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와 내각제는 2인 3각?
  • 문정우 기자 ()
  • 승인 1994.05.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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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계 일부 “개헌해야 ‘범국민 후보’ 가능”…“공상이다” 발론도



 우연치고는 너무도 공교로운 일이다. 그동안 정치권에서 드러내놓고 얘기는 안했지만 누구나 김영삼 대통령 임기중 언젠가는 한번 불거지리라고 예상했던 것이 김대중 아ㆍ태 평화재단 이사장의 정계 복귀론과 개헌론이다. 그런데 최근 이 두 가지 뜨거운 잠복 현안이 동시에 정치권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김이사장은 5월4일 <대전일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만약 다시 정치를 한다고 해도 민주당과 계파를 업고하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말해 정가에 미묘한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정치를 안하겠다는 생각에는 볂함이 없다”를 전제로 한 말이지만 지난해 정계 은퇴 이후 처음으로 ‘다시 정치를 한다면’이란 얘기를 입에 담은 것이다.

 대통령 자문 기구인 21세기위원회는 5월 10일 김대통령에게 낸 보고서에서 ‘내각제를 체택하느냐, 대통령책임제를 고수하느냐 등 권력 구조와 정계 개편에 관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대통령이 거듭 “내 임기중에는 개헌을 하지 않겠다”라고 밝혔는데도 대통령 자문 기구가 이런 보고서를 냈으니 정치권에서는 실상하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5ㆍ6공 세력까지 품에 안고 돌아오려 한다”
 두 가지 현안이 동시에 불거진 데에 특별한 인과 관계는 없는 것 같다. 특히 221세기위원회가 개헌론을 주장한 데에 어떤 정치적 배경이 없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21세기위원회가 이번에 대통령에게 보고한 내용은 92년 11월 노태우 대통령에게 보고한 내용과 별로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21세기위원회가 정치적 고려 없이 형식적으로 보고서를 내다 보니 이런  결과가 빚어졌다고 볼 수 있다.

 김이사장측에서도 인터뷰 내용에 특별한 정치적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고 거듭 해명했기 때문에 두 가지 현안은 이내 꼬리를 감추고 말았다. 그러나 두 가지 현안의 동시 출현은 정치권으로 하여금 그동안 잊고 지낸 여러 가지 가능성에 대해 새삼 생각하게 만든 계기가 됐다. 야권의 한 인사를 “두 가지 산안이 터져나오자 여야가 첨예한 갈등을 빚는 상무대 국정조사 등은 아무것도 아닌 일로 보였을 지경이다”라고 말한다.

 김이사장의 정계 복귀와 개헌론은 그만큼 정치적 인화성이 큰 사안이다. 그리고 두가지 사안은 별개인 거처럼 보이지만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다.

 현재 제기되는 개헌론은 각론에서는 차이가 있지만 총론은 대략 두 갈래라고 할 수 있다. 내각제와 대통령중심제의 절충 형태인 현행 헌법 체제를 내각제로 고칠 것인가, 아니면 순수한 대통령중심제로 바꿀 것인가 하는 것이다. 6공 이후 정치권에서 내내 거론돼 온 것이 전자이며, 김영삼 정부가 들어선 뒤 학계에서 주로 얘기되는 것이 후자이다.

 후자의 경우 순수 학술 논쟁의 성격이 짙다. 김영삼 정부출범 이후 정치적 견해를 피력하는 데 큰 부담을 느끼지 않게 된 학계가 자유롭게 이런저런 의견을 제기하다 보니 논점이 자연스럽게 한 군데로 모이는 것이다 즉 5년 단임제로 돼 있는 현 대통령제는 학계의처지에서 보면 매우 기형적이라는 주장이다. 5년 임기를 고집하다 보면 4년 간격의 총선ㆍ지방자치선거와 엇갈려 국정에 혼란을 초래할 것이기 때문에 바꿔야 하며, 대통령의 책임을 묻는다는 뜻에서도 연임제가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물론 순수 대통령제로 고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내각제로 개헌하는 것을 심각하게 고려해야 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어찌됐든 통일 뛰까지를 고려해 현행 권력 구조를 재편해야 한다는 것이 학계의 지배적인 의견인 것만은 틀림없다.

