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보다 100만배 밝은 ‘마법의 빛’ 뽑아낸다
  • 포항 · 김상현 기자 ()
  • 승인 1994.04.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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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방사광가속기 곧 완공…반도체 · 의학 등 쓸모 많아

드디어 한국에도 ‘빛 공장’이 세워진다. 이 공장은 빛을 만들어, 이를 필요로 하는 기업체 · 대학 · 연구소에 제공한다. 다른 서비스업체와 다른 점은 배달해줄 수가 없다는 것이다. 빛이 필요한 업체나 연구소가 직접 와서 써야 한다. 빛 제조 공장이란 바로 방사광 가속기다.

한국의 첫 빛 공장으로 기록될 포항공대 방사광 가속기가 완공을 눈앞에 두고 있다. 지난해 12월 가속기의 주요 부분 2개 중 하나인 선형 가속기 설치 공사가 끝나 시험 가동을 시작했으며, 지금은 원형 가속기에 저장 링을 설치하는 작업이 한창이다. 정부와 포항제철이 1천4백50억원을 나누어 내기로 하고 첫 삽을 뜬 지 3년여 만의 일이다.

세계 다섯번째 ‘3세대형 가속기’ 보유
20여만평 부지 위에서 진행되는 이 역사가 마무리되면 한국은 유럽연합(EU) · 미국 · 대만 · 이탈리아에 이어 ‘3세대형 방사광 가속기’를 보유한 다섯번째 나라가 된다. 가속기 규모로는 유럽연합에 이어 두 번째이다.

방사광 가속기는 널리 알려진 충돌형 가속기와 달리 응용적 성격이 강하다. 충돌형 가속기는 전자와 전자, 또는 양성자와 양성자를 빛에 가까운 속도로 가속 · 충돌시켜 입자를 더욱 잘게 부순다. 그로부터 물질의 근원을 구성하는 궁극의 입자가 무엇인지 구명하고자 한다. 그에 반해 방사광 가속기는 무엇을 부수지는 않는다. 대신 빛을 만들고자 한다. 그 어떤 자연의 빛보다 더 세고, 더 넓은 파장 범위를 갖는 빛이다. 방사광 가속기가 만드는 빛은 일반 빛보다 백만배 이상 밝으며, 파장도 수억분의 1㎝~1㎝에 이를 만큼 넓다. 특히 방사광 가속기는 ‘진공 자외선’을 서비스할 수 있다. 말 그대로 진공 상태에서만 전달되는 이 진공 자외선은, 반도체 표면을 조사하는데 매우 유용한데도 공기 속에서 전량 흡수되는 바람에 자연 상태에서는 얻을 수가 없었다.

방사광 가속기는 ‘빛의 속도로 가속된 전자가 커브를 돌 때, 그 접선 방향으로 강력한 빛을 낸다’는 물리학 이론을 이용해 만든 장치이다. 이 가운데 빛의 속도에 가깝게 빛을 가속시키는 장치가 바로 선형 가속기이다. 포항가속기연구소(소장 李東寧)의 선형 가속기는 전자를 20억전자볼트(eV · leV는 전자나 양성자의 전하를 갖는 입자가 1V의 전압으로 가속될 때 얻는 운동에너지)로 가속시키는데, 그를 위해 80메가와트(MW · 1MW는 백만W)급 고주파출력관 11대가 동원된다. 전자는 이 고주파출력관이 내는 마이크로웨이브의 파도를 타고 가속되는 것이다.

고주파출력관을 작동시키는 데는 다시 그 수만큼 전원 공급 장치가 필요하다. 모듈레이터라고 불리는 이 전원 공급 장치는 고주파출력관을 가동시키기 위해 웬만한 원자력 발전소의 총 발전 용량에 해당하는 전력을 몽땅 집어삼킨다.

