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없는 공장, 불황도 없다
  • 장영희 기자 ()
  • 승인 1994.04.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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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코오롱, 무인화 시스템 가동…생산성 3배 향상 ‘섬유 위기’ 돌파



공장에 사람이 없다. 8천여 평에 달하는 공간에는 사람의 훈기 대신 기계가 뿜어내는 열기가 가득 차있다. 사람이 보이지 않는 이 첨단 공장은 섬뜩한 느낌마저 준다. (주)코오롱은 이윤 극대화를 위한 최종 지향점일지도 모르는 공장 무인화를 최근 달성했다.

코오롱 김천공장은 나일론 원사를 만든다. 옷이 날개라는 말이 있지만, 옷에 날개를 달아 주는 것은 실이다. 경북 김천시 응명동에 자리잡은 이 회사 공장 사일로에는 자매 공장인 구미공장에서 탱크 로리에 실려온 쌀알 모양 칩이 수북이 쌓여 있다. 칩은 나일론 원사의 원료인 카프로락탐을 1차 가공(중합 공정)한 것이다. 사일로에 쌓인 칩은 연속건조기에 넘겨져 탈수된다.

바싹 마른 칩은 원료 탱크로 넘겨지고 다시 압축기로 흘러들어가 2백60°C의 열을 받는다. 녹아서 액체가 된 칩은 방사기의 극소구멍(0.1㎜ 이하)을 통해 밖으로 탈출을 시도한다(방사 공정). 탈출하는 순간 칩은 2백60°C에 비하면 엄청나게 찬 바람(15°C)을 맞고 사정없이 위 아래로 당겨지는 고문을 당한 후(연신 공정) 실로 바뀐다. 연신사가 실패(드럼)에 감기면(권취 공정), 로봇(오토 도퍼)이 실패를 뽑아 드럼 운반차에 싣는다. 레일을 타고 운반차는 순식간에 선별대에 도착한다.

선별대에서는 로봇 아닌 ‘사람’이 품질을 검사한 후 중간 창고로 보낸다. 창고로 직행하지 않는 이유는, 실이 ‘반란’을 꾀하기 때문이다. 실은 끊임없이 늘어나기 이전 상태로 돌아가려고 한다. 이 반란은 최소한 16시간을 묵혀야 진압된다. 실 구실을 할 수 있게 물성이 안정되는 것이다. 로봇은 중간 창고에서 하룻밤을 지샌 실타래를 디스크(실패를 꽂는 기구)에 옮겨 몸무게를 단 후 포장을 하고 박스에 넣어 창고로 보낸다.

건조에서 제사 공정, 물류 공정까지의 전 공정은 로봇과 운반차로 고속 처리된다. 현재까지는 사람이 이 과정에서 완전 추방되지는 않았다. 실이 끊어질 때 잇는 작업(풀드럼률이 95%이므로 끊어질 확률은 5%)이나 품질을 판독하는 능력은 기계가 대체할 수 없는 사람의 몫이다. 그러나 하루 50t의 나일론 원사를 처리하는 이 공장에서 사람의 손길은 거의 차단돼 있다.

이 공장 역시 지난해는 사람이 실패를 뽑고 운반을 해야 했으며 물류 공정에서는 더 많은 시간이 걸렸다. 일일이 사람이 실패 무게를 달고 필름 포장을 하여 박스에 담았다.

이 회사가 무인 자동화 시스템을 구축하여 기대하는 효과는 자못 크다. 시운전 결과 생산성이 3배 가량 높이뛰기를 했다. 자동화 전에는 3백명 가까이 생산라인에 투입됐으나 이제는 70명 남짓이면 된다. 이 인원도 대부분 생산설비를 관리 · 보존하는 일에 종사한다. 또 실이 감기는 속도가 4배 가까이 빨라졌으며 실패 하나에 감기는 양은 3배쯤 늘었다. 한 와인더에 동시에 감기는 드럼 수는 2개에서 8개로 늘어났다. 공정 혁신이다.

코오롱이 이루어낸 공정 혁신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원사 업체인 일본 도레이사에 비교해도 손색 없는 수준이라는 것이 이 회사 관계자의 설명이다. 徐永雄 상무(김천공장장)는 “무인 자동화 시스템 구축은 목표가 아닌 수단이다. 이 수단을 통해 원사의 경쟁력 제고라는 목표를 달성하려고 한다”라고 밝혔다.

이 공장이 인간의 손길을 극소화한 비결은 컴퓨터라는 요술 상사 때문이다. 이 공장의 ‘분산제어시스템(DOS)’은 생산 공정의 모든 것을 원격 조정한다. 로봇에게 지시를 내리고, 컨베이어 벨트가 생산 흐름을 차질 없이 받쳐 주도록 유도한다. 이 시스템은 영업 활동에도 위력을 발휘한다. 제품 이력서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제품의 출생 연월일부터 규격 · 품질 · 원가 정보가 소상히 담겨 있다.

서울에서 공장 상황 한눈에 파악
분산제어시스템의 상위 신경망은 ‘컴퓨터 통합방식(CM)’이다. 본사가 있는 서울에서 이 회사 경영자는 컴퓨터를 켜 공장 조업 상황을 한눈에 시차 없이 챙겨 볼 수 있다. 이 방식은 현재까지 인류가 고안해 낸 공장 자동화의 가장 발달된 단계이다.

(주)코오롱은 재계 순위 15위인 코오롱그룹의 모기업이다. 마라톤 선수 황영조를 후원한 데서 알 수 있듯이, 코오롱그룹은 인정과 끈기를 내세운다. 진취성이 부족하다 싶을 정도로 밋밋한 성장을 해온 이 그룹이 튀는 일을 감행한 것은 섬유에 몰아친 불황 때문이다. 코오롱 사람들은 93년을 공장 부지 전체에 재고가 쌓인, 살인적인 해로 기억한다.

이들은 섬유를 하더라도 더 이상 노동집약적으로는 안 된다고 판단했다. 공장에서 사람을 몰아내는 일은 단순히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서가 아니다. 공정 혁신으로 품질을 높여 궁극적으로 경쟁력 제고를 기대하자는 것이다. 코오롱그룹은 주력업종인 섬유 비중(매출액 대비 75%)을 줄여 비섬유 비중을 절반 가까이 늘리려고 한다. 최근 이동통신 사업 진출도 그 일환이다. 하지만 ‘절반의 섬유’에 대해서도 공격적 사업 구상을 하고 있다. 나일론 원사 무인화 공장 한켠에 짓고 있는 하루 생산량 70t 규모의 폴리에스테르 원사 무인화 공장은 그 꿈을 현실화한 것이다.

무인공장은 섬유에 닥친 위기를 돌파하는 전략이 될 수 있다. 그러나 화려한 빛만큼이나 그늘이 있다. 기계로 대체된 공장에서 사람은 근육의 피곤함과는 다른 피곤함에 짓눌린다. 이 회사 金達圭 생산부장이 “환경이 깨끗해지고 몸도 편해졌다. 그러나 정신적 피곤함은 훨씬 더하다”라고 지적하듯이, 이 거대한 기계덩어리는 이를 제어해야 하는 인간의 능력을 시험하려 든다. 이미 36년에 찰리 채플린은 <모던 타임스>라는 영화에서 기계의 부속품으로 전락해가는 인간의 모습을 통해 인간 존엄성이 파괴되는 문제를 제기했다. 코오롱에 던져진 과제는 이제 ‘포스트 무인 공장’인지도 모른다.
張榮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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