 그런데 대통령의 임기를 4년 연임으로 고치는 등 현재의 체제를 변경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김대통령의 임기중에는 이루어지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정권 연장을 기도한다는 여론과 야권의 반발 때문에, 명분이 있더라도 김대통령이 미어붙이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온전치 못한 현행 권력 구조를 개편할 수 있는 가장 현실성 있는 방안은 내가가제 개헌이란 결론이 나온다.

 김대중 이사장의 <대전일보> 회견 이후 여야 할 것 없이 정치권에서 가장 많은 논란을 빚는 소재는 ‘만약 다시 정치를 한다면 김이사장이 어떤 과정을 거칠까’ 하는 것이다. 여야가 모두 주목하는 점은 ‘민주당이나 계파를 업고 하지는 않겠다’는 김이사장의 얘기이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김이사장의 얘기를 듣고 이제 확연히 감을 잡은 것 같다“라고 말한다. 그가 얘기하는 김이사장의 정계 복귀시나리오는 이렇다. 기이사장은 범국민 추대형식으로 정계에 복귀하려 한다는 것이다. 민주당ㆍ재야, 5ㆍ6공 세력을 모두 품에 안고 그들의 지지를 받아 정계로 다시 돌아오려 한다는 얘기이다.

민자당 민주계 외에는 모두 내각제 선호
 그리고 그들을 한데 묶을 카드는 내각제 개헌이다. 특히 김대중 이사장의 정계 복구에 대해 거부감을 가진 5ㆍ6공 세력을 안심시킬 수 있는 방안은 내각제밖에 없다는 생각이다. 사실 현재 여권에서도 민주계를 빼놓고는 대다수가 내각제를 선호하는 형편이다.

 여권의 이런 견해에 대해 동감하는 민주당 인사들도 의외로 많다. 민주당의 한 인사는 한술 더 떠서 “김이사장이 이원집정부 형태의 내각제를 제안할 것”이라는 얘기까지 한다. 김이사장이 5ㆍ6공 세력과의 대화합과 정치 보복을 하지 않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서 그런 제안을 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즉 그동안 통일문제 연구에 전념해온 김이사장은 대통령이 돼 안보와 외교만을 맡고 내치는 내각에 일임하는 형태의 권력 구조이다.

 이와 관련해 재야에서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김근태씨는 최근 공ㆍ사석에서 수차례나 “내각제 논의가 알게 모르게 안개처럼 정가에 스며들고 있다”라고 얘기했다. 재야에서는 현재 김이사장이 추진하는지도 모르는 내각제 개헌이 분단을 포함한 유리 사화의 모순을 그대로 고착화할 우려가 있다는 주장과, 현실적으로 우리 사회를 개혁할 수 있는 방안은 그것밖에 없다는 견해가 암암리에 맞서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중요한 것은 김영삼 대통령의 태도이다. 최근까지 김대통령의 입장은 확고한 듯했다. 물갈이를 통해 측근 세력을 권력구조내에 많이 끌어들여 정권의 안정을 기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김대통의 이같은 구상은 많은 차질을 빚는 것으로 보인다. 통상과 외교 분야에서의 잇단 실책으로 정치권을 뜻대로 갈아치울 만큼 힘이 이어지고 있지 않은 것이다. 그런 점에서 방미중인 김대중 이사장을 수행하고 있는 민주당 한화갑 의원이 “김영삼 대통령이 추천하여 김이사장이 정계에 복귀하는 게 가장 바람직하다”라고 말한 것은 음미해볼 만하다.

 사실 김이사장의 정계 복귀나 개헌론에 대한 논란은 현상태에서는 ‘공상적’으로 보이는 면도 있다. 김대통령이 5년 임기중 이제 1년을 넘긴 상황이라 지나치게 이르다는 느낌도 있다. 그러나 앞으로 정계에서 펼쳐질 여러 가지 가능성에 대해 상상력을 자극하기에는 족하다.
文正宇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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