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 조갈’ 민자당 새 물 대기 한창
  • 한종호 기자 ()
  • 승인 1994.05.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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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당 30여 곳 개편 … 재야인사 영입 계속할 듯

요즘 민자당에서는 금년 들어 두번째 물갈이 작업이 한창이다. 과거와 마찬가지로 잡음도 많고 추측도 무성하지만 물갈이라는 대세에는 변화가 없는 것 같다. 말 그대로 ‘물을 가는’ 작업이다. 들리는 잡음도 주로 ‘가는 물’이 ‘오는 물’을 향해 던지는 험담들이다. 특히 재야인사 영입을 통한 민자당 갱신이라는 개혁주도 세력의 정국 구상은 이번에도 관철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고 지구당 정비작업이 관심을 끌게된 직접적 발달은 박용만 당고문의 발언이다. 박고문은 5월3일 열린 당 고문회의에서 지난 3월9일 입당한 김문수 부천ㆍ소사지구당 위원장을 직접 겨냥하여 “5ㆍ3 인천사태 때 YS도 나도 죽을 고비를 넘겼다”라며 폭언에 가까운 항변을 털어놓았다. 박고문이 이렇게 하가 잔뜩 난 이유는 간단하다. 이번 지구당 정비에서 사고 지구당으로 찍혀 지구당위원장자리를 내놓아야 할 처지이기 때문이다. 박고문은 예전부터 우익 인사로 유명한 사람이었다. 김문수씨 같은 재야인사는 ‘새 물’로 들어오는데 자기 같은 노병이 ‘퇴물’로 밀려나는데 대해 울화통을 터뜨린 것이다.

“민주계를 희생양 삼는다”
 물갈이는 ‘사고 및 부실 지구당 정비’차원에서 진행되고 있다. 대상지는 사고 지구당 9곳(서대문 을, 서초 갑, 강동 갑, 강서 갑, 대구 동을, 화순, 명주ㆍ양양, 고흥, 담양ㆍ장성)과 20여 곳의 부실 지구당이다. 민자당에는 지구당이 2백27개 있다. 이 가운데 원외 지구당이 87개였는데 지난 3월에 10개는 채웠고 77개가 남은 셈이다. 민자당 지도부는 당무감사와 현지조사를 통해 지구당의 ‘부실 정도’를 측정해 이 가운데 뒤에서부터 30여곳 정도의 위원장을 갈이치울 생각이다.

 이런 의지와 계획은 이미 실행에 옮겨지고 있다. 김종필 민자당 대표가 5월6일 청와대 주례 보고에서 부실 지구당 개편 문제에 대한 협의를 마친 것으로 보여 이번 주부터 대상자에 대한 개별 통보 및 설득이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물갈이를 주도하는 당 지도부는 민주계가 솔선수범하는 모습을 보여야 비민주계 위원장들의 불만을 누를 수 있기 때문에 이들을 희생양으로 삼고 있다는 관측이 유력하다. 최하위권이라던 김명윤 고문은 5월3일 천우신조로 이홍구 통일 부총리가 앉아 있던 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 자리를 나꿔채 ‘파문’이란 불명예를 피할 수 있었지만 같은 민주계 중진인 박용만 고문(성동 병), 김수한 위원장(관악 을) 등은 밀려날 것으로 보인다. 이상하 한국프레스센터 이사장과 지연태 한국관광공사 사장은 5월3일 자진해서 위원장 직을 내놓았다. 최재욱 민자당 사무부총장은 “두 위원장의 사퇴는 부실 지구당 정비작업과는 관계가 없다. 현직에 충실하겠다는 뜻에서 본인들이 내린 결정이다”라고 말한다.

 새로 등장할 인사들에 대해서는 벌써부터 관심이 높다. 이번 지구당 개편은 사회 전체적으로 개혁 퇴조 현상이 일고 있는 상황에서 여권 내부에 개혁 바람을 몰고올 효과적인 방안으로 활용되는 측면이 강하다. 개편을 추진하는 민자당 당직자는 “참신성ㆍ개혁성ㆍ전문성이라는 인선 기준에는 변화가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당 일각에서는 민자당이 내년 6월에 실시될 자치단체장 선서에 경영 능력을 가진 인사를 내세우겠다고 했듯이 변호사나 전문경영인을 많이 뽑지 않겠느냐고 관측한다. 그렇지만 민자당의 장래와 관련해 볼 때 역시 관심의 초점은 재야인사 영입 쪽이다.

 재야인사 가운데 입당이 가장 유력한 인사는 이재오씨와 이우재 전 민중당 대표이다. 이재오씨는 87년 13대 대선 때 후보단일화 운동을 주도하며 사실상 김영삼 후보 지지운동을 했었다. 이 과정에서 이씨는 최형우 내무부장관과 ‘호형호제’ 수준의 깊은 관계를 맺었다. 또 이우재씨의 경우 김대통령 취임직후 대통령 직속으로 만든 농어촌발전위 위원장으로 위촉된 것에서 알 수 있듯 상도동 캠프와의 관계가 허술치 않다. 민자당 당무감사에서 구로 을 지구당(위원장 유기수)이 교체 대상으로 분류됨에 따라 이 지역에서 오랫동안 지역구 관리를 해온 이우재씨가 임명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이씨는 얼마전에도 농수산부장관 하마평에 오르내리기도 했다. 길게 보아 장기표씨 역시 민자당 입장 대열에 뛰어들 것으로 예측하는 이가 많다.

 개혁파 영입에 대해 지난 3월 대통령 일ㆍ중 순방을 수행하고 온 민정계의 한 의원은 “민자당은 재야의 개혁적 인사를 계속 영입하여 내년 초까지 대대적인 당 조직 갱신을 마무리해야 할 것이다. 그 이상의 인위적 정계 개편은 생각할 수 없다”라고 주장했다. 느린 화면처럼 서서히 진행되는 민자당의 변신이 어떤 모습을 그려낼지 궁금하다.
韓宗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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