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에 ‘녹색 주의보’
  • 김당 기자 ()
  • 승인 1994.04.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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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피스, 13일부터 해상에서 반핵 캠페인…국내 원자력계 비상



때아닌 두 불청객의 방한으로 한반도에 긴장이 높아지고 있다. 하나는 4월15일 방한하는 ‘폐리호’이고 다른 하나는 그보다 이틀 앞서 방한하는 녹색의 평화, 즉 ‘그린피스호’이다.

윌리엄 페리 미 국방장관은 정부의 초청으로 한국을 찾지만 국민 처지에서 보면 고마워할 수만은 없는 불청객이다. 그는 이미 북한에 대한 ‘전쟁 불사론’을 주장해 호전성을 드러낸 바 있다. 그는 4월17일 이병태 국방부 장관과 북한 핵 문제로 인한 한반도에서의 군사적 충돌 가능성에 대비한 전략 회담을 가질 예정이다. 따라서 그의 방한 자체가 한반도의 전쟁 분위기를 부풀리는 상징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재야 및 시민운동 단체와 대학생들이 그의 방한을 반대하는 시위를 예비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의 방한 일정이 순탄치 않을 것임은 불을 보듯 훤하다.

방한 일정이 순탄치 않기는 MV 그린피스호(9백5t, 승선 인원 15인)도 마찬가지이다. 환경운동연합(사무총장 최 열)의 초청으로 오는 이 환경 감시선은 4월24일까지 11박12일 동안 한반도 주위를 맴돌면서 해상 반핵 캠페인을 벌일 예정이다. 검정 돼지라는 애칭을 가진 이 감시선의 항적이 원전 건설 후보지로 거론된 삼척(13 · 14)과 영일(15일), 원전이 가동되고 있는 고리(18일) · 영광(19일) 등으로 이어질 예정인 것도 이 때문이다. 그리고 인천항을 통해 서울로 입성한 ‘녹색전사’들은 4월22일 제24회 지구의 날에 맞춰 국내 환경운동 단체들과 연대해 반핵 행사를 연다. 물론 이 같은 공식 일정은 정부의 입국 허용을 전제로 한 것이다.

원자력 홍보해온 정부 · 한전엔 눈엣가시
원자력 위주의 에너지 정책을 추구해온 정부로서는 그린피스의 방한 자체가 눈엣가시일 수밖에 없다. 특히 원자력 홍보 정책을 펴온 한국전력과 정부가 긴장하는 까닭은, 그린피스호의 방한으로 20년 동안 쌓아온 공든 탑이 무너지는 것 아니냐는 두려움 때문이다.

이같은 두려움은 그린피스 방한을 앞두고 비상이 걸린 국내 원자력계가 물밑에서 진행해온 그린피스에 대한 대응 전략에서도 드러난다. 한국원자력문화재단은 4월을 ‘반핵의 달’로 선포한 환경단체들에 맞서 ‘원자력 문화의 달’로 지정하는 맞불작전을 전개하기로 작전을 짠 바 있다. 이 재단은 이미 컨테이너 차량을 이용한 원자력 이동전시관을 개관해 이동 홍보에 나선 데 이어, 4월23일에는 영광 원전 주변에서 낚시대회를 열 예정이다.

공교롭게도 두 불청객이 반핵이라는 공통사명을 띠고 온 것도 역설적이다. 차이점은 페리의 방한이 북한의 핵(무기)을 겨냥한 데 견주어 그린피스의 방한은 한국의 핵(원전)을 겨냥한다는 데 있다. 물론 미 국방장관의 ‘반핵’이 자국은 핵을 갖되 다른 나라가 핵을 갖는 것을 반대하는 것인 데 비추어 그린피스의 그것은 지구상의 모든 핵을 거부한다는 점에서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

세계의 ‘헌병 사령관’을 자처하는 미 국방장관과 ‘지구환경 파수꾼’을 자처하는 녹색 전사들의 동시 방한으로 4월 중순의 한반도에는 핵을 매개로 한 신경전과 녹색전선이 동시에 펼쳐질 전망이다.
김 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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