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대 ‘7년 내전’ 교수가 뭐길래…
  • 전주 · 박성준 기자 ()
  • 승인 1994.04.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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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명 임용 놓고 교수끼리 편싸움…학생도 가세해 ‘난전’

전북 전주시 덕진동에 자리잡은 국립 전북대학교. 봄은 봄이로되 전북의 지성을 대표하는 이 대학에는 아직 봄소식이 감감하다. 학문의 꽃을 활짝 피워야 할 국립 대학에서 학교 당국 · 교수 · 조교 · 학생이 한데 뒤엉켜 7년째 찬바람 이는 싸움을 벌이기 때문이다.
전북대 ‘7년 내전’의 화근은 88년 이 대학 철학과 교수 1명이 강단을 떠나면서 비롯됐다. 빈자리를 채울 교수를 새로 뽑는 과정에서 지원자를 심사할 교수들이 두 편으로 갈려 길고도 지루한 싸움을 벌이기 시작한 것이다. 맨 처음 분쟁은 ‘특정 분야’ 지정 시비로 시작됐다.

88년 이 대학 철학과 교수들은 공석인 자리에 동양철학 전공자를 교수로 앉히기로 합의하고 대학본부에 공채 공고를 의뢰했다. 본부는 이를 받아들여 그해 10월 정식으로 교수 모집 공고를 냈다. 89년 1월 응모를 마감한 뒤 뚜껑을 열어 보니, 응모자는 당시 순천대 조교수였던 오○○씨 한 사람뿐이었다. 오씨는 박사 학위가 없었지만, 경쟁자가 따로 없는 데다 응모한 분야도 박사 학위 소지여부와는 상관없는 ‘특정 분야’였기 때문에 교수 자리를 손에 넣은 듯이 보였다.

그러나 교수들 가운데 일부가 문제를 제기하면서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그들의 주장은 “동양철학이 특정 분야로 지정된 것은 철학과 전체 교수회의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은 행정착오에서 비롯했기 때문에 효력이 없다. 따라서 박사 학위가 없는 오씨는 자격 미달이다”라는 것이다. 그들과 반대 편에 선 교수들은 특정 분야 지정 조처는 유효하므로 심사를 그대로 진행해야 한다고 맞섰다. 논란이 계속되자 대학본부는 ‘착오 인정’ 쪽으로 결론 내렸다. 이에 따라 교수 공채는 없던 일로 끝났다.

90년 교수 공채 업무가 재개됐다. 이번에는 1차 때와 달리 지원자에 대한 구체적인 심사까지 이뤄져 가장 성적이 좋은 사람을 가려냈다. 당시 공채에 응모한 지원자는 모두 4명. 그러나 2차 공채도 불발로 끝났다. 1차 때 양편으로 갈렸던 교수들이 이번에는 심사원칙 적용 문제를 둘러싸고 맞붙어, 합격자 발표 일보 직전까지 갔던 공채 작업을 원점으로 돌려놓았다.

4차 공채 끝에 임용했으나…
2차 공채 때 적용한 심사 원칙은 이미 그 해 4월 교수들 스스로 분란을 막기 위해 확정했다. 그에 따르면, 공채 심사위원들은 △지원자의 전공 이수 과정과 채용 예정 분야와의 일치 정도 △논문과 채용 예정 분야와의 일치 정도를 평가하여 전공 전체가 채용 예정 분야와 다르면 심사 대상에서 제외한다는 것이었다. 문제는 종합 성적이 가장 높았던 권○○씨의 전공 분야가 채용 분야와 달라 ‘응모자는 반드시 동양철학 전공자라야만 한다’는 원칙과 어긋난 데서 비롯했다.

1차 때 대립했던 교수들의 입장은 2차 공채 과정에서 정반대로 바뀌었다. 1차 공채를 거부했던 교수들은 ‘문제가 없다’고 주장한 반면, 공채를 밀어붙였다가 좌절했던 교수들은 ‘심사 기준에 미달한다’는 이유로 권씨를 최종 합격자로 결정하는 데 이의를 제기했다. 학교측은 곽강제 교수 등 문제를 제기한 쪽의 이의 신청을 받아들였다.