이렇게 가속된 전자빔이 저장 링으로 들어가면 초고진공의 저장 링 통로가 기다리고 있다. 통로를 초고진공 상태로 유지하는 것은 전자를 빛에 가까운 속도로, 연구에 필요한 시간 동안 축적 · 유지하기 위해서이다. 이 진공 통로에 요구되는 진공도는 전자가 저장 링에 축적될 때는 토르(torr · ltorr는 1/760 기압), 전자가 없는 상태에서는  토르까지이다. 우리가 사는 대기압 상태의 가스 입자간 평균 충돌 거리를 1㎝라고 하면, 토르의 진공 상태에서는 그 거리가 1억~10억㎞나 된다. 대기로 따지면 지상에서 6천㎞쯤 올라간 곳의 상태에 해당한다. 따라서 이만한 진공 통로를 만들자면 가공 · 화학 세척 · 용접 · 조립 등이 완벽해야 한다. 특히 용접에 따른 열 변형이 거의 없어야 한다.

초고진공 통로 안에서 전자는 일정한 에너지를 유지하면서 36개 휨 전자석의 자장에 의해 원형에 가까운 저장 링 궤도를 돌게 된다. 방사광은 이 전자가 전자석에 의해 커브를 틀 때마다 그 접선 방향으로 방출되는 것이다. 전자가 2백80m의 저장 링 궤도를 한번 도는 데 걸리는 시간은 백만분의 1초. 그런 속도로 궤도를 백억번 이상 돌아야 실험에 이용할 만한 빛을 방출할 수가 있다. 이 때 회전하는 전자의 위치는 0.01㎜ 내의 오차를 가져야 한다. 전자 궤도가 얼마나 안정성을 갖춰야 하는지 분명하게 보여주는 대목이다.

저장 링 부분은 방사광 가속기가 3세대형이냐, 1세대 혹은 2세대형이냐를 구별짓게 하는 곳이기도 하다. 3세대형 가속기는 방사광의 에너지를 더 높이려는 방편으로 저장 링의 직선 부분에 언듈레이터나 위글러 같은 삽입 장치를 붙였다. 이 장치는 자석 여러 개를 극을 달리하면서 순서대로 배치한 형태인데, 방사광의 세기를 높여줄 뿐 아니라 움직임까지 조절해준다.

“선진국 과학에 한발짝 더 접근”
이처럼 온갖 방법으로 더 밝고 강한 빛을 얻으려 애쓰는 것은 그만큼 방사광의 쓰임새가 많기 때문이다. 물리학 의학 생물학 화학 재료공학 기계공학 등 응용할 수 있는 분야를 대강 열거해보아도 산업계의 거의 모든 분야에 해당한다. 생명과학 분야와 2백56메가 디램 이상의 초고집적회로를 개발해야 하는 반도체 분야는 그 중에서도 특히 이용 가치가 높다.

무엇보다 선명한 유전자 구조 사진을 얻을 수 있다. 재래식으로라면 7~8시간씩 걸리는 일을, 방사광을 이용해서 백만배나 더 밝은 빛으로, 그것도 몇초 안에 찍을 수 있는 것이다. 더욱이 살아 있는 생명체의 세포를 그대로 관찰하는 것이 가능하다. 따라서 포항 방사광 가속기가 가동되면 혈액 속에 든 특정 원소를 규명하거나 유전자 단위의 질병을 연구 · 퇴치하는 데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2백56메가 디램 이상의 초고집적 반도체를 만들려면 높은 강도와 분해성능을 가진 방사광 X선이 필수적이다. 미국 IBM이나 일본의 일본 전신전화(NTT)는 반도체 제조용 전용 가속기를 보유하고 있을 정도이다. 반도체 전용 가속기는 대개 원둘레 30m 이하인 소형인데 2000년에 가면 그 수요가 세계적으로 2백여 대에 이를 전망이다. 초고집적 반도체 개발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90년 대당 2천달러 선이던 전용 가속기의 값도 4년새 3배로 껑충 뛰었다. 일본은 이러한 미래 수요를 예측하고 얼마 전부터 소형 전자가속기의 상품화를 모색하고 있다고 전해진다.

