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만증 재벌은 몸매 가꿔라
  • 송일 교수.(한국외국어대.무역학) ()
  • 승인 1994.05.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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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현상에 관한 법칙은 절대 진리는 아니다.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미국의 두 경제 석학 사무엘슨과 스티글러가 카터 행정부의 경제 정책을 놓고 난상토론을 벌인 적이 있다. 이 토론에서 사무엘슨 교수는 “스티글러 교수의 논리는 매사가 허구입니다. 이제 또 그가 무슨 거짓말을 하는지 들어 봅시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스티글러가 벌떡 일어나 “2+2=4”라고만 말하고 착석해 버려 좌중을 웃겼다는 일화가 있다

1~2년 전만 하더라도 일본식 경영 비법을 전수받는 길만이 우리 기업이 살 길로 생각됐다. 비단 한국뿐 아니라 미국도 그랬다. 그러나 상황은 달라졌다. 리스트럭추어링, 리엔지니어링 등 미국 경영혁신 운동의 열풍이 일본열도를 휩쓸고 있다. 일본 경제 기적의 일등공신으로 칭송됐던 통산성의 산업정책과 기업의 종신고용제·연공서열제가 사라져 가고 있다.

이제 우리는 우루과이 라운드 타결 이후의 경쟁 시대를 유효하게 주파할 전략적 트랙이 무엇인가를 음미해볼 필요가 있다. 지난 겨울올림픽 릴레함메르의 감격 어린 쇼트트랙 경기장을 한번 회상해 보자. 쇼트트랙이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점을 이용해 우리는 승부의 관건을 힘의 논리보다 유리한 코너링과 가속력이란 기술의 논리로 접근해 이 종목을 스포츠 경쟁력의 전략거점으로 삼았다. 기업도 이처럼 전략적 전문우위 부문을 개발해 국제 분업의 이익을 극대화해야만 생존할 수 있는 시대이다.

1백분의 1초를 다투는 숨가쁜 드라마는 올림픽 경기장의 전유물이 아니다. 세계화 시대의 신기술·신상품 경쟁 레이스는 초음속이 아니라 광속적인 변화를 요구하기 때문에,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계 수요에 1백분의 1초의 스퍼트로 반응해야 살아남는다.

매력 있어야 국제 기업 블록화에 낄 수 있다
지금 세계 기업들은 다국적화·무국적화의 피치를 올리며 지구화하고, 이른바 전략적 제휴(strategic alliance)를 통해 국제 분업의 이익과 반사적 순발력으로 세계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다양한 소비자 욕구의 변화, 업종의 경계를 초월하는 복합 상품 등장, 급등하는 연구·개발 리스크 등 급변하는 경영 환경을 극복하기가 단일 기업의 힘으로 버겁게 되었다. 이것이 세계 유수 기업간의 최강점을 접합하고 이의 상승 효과를 극대화하여 경쟁 기업과도 ‘적과의 동침’을 서슴지 않는 전략적 제휴라는 증후군의 배경이다.

GM과 도요타, 포드와 닛산이 기술 및 생산에서 제휴하며, IBM이 개발한 휴대용 단말기를 미쓰비시가 생산하고 벨사우가 판매하는 3자 제휴 등 바야흐로 공룡들의 동침이 시작되고 있다. 이들 세계 정상 기업 간의 블록화는 개발·생산·판매에서 상호 약점을 보완하고 새로운 형태의 독과점 체제를 이루며 세계 시장에서 가공할 파괴력을 보일 것이다.

이와 같은 국제화의 파고 속에서 우리 대기업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한 기업이 전략적 제휴라는 기업 블록화에 끼어들기 위해서는 상대방에게 특정 분야에서 자사 특유의 핵심 영역이나 매력적 가치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비록 뇌쇄적이지는 않아도 동침을 유혹할 최소한의 ‘성적 매력’은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우리 재벌의 문어발 수는 늘어만 가고 있고, 정부의 재벌에 대한 미련한 집념도 고집스럽기만 하다. 제2 이동통신 선정 과정은 물론 사회간접자본(SOC) 민자유치 계획이나 국영 기업 민영화 계획에 비친 정책을 보면, 근육질 없는 우리 재벌의 외형만 키우기가 곧 국가 경쟁력 강화로 오인되고 있다는 느낌이다.

세계 공산품 교역의 40%를 차지하는 다국적 기업들은 전문 업종을 중심으로 보완·결합·융합 등의 맹렬한 핵반응을 일으키며 국제분업의 새 질서 속에서 공포의 세력을 형성하고 있다. 우리 기업이 전략적 동침의 파트너로서 매력이 없다는 것은 세계 시장에서 낙오자 대열로 전락하는 것을 의미한다.

앞으로 사회간접자본 민자유치는 물론 국영 기업 민영화 과정에서 외국 기업의 참여는 반드시 되어야 하며, 이를 통해 세계 일류 기업과 한국 재벌 간의 전략적 제휴가 활발히 매개되는 계기가 마련되어야 한다. 전략적 제휴는 기술·자본·경영에서 낙후한 우리 기업의 신분이 세계 일류 기업으로 빠르게 수직 상승할 수 있는 통로이며, 과감한 개방을 통해 지구촌 단위의 유효경쟁 체제에서 비만한 재벌이 전문 분야 별로 헤쳐모일 호기를 제공할 수 있다.

정부의 산업정책은 이제 세계화 패션에 맞게 재설계되어야 한다. 만약 포스트 우루과이 라운드 시대를 흐르는 한강에서 제2의 기적을 또다시 이루려면, 그것은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진행되어야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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