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중매인만 문제냐 제도부터 고쳐라”
  • 이문재 기자 ()
  • 승인 1994.05.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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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매인ㆍ도매법인들 “당ㆍ정이 현실 너무 모른다”

서울 송파구 가락동 289번지 일대 16만4천2백77평 부지 위에 농수산물 종합도매시장이 건립될 때 그 취지는 농수산물 유통의 대량화와 원활화, 적정가격의 유지, 그리고 생산자와소비자의 이익 보호였다. 가락동 농수산물 도매시장(가락시장)이 세워진 지 꼭 10년째인 지난 5월3일, 이와 같은 취지를 토대로 한 새 농안법이 발효된 바로 다음날, 이 시장 소속 중매인 1천5백여 명이 ‘준법투쟁’에 들어갔다.

 생산자와 소비자는 물론 법을 만든 여ㆍ야 그리고 청와대가 발칵 뒤집혔다. 이 준법투쟁이란 단체 행동은, 그간 이 시장과 당국이 법을 지키지 않아 왔다는 단적인 ‘증명’이기도 했다. 법대로 하면, 공영 도매 시장인 가락시장에 들어오는 농수산물 가운데, 그동안 관행에 따라 중매인들이 도매해 오던 80%가 유통되지 않는다. 법에 따라 중매인들의 중매를 통해 소매상에게 넘겨 줄 수 있는 것은 물량의 20%뿐이다.

 개정 농안법에서 중매인들이 강력 반발하고 있는 부분은, 우선 중매인들의 도매 행위 금지 조항이다. 두 번째는 농수산물 가공업자나 백화점 운영자처럼 대량 실수요자로 중매에 참여해온 ‘매매참가인’과 중매인과의 구별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세 번째는,청량리나 영등포시장과 같은 유사 도매 시장은 그대로 둔 채, 왜 경매제가 어느 정도 정착돼 가고 있는 가락시장의 중매인들만 묶어두느냐는 것이다. 네 번째는 농안법을 개정하면서 단 한차례도 자기네 의견을 듣지 않았다는 불만이다. 중매인과 도매법인들은 “민자당이나 정부가 현실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며 제도적 개선을 선행해야 한다고 말한다.

“중매인뿐 아니라, 도매법인에도 문제”
 가락시장은 과일 채소 선어 패류 활어 육류(소, 돼지) 등 하루 평균 7천3백여 t의 물량을 거래하고 있는데 이 가운데 청과류가 6천5백t을 차지한다. 하루 이용 인원은 15만9천여 명에 이르고, 거래금액은 52억여원, 서울과 수도권 지역이 소비하는 농수산물의 45%, 전국적으로는 20%를 처리하는 대형 도매 시장이다.

 가락시장에는 동화청과, 농협공판장 등 5개 농산물 도매법인, 강도수산ㆍ수협공판장 등 3개 수산물 도매법인, 그리고 축협공판장을 합해 모두 9개 도매법인이 있고, 이법인들에 중매인들이 소속돼 있다. 도매법인은 출하자가 위탁한 농수산물을 경매나 입찰에 의해 중매인과 매매참가인에게 판매하고, 출하자(생산자)로부터 위탁 상장 수수료(6%)를 받는다.

 중매인들은 ‘옥상옥’인 도매법인과 농수산물도매시장 관리공사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나선다. 새 농안법에서 거론한 중매인 문제는 국지적인 문제일 뿐이라는 것이다. 더 본질적으로는 농산물의 규격화와 포장화, 도매 시장의 운영과 관리 개선, 그리고 도매 시장의 확충(서울에 최소한 3개 이상 건립) 등 제도적 개선이 먼저 이루어져야 새 농안법이 정착될 수 있으며, 나중에는 일본처럼 중매상들이 대형 도매법인으로 발전해 나가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물량 유치 가능한 자에게 도매법인을”
 전국농산물중매인조합연합회 이주영 회장은 “도매법인은 농산물 수집 능력과 판매 능력이 없다”고 잘라말한다. 가만히 있어도 생산자들이 농산물을 가지고 오며, 그것을 중매인들이 판매한다는 것이다. 현재 가락시장에서 유통되는 농산물은 모두 1객24개 품목인데, 이중에서 54개 품목만이 경매를 통해 판매되고, 무ㆍ배추ㆍ파ㆍ마늘같이 규격화와 표준화가 어려운 채소류는 거의 다 중매인들의 ‘도매’로 거래되고 있다. 이른바 밭떼기나 매점매석에 의한 가격조작 의혹이 여기서 발생하는 것이다.

 이같은 의혹에 대하여 중매인연합회 사무국장 이정수씨는 이렇게 답한다. “싼 값에 사서 비싸게 판다는 지적이 있는데, 이 경우는 경매사의 잘못이거나 중매인의 담합이 원인일 수 있다. 그러나 도매 시장의 마진은 10%미만이다. 고정 거래처들이고, 그들이 결정 가격을 알고 있기 때문에 가격 담합은 불가능하다.” 또 매점매석에 대해서는 “농산물 저장과 매점매석의 차이가 애매하며, 매점매석의 주체도 산지 저장업자, 산지 중간수집상, 산지 도매상 등 불특정 다수이다”라고 말했다.

 가격 조작의 한 원인으로 지적돼온, 일부 산지 수집상에게 자금을 지원하는 관례 역시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라고 덧붙였다. 생산자는 예전처럼 소규모 재배에서 벗어나 3만~5만평 규모로 기업화ㆍ조합화하고 있는데, 중간수집상이 없으면 자금이 회전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배추 같은 경우 1년에 열한번 출하하는데 중간상의 선지불이 없으면 다음 농사를 짓기 어렵다는 것이다.

 중매인들은 도매법인에 소속돼 있는 경매사들도 거듭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가락시장에는 보조경매사까지 경매사가 40여명쯤 활동하는데 50대 이상이 절반이 넘는다. 경매사는 국가고시에 합격해 자격증을 따야하고, 중매인을 서울시장(해당 시청)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한편 매매참가인은 등록만 하면 된다.

 “앞으로 도매법인은 물량 유치가 가능한 자에게 허가해 주어야 한다”고 이주영 회장은 강조한다. 그에 따르면, 현재 부산ㆍ수원ㆍ인천과 같은 공영 도매 시장은 원래 취지대로 운영되지 못하고 있다. 부산에는 지난해 11월 두 곳에 도매법인이 개설되었는데 유사 시장 기능이 훨씬 크기 때문에 도매 시장의 경매는 장이 잘 안선다는 것이다. 수원에도 3개 도매법인이 있지만, 서울 가락시장에서 일부 품목을 사다 다시 판매한다. 수수료가 이중으로 부담되는 비효율이 버젓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인천도 마찬가지이다.

 이번 새 농안법이 ‘문제의 도매법인’을 전혀 거론하지 않았다면서 농수산물 유통 구조를 근본적으로 뜯어고치겠다고 한 정부 여당의 발표에 대해 가락시장 농산물 도매법인의 한 관계자는 “우리에게도 생사가 걸린 사안이다. 전국 47개 도매법인의 기능과 역할을 과연 누가 담당할 것인가. 도매법인들도 분명한 입장을 보일 것이다”라고 밝혔다.
李文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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