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 사는 모양엔 휴전선이 없다
  • 성우제 기자 ()
  • 승인 1994.04.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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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속학자 주강현씨 ‘북한 생활풍습 50년’ 집대성 … 풍속 자취 통해 ‘동질성’ 조명



 지난 92년 ‘통일 준비 작업을 하는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 《시사저널》에 소개된 소장 민속학자 朱剛玄씨(39·경희대 강사)가 《북한의 민족생활 풍습 50년사》(도서출판 대동)라는 원고지 3천장 분량의 방대한 책을 펴냈다. 80년대부터 북한 주민의 생활에 관해 연구해온 주씨는 그간 《북한의 민속학-재래농법과 농기구》(89) 《북한민속학사》(91) 《북한의 사회》(91, 공저) 같은 북한 관련 민속학 저서와 <북한의 공예> <북한 명절의 변천> 등 논문을 발표함으로써 국내에서는 거의 유일한 북한 민속학 전공 학자로 평가받아 왔다. 이번에 나온 《북한의 민족생활 풍습 50년사》는 지난 10여 년간 저자가 연구해온 성과를 하나로 묶은 총괄편인 셈이다.

 80년대 중반부터 ‘북한 바로 알기 운동’이 일어나 관이나 민간 차원에서 나름대로 노력을 기울였으나 성과는 지지부진했다. 게다가 북한 연구라면 으레 정치·군사·경제면에 치중되어 있을 뿐 북한의 보통 사람들이 무슨 옷을 어떻게 입고, 무엇을 먹으며, 어디에서 잠을 자는가 하는 일상생활 정보들은 아직까지도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다. 기껏해야 북한을 방문한 인사들의 기행문이나. 매스컴의 북한 소식을 통해 그들의 생활을 접했을 뿐이다. 그런 단편적인 지식은 북녘의 삶을 총체적으로 들여다볼 수 없게 만들었고, 때로는 오해마저 불러일으킬 소지를 안고 있었다.

명절 · 혼상례 풍습, 남북 차이 별로 없어
《북한의 민족생활 풍습 50년사》는 분단 이후 북한의 생활 풍습이 변해온 발자취와 북한 사람들의 생각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북한 인민’의 생활과 관련한 모든 것, 즉 의식주 · 명절 · 혼상제 · 민속놀이 · 여가생활 들을 연구 대상으로 삼아 분단 이후의 변천 과정과 현재 모습을 총체적으로 들여다보고 있는 것이다. 16쪽에 걸쳐 소개한 컬러 사진과 주택 설계도, 수영장 조감도, 대중가요 <휘파람>의 가사 · 악보, 장기 수풀이까지 담은 상세한 그림들은 북한 주민의 생활을 구체적으로 이해하는 데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

 “분단은 이 분야에서도 반쪽 연구를 강요해 왔다. 민족의 생활풍습 연구를 임무로 삼고 있는 사람으로서 북쪽에 대한 연구는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저자는 연구 영역을 북한으로까지 확장하게 된 동기를 이렇게 설명하면서 “이 책은 분단시대를 겪고 있는 북쪽의 민속사인 셈이다. 남쪽의 민속사와 합쳐진다면 ‘한국 민속 해방 50년사’가 되어줄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동안 한국 사회에서는 민족 생활 풍습에 관한 한 남북 간의 이질화가 많이 논의되고 강조되기까지 했다. 그러나 북한 주민의 생활상을 구체적으로 다룬 이 책에 따르면, 이질화한 면보다는 동질성을 지켜온 면이 훨씬 더 많다. 북한의 명절이 온통 사회주의적으로 변하고, 심지어는 없어졌다고 알려져 왔지만, 실상은 북한 사회에서 전통 명절이 소멸된 것은 아니다. 더욱이 90년대 이후 민속 명절을 되살리려는 노력이 한층 강화되어 설날·추석 같은 명절이 되살아나고 있다.