이밖에도 원자 · 분자의 물성 분석이나, 극미세 기계(nano machine) 제작, 심장 진단 및 뇌종양 치료, 고온 초전도체 같은 신소재 개발 등 방사광 가속기의 이용 범위는 이루 열거하기 어려울 만큼 넓다. 많은 나라가 앞 다투어 방사광 가속기 건설에 나서는 것도 그때문이다. 95년 준공 예정으로 시카고에 70억eV 규모의 방사광 가속기를 짓고 있는 미국이나, 98년 완성 예정으로 세계 최대 규모인 80억eV급 방사광 가속기 건설에 나선 일본은 이 분야에서 가장 큰 관심을 보이는 나라들이다. 독일 영국 스위스 브라질 인도도 방사광 가속기에 관심이 많다.

방사광 가속기는 다양한 응용 가능성뿐 아니라, 그것을 건설하는 과정에서 괄목할 만한 과학 · 기술의 진보를 기약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더욱 의미가 크다. 高仁洙 교수(포항가속기연구소 운전실장)는 “우리나라가 방사광 가속기를 건설함으로써 과학 선진국의 수준에 한발짝 더 다가서게 되었다”라고 말한다.

가속기 건설에 필요한 주요 장비나 부품은 모두가 첨단 기술과 고도의 정밀성을 요구한다. 포항 방사광 가속기 연구팀은 그 요구를 매우 빠른 속돌 충족시켰다. 국산화에 성공한 모듈레이터, 초정밀 전자석 전원장치 등은 연구팀이 올린 개가의 일부였다. 모듈레이터의 경우, 국산화에 성공함으로써 대당 4억원 이상의 비용 절감 효과를 얻었다. 그러나 그 보다 더 큰 효과는 기술 전수국이던 미국과 중국이 국산 모듈레이터를 사고 싶다는 의사를 표명해온 것이다.

수요 · 예산 등 ‘건설 후’ 숙제 잘 풀어야
올해 12월쯤부터 시험가동에 들어갈 계획인 포항 방사광 가속기는 70여 기업체와 연구소가 동시에 이용할 수 있는 방사광을 공급할 수가 있다. 전자가 휠 때마다 발생하는 전자파가 부채꼴이기 때문에 36개의 휨 전자석마다 보통 2~3개의 방사광관을 동시에 설치할 수 있으리라는 계산이다. 실험용 시편(試片)은 방사광을 내는 전자 궤도에서 10~30m 떨어진 곳에 설치된다. 그 사이에 방사광을 제어하는 여러 장치들, 예컨대 특정 파장을 선택하는 장치, 방사광 개폐장치, 방사광 방향 전환 장치 등을 장착하기 위함이다.

이제 방사광 가속기의 준공은 기정사실이 되었다. 문제는 그 이후부터이다. 기계를 들여오거나 짓는 것보다 그것을 적절히 운용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당연한 얘기이다. 1백30억원대에 이르는 가속기 연구소의 1년 예산을 어떻게 조달할 것인가가 당면 과제로 떠오를 것이다. 물론 가속기가 지닌 빛 제조 능력에 걸맞는 수요가 있다면 별반 문제될 것이 없다. 다만 아직 그만한 인식이 확산돼 있지 못하다는 점과, 국내에서는 아직까지 한번도 시도되지 않은 영역이라는 점이 정확한 예측을 어렵게 한다.

방사광 가속기는 국력의 상징일 뿐 아니라 실제로도 국력의 기초인 과학 수준을 한단계 높이는 계기가 된다. 그러나 과학 수준을 실제로 그만큼 높이느냐 단순히 ‘계기’에 그치고 마느냐는 다른 문제이다. 가속기 건설 이후가 더 중요한 것이다.
포항 · 金相顯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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