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무력’ 패션쇼
  • 워싱턴·김승웅 특파원 ()
  • 승인 1994.04.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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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도적 보스니아 공습, 클린턴식 ‘북한 핵’ 해법 암시



 보스니아에 대한 미국의 무력 개입이 아주 진지하다. 진지한 나머지 이번 개입이 지니는 기념비적인 평가나 의미마저 빛이 바랠 정도다. 이번 개입은 보스니아내 회교도의 안전 구역이자 세르비아와 경계를 이루는 고라제 시에 대한 미국 공군기 편대의 두 차례  파상 공습이 전부였다. 그러나 나토의 깃발을 달고 행한 첫 출격이자 집단 방위를 역내(유럽)에서 처음 성사시킨 출병이라는 점에서 나토 창설 45년만의 획기적 사례로 남는다. 또 사태가 처음 발생한 이후 엄포와 회유를 2년 남짓 되풀이해온 미국의 보스니아 정책이 드디어 무력 개입 쪽으로 선회했다는 점에서, 최악의 경우 월남전 개입을 불러온 통킹만 사태의 재판이 될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그러나 말이 무력 개입이지, 그 속을 들여다보면 세르비아군 지역사령부와 포대를 위협한 공습에 그쳤고, 탱크 1대가 박살난 것이 전과의 전부라서 싱겁기 그지없다.
 그나마 공습 둘째 날 출격에 나선 미국 해병대 소속 FA 18 호네트 가운데 1대는 보턴을 눌렀는데 폭탄이 발사되지 않고 날갯죽지에 대롱대롱 매달리는 바람에, 기총소사로 탱크를 공격하는, 웃지 못할 희극을 연출했다.

겉보기 달리 치말하게 준비된 작전
 이번 개입은 그러나 시작에서부터 마무리까지 나토사령부를 제치고 백악관이 직접 사령탑을 맡았다는 점에서 미국의 의지가 의도적으로 실린 의미심장한 군사작전이었다.
 클린턴 대통령이 직접 사령탑에 앉아 지휘하고, 언론을 향해 공습의 의미까지 설명해 줄만큼 진지한 작전이었다. 노리는 바는 단 하나, 미국의 물리력 동원 의지를 과시하는 것이었다. 만 2년 간의 보스니아 사태가 결국 안보리 결의와 유엔 평화유지군 파병을 부르고, 유엔 요청에 따른 나토군 출격으로까지 이어지게 된 사실을 미국은 지금 누군가에게 보이고 싶은 것이다. 보이고 싶은 대상이 과연 누구냐에 대해서는 백악관측이 드러내놓고 시사한 것이 없어 아직 불분명하다.

 다만 상황 설정이나 해법과 관련지어서 볼 때 일단은 북한을 염두에 둔 물리력 과시에 목적이 있지 않겠느냐 하는 것이 백악관 주변의 진단이다. 보스니아와 북한 핵 문제는 그 대응에서 유엔의 개입과 결의라는 수순을 똑같이 밟는 모양새라든지, 사태 발생의 시기나 세계적 관심으로 보아도 특히 클린턴 행정부가 출범과 함께 떠맡은 난제라는 점에서 서로 밀접한 연관성을 지녀왔다. 또 이 같은 심증은, 해결 방식은 서로가 다를 수밖에 없지만 해결 의지에 관한 한 공통적으로 단호함(firmness)에 기저를 둔 접근 방식을 택하지 않겠느냐 하는, 자못 설득력 있는 심증으로 굳어져 왔다. 이를 뒷받침할 가장 유력한 진단의 근거로, 이번 무력 개입이 지니는 비우발적  요소가 첫번째로 꼽힌다.

 미 공군 F16 편대가 첫 출격한 10일 오후 5시22분(현지 시각) 당시만 해도 같은 나토군 소속 프랑스 전폭기가 공습 현장인 고라제시 상공을 편대 비행중이었음이 뒤늦게 확인됐다. 그런데도 프랑스 공군기가 아닌 미 공군기가 공습을 맡았다는 점은 그로부터 24시간 이 지난 후에도 역시 미 해병대 소속 FA 18기가 출격한 사실과 더불어 이번 무력 개입에서 드러난 미국측의 의지가 얼마만큼 ‘의도적’ 이었는가를 나타내주는 결정적 증거이다.

 미군기나 프랑스군기나 모두가 이탈리아 북단에 있는 나토군의 기지인 아비아노 공군 기지에서 발진했다. 비행 일정도 이미 여러날 전에 잡혀 있었음이 미 국방성 출입기자들에 의해 확인됐다. 또 이러한 미국측의 의도적인 출격은 무력 개입 사흘 전인 지난 7일 미국 텔레비전 방송에 출연한 백악관 안보보좌관 앤터니 레이크의 입을 통해 이미 그 가능성이 노출된 바 있다.

 클린턴 행정부의 단호한 의지를 읽을 수 있는 또 한가지 행적은, 이번 무력 개입을 전후해 보스니아 사태의 또 다른 당사자인 러시아를 상대로 진지하게 외교적 절충을 벌인 것이다.