 북한 사회의 식생활에서 민족 음식의 전승은 매우 완강한 것으로 보이며, 명절 음식 역시 전승이 이루어지고 있다. 명절날 모처럼 별난 음식을 배불리 먹고 즐기는 세태는 남과 북이 동일한 것이다. 명절날 조선옷을 차려 입고 세배를 드리는 일도 여전하다. 저자는 “50, 60년대에도 민속 명절이 사라진 것은 아니고 다만 공식적으로만 쇠지 못하는 처지에서 김일성 생일 같은 사회주의 명절이 공식적으로 강조되고 있었다. 현재는 사회주의 명절이 압도적 우위를 차지하는 가운데 민족 명절과 병존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라고 밝혔다.

 북한의 혼상제 풍습도 그 양태는 변했지만 죽은 자를 찾아 명복을 빌고 혼례 잔치에 간단한 선물을 들고가 축하하면서 함께 놀다가는 전통도 여전하다. 동성동본 결혼을 허용하고 있으나 이 결혼을 금기시하는 전통과 풍습은 철저히 지켜지고 있다. 최근 들어 연애 결혼이 늘고 있는데, 중매와의 비율은 반반이라고 한다. 연인들은 사이가 가까워지면 서로를 ‘자기’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고, 최근 자유연애 풍조가 확산되면서 미혼모가 사회문제로 등장하고 있다. 혼상례 풍습에 관한 한 한국과 근본에서 별 차이를 보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한국 사람들이 북한의 의식주 실상을 가장 모르고 있었다. 강냉이를 먹는다는 사실이 오래 전부터 강조되어 왔는데, 평야가 거의 없는 북한의 현실 조건을 보면 당연한 것이다. ‘궁여지책으로 강냉이를 많이 먹는다’는 식의 인식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남과 북의 음식 맛은 다소 차이가 있다하더라도 이질화한 정도는 아니다. 장 공장이 생겨 장 담그기 풍습이 사라졌지만, 평안도와 전라도 김치의 통일, 함경도 단고기와 경상도 개고기의 통일은 이미 이루어져 있다.

 90년대 북한 사회의 가장 중요한 문제 중의 하나는 의식주 해결이다. 특히 옷차림과 머리 모양, 화장이 종전보다 화려하고 세련되게 본격적인 변화를 보인 것은 89년 초부터이다. ‘인민 생활의 질을 높이는 과제’가 설정된 데다 변화한 현실 속에서 ‘현대적 미감’ 문제가 제기되었기 때문이다. 이미 80년대부터 북한 잡지들은 다양한 패션의 모델들을 등장시켰고, 82년 북한 최고인민회의에서 김일성 주석이 다음과 같이 밝혔을 정도이다. “여성들이 소매 없는 옷과 가슴이 많이 팬 옷을 입고 대담한 노출을 한다고 해서 사회주의 생활 양식에 어긋나는 것은 아니다.”

“통일은 ‘삶의 통일’임을 깨달아야”
 최근에는 의류 전시화와 기성복 전시회가 열리고, 91년에는 김주석 부자가 참석한 가운데 북한 최초의 패션 쇼가 열리기도 했다. 현재 북한에서 만들고 있는 신발의 디자인을 살펴보면 축구화에 유스라는 영어 단어가 씌어 있고, 예전에는 드물던 하이힐도 평양 거리에 공공연하게 등장하였다고 한다. 《북한의 민족생활 풍습 50년사》는 분단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북한 주민의 생활상을 살피고 있지만, 특히 최근의 변화 모습에 큰 비중을 두고 있다. 90년대의 자료들을 보면 개방과 현대화라는 문제에 대한 북한 사회의 고민을 읽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북한을 바로 알기 위해서는 현재를 제대로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통일은 외형적인 체제나 정권의 통합이 아니라 민족의 통일, 곧 사람과 사람의 통일이요 삶의 통일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북쪽에서 행해지는 먹고 입고 집 쓰고 살기, 놀이를 즐기고 예술 생활을 향유하기, 결혼하고 장례를 치르고 조상을 모시기, 여가 생활 같은 풍습들은 바로 남쪽에서도 이뤄지는 풍습들은 바로 남쪽에서도 이뤄지는 풍습들이므로 훗날 통일 국가의 삶 속에서 녹아날 단일 민족 생활의 내용물들이니 자랑스런 민족적 재부로 합쳐질 수 있을 것이다.” 민족이 동질성을 가장 잘 드러내주는 민속학 분야에 대한 연구와 관심이 북한을 바로 아는 데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강조하는 저자의 말이다.
成宇濟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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