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 협조’ 틀 깬 확장 경쟁
  • 김방희 기자 ()
  • 승인 1994.04.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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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업계를 전망하는 데 한·일 간의 경쟁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국내 업체간 경쟁이다. 89년 도입된 조선산업 합리화 조처에 따라 설비를 확장하지 못하고 있다가 93년 시작한 삼성중공업의 2도크 연장 공사는 업체간의 경쟁에 불을 질렀다. 삼성의 이런 기습적인 설비 확장 계획에 화들짝 놀란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은 이에 강력히 반발하고 나섰다. 경쟁적인 과잉 투자로 70년대 후반 이후 10여 년간 침체의 늪을 벗어나지 못했던 기억을 떠올린 두 회사는 정부에 조선산업 합리화 조처를 연장하라고 주장하기까지 했다.

 합리화 조처가 올해로 끝나게 되자 현대 중공업은 입장을 바꾸었다. 설비를 확장하기로 한 것이다. 현대중공업측은 아직 공식적으로 설비 확장 계획을 확인해 주지 않고 있지만, 정부와 경쟁 업체들은 현대가 길이 3백80m 너비 80m짜리 도크 2개를 건설중이라고 보고 있다. 삼성중공업도 2도크 연장 공사에 이어 3도크를 연내 가동한다는 목표로 새로 짓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현대의 설비 능력은 약 1백20만t이, 삼성은 70만t이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업계는, 현대가 전격적으로 입장을 바꾼 이유는 바로 이 수치 때문인지 모른다고 보고 있다. 어떻게 해서든 조선 분야에서 수위를 지켜야 한다는 경쟁 심리가 발동했다는 것이다.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중공업 부문 1위 고수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현대그룹은 전자 부문에서 삼성에 뒤져 있는 데다, 삼성의 자동차 사업 신규 진출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와 관련해 지난 1월 노무라연구소가 발표한 조사 자료는 현대가 당장 설비를 증설할 계획은 없다고 보면서도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확장에 의한 성공을 자주 경험한 정주영 명예회장이 경제적 합리성을 무시한 설비 증설을 주장할 경우, 그의 영향력을 고려할 때 현대가 설비 확장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반면 대우는 현재 설비 확장에 신중하다. 대우중공업 기획실이 한 관계자는 “대우는 기존 설비 능력을 갖고도 생산성을 향상시켜 수요을 충족시킬 수 있다”고 말한다. 대우조선은 89년부터 현재까지 지사의 각종 생산성 지표들이 2배반이나 올라갔다고 보고 있다(이 회사 종업원은 85년 11만 명에서 현재 3만 명으로 현재 연간 2백만t으로 늘어났다). 89년 8천억 원에 이르는 누적 적자를 안고 침몰한 위기에 놓였던 경험도 대우조선으로 하여금 무리한 설비 확장을 꺼리게 하는 요인이다.

 한라중공업은 조선소를 인천에서 목포로 이전할 계획을 갖고 있다. 그러나 자금 동원 능력에 한계가 있어 기존 대형 조선소와 비슷한 규모의 설비를 갖추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도 다른 조선사인 한진중공업은 아직 설비 확장 계획을 갖고 있지 않다. 그러나 이 두 업체는, 삼성과 현대의 설비 확충이 조선업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주시하고 있다.

 국내 조선업계의 경쟁적인 설비 확충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는 아직 판단하기 힘들지만, 적어도 설비 확충 여부가 조선업계의 자율적인 협조 차원을 뛰어넘은 것만은 확실하다.
金芳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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