 고라제 시에 대한 포격이 시작되기 직전, 러시아의 옐친 대통령은 그의 외교 특사 비탈리 추르킨을 보스니아에 보내 세르비아 지도자 라도반 캬라직과 보스니아 대통령 아리자 이즈체고비치 등 분쟁 당사자들과 일련의 마라톤 회담을 성사시켰다. 추르킨은 또 보스니아 사태를 배후에서 조종하는 유고 대통령 슬로보단 밀로세비치와도 만나, 러시아가 같은 슬라브계인 세르비아에 줄 수 있는 도움의 성격과 원조 방식이 무엇인지 협의하기로 되어 있었다. 세르비아군의 고라제 시 포격이 바로 이 시점에서 터진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사라예보 일원에 휴전이 이뤄진 후 거의 1개월 넘도록 평온을 유지해온 보스니아 사태가 하필 옐친의 특사가 벌이는 순방 외교를 기점으로 하여 고라제 시에 대한 포격으로 돌연 반전된 사실이 미국을 저윽이 긴장시킨 것이다. 미국의 무력 개입이 그 규모 면에서는 폭죽놀이 수준일지 모르나, 이러한 러시아의 움직임과 때를 같이했다는 점에서 내면적으로는 몹시 절제되고 치밀한 분석을 거친 결과로 봐야 한다.

러시아 무마하려 ‘의도적인 불찰’ 취해
 클린턴 행정부는 이번 무력 개입을 사전에 모스크바측에 귀띔하지 않음으로써 ‘의도적인 불찰’을 취했다. 따라서 옐친으로부터 규탄과 비난이 터져나올 것을 워싱턴측은 익히 예상했고, 이 예상은 사실상 적중한 것이다. 클린턴 행정부는 잔뜩 성난 옐친을 달래기 위해 동원할 수 있는 외교 통로를 다 동원했다. 무력 개입의 총책인 페리 국방장관이 러시아 그라체프 국방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무력 개입이 불가피한 상황이었음을 주시시켰다. 또 클린턴도 옐친에게 전화를 걸어 무력 개입이 불가피한 상황이었음을 주시시켰다. 또 클린턴도 옐친에게 전화를 걸어 미국의 입장을 개진했음이 확인됐다.

 그가 옐친에게 말한 내용이나 옐친의 반응이 어떠했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으나 다만 이 과정에서 한 가지 분명해진 것은, 이번 미국의 보스니아 무력 개입과 관련해서 옐친이 러시아 국내 반대 세력들로부터 비난과 원성을 면하게 됐다는 사실이다. 특히 극우 세력의 대표 주자인 지리노프스키가 퍼부을 미국에 대한 비난과 질책을 아예 옐친 쪽에서 미리 터뜨릴 수 있도록 미국이 발판을 놔준 셈이 된 것이다. 지금 옐친 정부가 관심을 쏟고 있는 최대 현안은 미국과의 경쟁이 아니라, 현재 러시아에서 날로 기반을 넓혀가고 있는 지리노프키 세력의 준동이다. 미국은 지리노프스키의 예봉을 꺾을 무기로 ‘의도적 불찰’을 빌려준 것이다. 한마디로 이번 보스니아에 대한 무력 개입은 국제 분쟁에 대한 클린턴 행정부의 외교적 시각과 전술적 접근 방식의 괄목할 만한 성장으로 평가되고 있다.

 똑같은 유형의 시각과 진술을 한반도 쪽으로 돌려서 보면, 북한 핵 문제에 대해서도 보스니아식 접근 방식이 재연될 개연성이 있다는 점에서 크게 우려된다. 다시 말해서 이번 보스니아 사태는 미국의 독자적인 무력 개입이었지만 이를 ‘유엔의 요청에 따른 나토 출병’으로 분장할 여유를 찾게 됐다. 또 냉전체제가 무너진 뒤에도 계속해서 이권 상대인 러시아를 미끈히 요리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미국의 역량을 돋보인다. 북한 핵 문제가 최악의 경우 초래하게 될 안보리의 경제 봉쇄를 놓고도 미국은 이를 보스니아의 예에서 보여준 ‘요청’과 ‘출병’방식으로 거뜬히 밀어붙이리라는 확신을 심어주고 있는 것이다. 또 그 배후의 이권 당사자인 중국을 요리하는 과정에서도 외교적 성숙에 일단 기대를 걸게 한다. 그러므로 아직은 불완전하고 자칫 신뢰할 수준이 되지 못한 것으로 지목 받고 있는 클린턴 대통령의 외교적 통찰력에 대해서는 계속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미 언론들은, 북한이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핵사찰을 또다시 무산시킨 지난 3월 말만 하더라도 클린턴이 뭔가 중대 조처를 취학 위해 미국이 유수한 외교 두뇌들을 대거 소집할 것으로 예상했었다. 그러나 그 절박한 순간에 정작 부름을 받은 사람은 백악관 안보보좌관 앤터니 레이크 뿐이었고, 그나마 대통령 휴양지인 캘리포니아의 골프장에서 마지못해 형식적으로 치러진 정세보고 브리핑을 위해서였다.
 이제 보스니아를 통해 한반도의 해법을 읽을 시기가 된 것이다.
워싱턴·金勝雄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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