91년 8월 대학본부가 2차 작업 결과를 토대로 공채 문제를 종결짓겠다고 직접 나서면서 또 분쟁이 일었다. 이른바 3차 분쟁이다. 대학본부는 92년 2월 응모자 심사에 객관성을 확보하기 위해 다른 대학 교수 3명에게 심사를 의뢰했다. 그러나 여기에 응한 외부 교수는 1명뿐이어서 공채 문제를 서둘러 해결하려 했던 계획은 물거품이 됐다.

이 때부터 공채를 둘러싼 대립 양상은 전환점을 맞게 되었다. 대학본부가 심사권을 회수한 것에 대해 의심을 품은 일부 교수가, 이같은 결과가 대학 당국이 응모자 가운데 특정 인물을 채용하기 위해 고의로 꾸민 것이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학생들도 첫 직선제 총장인 김수곤 총장이 자기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인사권을 악용한다고 비난하며 시위를 벌였다. 이 과정에서 대학 반대파들을 중심으로 ‘전북대 교수임용 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가 구성됐다.

세번이나 무산됐던 교수 공채는 올해 2월 대학측이 응모자 4명 가운데 한 사람인 정○○씨(42)를 철학과 교수(전임강사)로 전격 발령함으로써 비로소 끝을 맺었다. 그러나 공대위측 교수와 학생들은 이를 ‘불법 교수임용’으로 규정하고 인사 철회 운동에 들어갔다. 2월15일 김의수 · 남정길 · 신광철 교수등 공대위 참여 교수가 정씨 임용에 반대하는 뜻으로 머리를 깎고 농성을 시작했다. 4월1일 철학과 학생회 간부들이 공채 업무를 주도한 인문대학장을 학장실에서 몰아내고 농성에 들어갔다.

공대위측 교수들이 최종 공채 결과를 부정하며 내세우는 가장 중요한 근거는 4차 공채 전공 심사위원과 심사 기준을 정한 교수회의의 불법성이다. 문제가 된 철학과 교수회의는 93년 7월28일 열렸다. 공대위 교수들은 이회의가 재적 교수 11명 가운데 4명만 참석했기 때문에 무효이며, 심사위원회 · 심사기준도 당연히 불법인 것으로 본다.

공대위측 교수들은 또 7월28일 회의 결과 구성된 심사위원회가 정씨에게 유리하도록 심사 항목을 부정 채점했다고 본다. 특히 문제가 된 항목은 ‘전공 분야와 채용 예정 분야의 일치 정도’이다. 이 항목에서 정씨는 만점(20점)을 받는 반면, 나머지 응모자 2명은 전공 분야가 채용 예정 분야와 비교적 일치함에도 모두 0점 처리된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교육부 감사 착수…내분 계속될 듯
공대위는 특히 대학측이 임용한 새 교수가 전주 출신이며 전북대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은 사실을 내세워, 이번 인사 조처가 학연과 지연에 얽매인 비합리적 인사 관행의 본보기라고 지적한다. “함량 미달인 응모자가 교수가 된 데에는 세력 확장을 꾀하는 일부동문 교수들의 힘이 작용했다”는 주장이다.

교수 임용 업무를 추진했던 쪽의 반론도 만만치 않다. 7월28일 교수회의는 의결 정족수 9명 가운데 5명(1명은 권한 위임)이 참석했기 때문에 유효하며, 회의 결정 사항도 합법이라는 것이다. 또 이들은 공대위가 문제 삼는 부정 채점 부분도 심사 기준을 혼동한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인문대 김영철 학장(철학과)은 “채점은 90년 철학과 교수들이 만장일치로 합의한 기준에 따랐다. 불법 운운하는 주장은 반대를 위한 반대일 뿐이다”라고 말한다.

대학본부 지지파는 새 교수가 학연 · 지연을 동원했다는 공대위측 공격에 대해서도 반격을 편다. 철학과 시간강사인 한상기씨(34)는 “전북대에서 석사 학위를 받은 것도 학연이냐. 학연을 동원해 특정인을 끌어오려 했던 쪽은 오히려 그쪽 사람들이다”라며 공대위측을 몰아 세운다.

전북대 교수 임용 싸움은 최근 교육부가 관련 자료를 제출받아 본격 감사에 들어감으로써 멀지 않아 결론에 이를 전망이다. 그러나 대학 당국 · 교수 · 학생 모두가 냉정을 되찾지 않는 한 ‘전북대 내전’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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