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에게 바친 ‘부활’의 노래
  • 김현숙 차장대우 ()
  • 승인 1994.05.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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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로 감독’ 변신한 이정국씨, <두 여자 이야기>서 페미니즘 새 영역 개척

 이정국 감독(38)이 만든 영화 <두 여자 이야기>에는 유난히 싸우는 장면이 많다. 그 싸움은 대개 신경전이 아니라 격렬하기 짝이 없는 육탄전이다. 무식하고 단순한 남편들의 화풀이 폭행은 물론이요, 애 못낳는 본처와 씨받이용 첩, 시누이와 올케, 며느리와 시어머니 들의 사소한 분쟁도 모조리 사생결단 몸싸움으로 치닫는다. 감독은 그 중에서도 여자들의 전투에 특별한 집착을 보인다. 그래서 그의 카메라는 몸싸움 현장에 들어가 한두 컷씩 찍고 빠지는 대신 기록 화면을 찍어내듯이 한 자리에 정지해 있다. 이 롱테이크의 전투 화면들은 김유정이<봄 봄>에서 그려낸 닭싸움의 정경처럼 부산하고 정겹다.

 “<부활의노래>가 80년대의 부채감을 덜어준 작품이라면 <두 여자 이야기>는 어머니에 대한 제 평생의 부채감을 완화시켜준 작품입니다.” 지난 91년 광주항쟁을 전후로 ‘들불’ 야학을 주도했던 실존 인물 3인의 삶을 그린 <부활의 노래>는 광주항쟁을 다룬 최초의 극 영화라는 점에서 소형 영화계뿐 아니라 제도권영화계에서도 주목한 바 있다. 그러나 그는 서울 중앙극장에서 개봉된 <부활의노래>는 “내 영화가 아니다”라고 잘라 말한다. 너무 많은 부분이 잘려 나갔기 때문이다. 당시의 상실감은 작년 4월 공연윤리위원회에서 ‘무수정 통과’ 판정을 받고 최근 백상예술상 신인감독상을 수상함으로써 어느 정도 회복 되었으나 재개봉 여부는 미정이다.

“어머니는 건드리면 울리는 악기”
 그런 의미에서 <두 여자 이야기>는 이정국 감독의 충무로 데뷔 작품이다. 그는 두 여자가 한 남자와 중혼한 채 한 지붕에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그려낸 영화 <두 여자 이야기>를 통해 ‘사회적 리얼리즘에서 서정적 리얼리즘으로의 이행’을 ‘결행한 셈이다. 그러나 이부분에대한 이씨의 해명에는 방어의 음색이 깔려 있다. “광주 얘기를 하다가 여자들 얘기를 한다고 해서 저를 두고 변신이니 배신이니 하는 것은 정당한 평가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언제나 집단 이데올로기에 갇히는 것을 거부해 왔습니다. 제가 영화감독이 되고 싶었던 것은 자유롭기 위해서입니다.” 그에게 한국 여자, 즉 어머니는 ’건드리면 울리는 악기‘이다. “촌놈이 뭔 영화를 만든답시고 장가도 못가고 고생이냐”라며 걱정하던 모습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아버지에게 얻어맞던 어머니, 고무신짝으로 아이들을 때리던 어머니, 치매로 고생하다 돌아가신 어머니, 욕을 잘 하시던 어머니의 기억은 모두 이 영화를 통해 재생되었다.

 ‘7년 전 돌아가신 어머니께 이 영화를 바친다“고 밝힌 이씨에게, 남도의 가난한 농부의 아내였던 어머니는 그이 창작 정신의 한 보고이다.
 그러나 이 영화가 처첩 살림과 가난에 찌든 여자들의 이야기라고 보면 오산이다. 이 영화를 보며 사람들은 자주, 그리고 흔쾌히 웃는다. 코미디에 대한 그의 감각은 우리나라 영화학도들에게 이미 정평이 나 있다. 지난 80년초 한 실업자의 좌절을 경쾌하게 그려낸 20분짜리 단편 영화 <백일몽>은 대학가에서 약 20만의 관객이 돌려볼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7분짜리 롱테이크, ‘탈충무로식’ 신념 표현
 <두 여자 이야기>는 우리나라 페미니즘 미학이 아직 도달하지 못한 ‘자매애’ 문제를 드러낸다. 지금까지의 페미니즘 문화가 남성에 대한 이데올로기였다면 이 영화는 여성 내무의 문제를 포착하고 있는 것이다. 그가 롱테이크를 통해 지켜본 여성들의 격렬한 몸싸움은 더 큰 화해와 이해로 가기 위한 통과의례이다. 그가 이 영화에서 가자 공을 들였다는 세 여자의 술먹는 장면은 한국 영화사상 가장 긴 장면이다. 7분20초짜리 이 롱 테이크 화면은 ‘기존 충무로식 제작 방식으로는 안된다’는 그의  신념의 한 실천이다. “중간에 한부분이라도 커트해 줘야 하는 거 아니냐”는 촬영기사의 조바심을 무마하는 일이나 “감정의 리얼리티를 살리기 위해서는 쉬지 말고 싸우라”를 주문에 버성긴 연기자의 반응은 모두 그가 현장에서해결해야 할 부분이었다. 그래서 한국 영화가 평균 6백 컷으로 만들어지는데 견주어 <두 여자 이야기>는 모두 2백66컷으로 완성되었다.

 이정국의 충무로 입성은 성공할 것으로 보인다. ‘운동권 감독’이라는 딱지를 떼기 위해 섹스 스릴러 대본을 써서 무작정 찾아간 고려영화사에서 최소한의 경비를 쓴다는 조건으로 제작비를 따낸 <두 여자 이야기>는 올 대종상에서 작품상ㆍ신인감독상 등 6개 부문을 휩쓸었다. 스티븐 스필버그처럼 단편 하나를 들고 나타나 조연출 거치지 않고 직접 감독으로 데뷔하겠다는 그의 야심은 어느 정도 실현된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새로운 세대의 감독이다.

 그는 최근 펴낸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론》(지인사)에서 ‘미국 영화와 일본 영화의 진수를 깨달은 후엔 유럽 영화가 그렇게 지루할 수 없다. 임권택 감독은 구로자와와 미조구치의 종합판이다’라는 해석을 내리고 있다. 그는 누구를 경배하는가. 물론 구로자와이다.
金賢淑 차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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