 밝힐 것인지 언론사들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만약 세무조사 결과가 공표되면 그동안 개혁 사각 지대에 머물러 있던 언론계도 한바탕 큰 파란을 겪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경제기획원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해 12월23일 각 신문사에 구독료 담합 시정명령을 내린 바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각 신문사가 그동안 담합해 구독료를 일괄 인상해온 것은 공정거래에 위배되므로 올해 4월5일까지 구독료를 자율적으로 다시 책정하라고 지시했다. 공정거래위의 이같은 시정 명령에 따라 각 신문사는 올해에는 아직 구독료 인상 폭도 결정하지 못하고 눈치만 보는 형편이다. 그런가 하면 3월14일 감사원은 일부 지방교육청의 기자 해외 여행 편법지원 사실을 밝히고 시정명령을 내렸다. 그동안 관행처럼 돼온 정부의 기자 해외 여행 지원에 제동을 건 것이다. 이래 저래 언론사로서는 정부측 조처가 못마땅할 수밖에 없다.

이 같은 일련의 사실은 정부에 대한 언론의 사실은 정부에 대한 언론의 공세가 순수하지만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나타낸다. 그동안 언론은 김영삼 정부가 취해온 언론 정책에 대해 수세적인 태도를 보여왔다. 언론인 재산 공개 문제에 대해서는 침묵으로 못마땅한 심경을 표현했고, 발행 부수 공개나 공휴일 휴간 종용은 부분적으로 수용했다. ‘개혁에 동참하는’ 자세를 보이기 위해 나름대로 애도 많이 썼다. 그러나 정부가 세무조사에 착수하면서부터는 언론도 위기감을 느끼기 시작한 것 같다. 정면 돌파하지 않으면 언제까지나 정부에게 질질 끌려다닐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다.

“언론 개혁이 아니라 길들이기다”
언론의 대정부 공세에 심상치 않은 점이 있다는 사실은 누구보다도 정부 관계자들이 심각하게 느끼는 듯하다. 공교롭게도 민자당 문총장이나 공보처 이차관의 입에서는 동시에 세무사찰이니, 세금 회피니 하는 얘기가 불거져나왔다. 언론이 정부에 공세를 취하는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감을 잡고 있다는 말이다.

민자당 문총장은 우리 사회에서 개혁이 안된 곳은 언론계와 종교계뿐이라고 했다. 조계종 사태로 종교계에도 개혁 바람이 몰아치고 있는 만큼 이제 남은 곳은 언론계뿐이다. 만약 정부 관계자들이 언론계가 정부의 개혁 의지에 대해 조직적인 저항을 하고 있다고 판단한다면 마땅히 단호하게 대처해야 옳다.

그런데 정부의 입장은 어정쩡하기만 하다. 민자당이 정부 시책에 대한 홍보가 부족해 불리한 언론 보도가 많이 나왔다며 언론계 출신 인사들을 중심으로 홍보위원회를 구성한 것은 언론에 대한 일종의 화해 표시하고도 할 수 있다. 사실 정부측은 언론에 대한 세무조사를 실시하면서 어느 정도 여백을 남겨놓았다. 흑자 폭이 가장 큰 <조선일보>나 <동아일보>를 1차 세무조사 대상에서 제외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 한 언론사 간부는 사석에서 “언론사 사주와 정부의 세력 싸움 틈바구니에서 희생양이 되지나 않을까 두렵다”고 털어놓았다고 한다. 정부와 언론이 가파르게 대치하다가 화해하는 순간 정부를 비판하는 데 앞장서 왔던 언론사 중견 간부들만 애꿎게 불이익을 당할 수도 있다는 얘기이다.

사실 정부가 지금까지 언론에 취해온 일련의 조처는 말뿐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언론인 재산 공개, 발행 부수 공개 등 어느 것 하나 성사된 것이 없다. 몇몇 지방사 사주와 사이비 기자 들만 구속됐을 뿐이다. 적어도 언론 정책에서 만큼은 과거 권위주의 정권과 별로 차별성이 보이지 않는다.

만약 언론계가 정부에 조직적으로 저항하고 있다는 정부 관계자들의 판단이 옳다면, 언론은 이제 언론을 개혁하려는 정부의 의지를 속속들이 꿰고 있다고 봐야 한다. 정부의 언론 정책 본질은 언론 개혁이 아니라 언론 길들이기에 있다는 것이다. 언론이 힘으로 밀어붙이면 정부는 일정 부분 양보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얘기가 된다.

현재 정부와 언론의 대치는 앞으로 정부와 언론의 관계를 정립하는 큰 분수령이 될 것 같다. 그동안 뭔가 켕기는 구석이 있어 죽어 지내던 언론이 대반격을 시작한 것이다. 만약 이번에도 정부가 물러선다면 정부는 앞으로 다시는 언론 개혁을 입에 담기 힘들게 될 것이다.
文正宇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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