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박받은 한국 미술 독특함으로 ‘본때’
  • 워싱턴ㆍ양지연(뉴욕 대학 석사과정) ()
  • 승인 1994.05.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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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미스소니언 박물관 ‘18세기 한국 예술전’ 성황

지금 미국 워싱턴 D.C.의 스미스소니언 박물관 아서 새클리 갤러리에서는 한국 미술의 진수와 독특한 아름다움을 소개하는 역사적인 전시회가 커다란 감흥과 호응 속에 열리고 있다. ‘18세기 한국 예술 - 장엄과 소박의 미’라는 제목의 이 전시회(2월20~5월15일)는 뉴욕의 아시아협회(Asia Society)가 기획해 지난해 가을부터 1년간 지속되는 한국 축제의 중심행사이다. 지난해 아시아협회갤러리의 전시를 시작으로 이곳 새클리 갤러리를 거쳐 로스앤젤레스 타운티 미술관으로 자리를 옮기게 되며 8월21일까지 한국 축제 기간에는 미국 대도시의 미술관을 도며 전시하게 된다.

 ‘18세기 한국 예술전’은 한국 미술의 연구와 전시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킴은 물론 <워싱턴 포스트>가 전한 대로 ‘주변국으로서 오랫 동안 부당하게 간과되어온 한국 미술의 독자성’을 워싱턴을 찾은 수많은 사람에게 보여준 뜻깊은 전시회이다. 이번 전시는 87년 아시아협회 관장이 서울을 방문해 국립중아 박물관에 한국 미술의 전시에 대한 자문을 구했고, 양측이 18세기 미술을 주제로 하는데 의견을 모음으로써 성사되었다. 아시아협회 큐레이터로 활동한 적이 있는 김홍남 교수(이화여대ㆍ미술사)가 91년부터 서울에 머무르면서 국립중앙박물관의 정양모ㆍ강우방 씨와 공동으로 전시 기획을 총괄했으며, 스미스소니언 전시는 프린스턴 대학에서 동야미술사 박사과정에 잇는 권지연시가 책임을 맡았다. 국보로 지정된 10여 점을 포함해 정선된 총 1백20여 점의 작품은 종교 의식과 궁중 예식, 일상생화에서 사용되던 가구, 회화, 조각, 섬유, 도자기, 공예, 서예 등 온갖 분야를 망라한 것으로 그 대부분이 해외에서 처음 공개되었다. 더욱이 18세기라는 단일 시대에 초점을 맞춰 체계적인 구성력과 이해도를 높였고, 당시 사회의 모습과 예술의 발전상을 조명하고 그 독자성을 보여주는 데 의미를 두었다.

효ㆍ조상숭배 사상 담긴 예술품들
 ‘18세기 한국 예술전’은 새로운 문화 예술이 눈부시게 발전했던 18세기 예술의 흐름을 민간 예술ㆍ궁중 예술ㆍ종교 예술 세 부문으로 나누어 기획해 순서에 따라 자연스럽게 관람할 수 있도록 배치하였다. 전시장의 입구를 따라 들어가면 맨 처음 윤두서의 자화상이 눈을 끈다. 초상화, 특히 자화상은 동양 문화권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것인데, 강한 인상을 주는 극사실 기법의 이 자화상은 많은 관심을 끌었다. 양반의 서재에 놓였던 책상ㆍ문갑 같은 가구의 세련된 미감이 돋보이는 탁자와 항아리ㆍ보자기 등이 있는 민간 예술 부문은 풍성한 볼거리와 얘깃거리를 제공했다. 양반과, 새로운 부유층으로 떠오른 중인 계층이 사적으로 소장했던 이러한 민간 예술은 무엇보다 18세기 한국 미술에 독특함을 부여해 주며, 이들의 독특한 예술 취향은 풍속화 등 이 시대 특유의 화법 전개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다. 이들 그림에서 보이는 해학성과 생생한 묘사는 상류층이 일상 생활의 즐거움을 종교나 학문의 관념성 못지 않게 중요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했음을 반영하고, 새로운 소재를 찾아나선 예술가들의 생명력과 자긍심을 말해주는 18세기 한국 사회와 예술 변혁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겸재 정 선의 진경산수화 역시 이러한 예술의 흐름을 대변하는 한국 고유의 화풍으로서 금강전도를 비롯한 4점의 작품에서 볼 수 있는 대담하고 혁신적인 구도와 핍진한 묘사가 장엄함을 더해준다.
 궁중예술실에서는 왕실에 놓던 병풍과 도자기 등이 화려하고 장엄한 모습을 드러낸다. 여기서 두드러지는 것은 왕의 권위를 나타내기 위한 상징물이다. 일월오악도는 옥좌 뒤편에 세워져 우주의 중심적 존재로서 왕의 지위를 드러낸다. 선명한 색상의 진채 화법과 대담한 구성으로 동아시아인의 우주관을 표현하는 이 병풍은 중국ㆍ일본과는 다른 숭엄하면서도 소박한 느낌을 준다. 이밖에 영조와 정조가 제작한 서첩과 회화들은 학자로서 왕의 면모를 보여주며, 여러 궁중예식도 가운데 정조가 어머니의 묘를 참배하러 가는 행렬을 묘사한 병풍은 계층의 고하를 막론하고 한국 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효 사상ㆍ조상숭배 사상의 단면을 보여준다.

 이러한 사상은 다음 전시실에서 소개되는 종교 예술 부문에서 상류층 가정의 유교적 제례의식에 쓰인 족자ㆍ제기ㆍ제사상 따위를 통해 자세히 살필 수 있다. 유교ㆍ불교ㆍ무속신앙의 독특한 융합으로 18세기 종교 예술은 독특한 모습을 띠는데, 이러한 사회적 양상을 잘 보여주는 것이 감로탱화이다. 죽은 이의 왕생극락을 기원하는 종교의식도의 하나로 18세기에 성행한 독특한 불교 양식인 감로탱화는, 불교적 세계관과 조상숭배 사상의 혼합주의를 드러내며, 이 그림의 하단은 지옥의 모습과 일상 생활의 다양한 정경을 진솔하게 묘사함으로써 한국이 특유의정서를 엿보게 한다.

 새클리 갤러리의 지하 2층 특별 전시관 전관에 걸쳐 전시된 작품들은 기획자의 작품해석 능력에 힘입은 합리적인 작품 선정과 배열, 매체의 다양성과 장르의 구분으로 전혀 지루하지 않게 관람객을 이끌어갔다. 또 이 전시를 돋보이게 한 것은 디자인 분야로서 쾌적하고 역동적인 공간 안배와 세련된 작품 보조 건축물, 아늑하고 세심한 조명과 적절한 설명은 작품과의 대화에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 주었다.

교포들에게 벅찬 감동 안겨
 이번에 순회 전시되는 뉴욕ㆍ워싱턴ㆍ로스앤젤레스는 우리 교민이 집중적으로 살고 있는 지역이다. 한ㄴ국인이면서도 정통 한국 미술을 접할 기회가 많지 않았던 교포들, 우리문화에 갈증을 느끼느니 이른바 ‘코리안-아메리칸’으로 일컬어지는 교포 2,3세들에게 ‘18세기 한국 예술전’은 벅찬 감동과 자아 정체성을 심어주는 소중한 경험이었다.

 이밖에 이번 전시는 앞으로 한국 미술의 해외 전시에 몇 가지 생각할 점을 던져준다. 이 전시가 호소력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우리 역사상 매우 생명력 있는 문화 예술을 꽃피웠던 18세기의 대표적인 미술품들을 통해 미술품 자체뿐 아니라 한국의 사회ㆍ역사적 배경을 포괄한 총체적인 시각을 제시함으로써 일반 관객에게 효과적으로 다가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으로 건너오기 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전시했던 ‘18세기 한국 예술전’이 똑같은 성과를 보이고 있는 것은, 이렇게 관객의 성격과 요구가 다른 까닭이 크다. 더욱이 내실 있는 전시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좀처럼 공개하기 힘든 수준 높은 개인 소장품들이 다수 포함되어 전시의 흐름을 충실히 연결해준 점을 빼놓을 수 없다.

 이번 전시에서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이 있다면 전시 홍보 측면을 들 수 있다. ‘18세기 한국 예술전’은 뉴욕과 워싱턴에서 유수의 일간지들의 호평 속에 진행되고 있으며, 필립모리스사가 <뉴욕 타임스>의 《선데이 매거진》에 전면 광고를 지원할 만큼 주목할 만한 대규모 행사이다. 그러나 정작 주인인 우리측에서는 전시 홍보를 소홀히 했다. 한국의 협찬 재단이나 기업에서 특별히 광고에 신경을 더 썼어야 했다.

 최근미국 미술계에 고조되는 한국 미술에 대한 관심의 대부분은 한국 시장을 겨냥한 것으로, 한국 미술의 매력에 공감하고자 하는 노력이라고 보기에는 보족하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번 18세기 한국 예술 전시는 시기 적절했으며, 그 의미 또한 매우 컸다.
워싱턴ㆍ양지연(뉴욕 대학 석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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