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무대’ 열쇠는 비밀 장부
  • 김당 기자 ()
  • 승인 1994.05.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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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기현씨의 비자금 흐름 밝힐 증거… 파기됐을 가능성도



 ‘상무대 공사 대금 일부 정치 자금 유입 의혹’이라는 긴 이름을 가진 사건에 대한 국정조사가 한달 넘게 표류하고 있다. 민주당은 마지막으로 국정조사에 대한 청와대의 최종 결단을 촉구해 놓고 있다. 그러나 청와대는 아직 말이 없다.

 민주당 진상조사위의 나병선 의원은 “일개 사학인 상문고 비리에까지 철저 수사를 지시할 정도로 국정 현안을 챙기는 김영삼 대통령이 유독 상무대 건에 침묵하는 까닭을 모르겠다. 상무대 의혹을 명백히 밝히는 것이 불행한 퇴임, 또는 퇴임후 청문회를 막는 길이다”라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국정조사가 무산될 경우를 대비해 ‘김영삼 후보의 10억원 수수 의혹’이 담긴 검찰 수사기록을 공개하는 등 국민에게 직접 호소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민주당 “비장의 카드 있다”
 상무사업 비리 의혹에 관한 국정조사가 물 건너가면 상무사업 또한 다른 의혹 사건들처럼 묻혀 버리고 말 것인가. 이에 대해 민주당 진상조사위원들은 한결같이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이같은 자신감은 설령 장기전으로 가더라도 언제든지 판을 뒤집을 ‘비장의 카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민주당이 만약 카드를 비아하고 있다면 그 패의 내용은 어떤 것일까.

 민주당 진상조사위는 이에 대해서는 명확한 답변을 피한다. 공식적인 답변은 ‘군검찰 수사기록, 검찰 수사기록, 공판기록 이외의 것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진상조사위의 한 관계자는 “민주당이 주장하는 증인 채택이 이뤄지고 국정조사가 순조롭게 진행된다면 문서 검증ㆍ증인 대질신문ㆍ수표 추적 과정에서 진실이 밝혀지겠지만 설령 국정조사가 무산되더라도 언제 터질질 모르는 뇌관은 남는다. 조기현씨의 비밀 장부는 그 중하나이다”라고 말한다. 이 관계자는 민주당이 그것을 입수 했는지 여부는 “모른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민주당의 비밀 장부 입수 여부와 관계 없이 조기현 전 청우종건 회장의 로비 내역을 입증할 비밀 장부가 있다는 주장은 상당히 설득력이 있다. 그것이 실제로 있다면 상무대 공사대금의 정치자금 유입 의혹을 풀 열쇠가 되므로 관심의 초점이 된다.

수사 기록에 흔적 발견돼
 우선 조씨에게 개인 비밀장부가 있다는 주장은 《시사저널》이 입수한 특검단 및 검찰의 수사 기록에서 근거를 찾을 수 있다. 특히 청우건설의 경리이사로 근무하면서 회사의 내부용ㆍ대외용 장부(비밀 금전출납부와 세금 신고용 법인 결산장부)를 정리하고, 회사 자금의 사용에 관하여 조씨의 지시대로 처리하는 등 누구보다도 회사 자금의 흐름을 잘 알고 있는 김영일씨의 진술이 이를 뒷받침한다. 군 특검단 참고인 신문에서 김씨가 진술한 내용 중 조씨의 꼼꼼한 성격과 개인 비밀 장부의 존재를 입증해 주는 대목은 다음과 같다.

문 : 진술인이 말하는 금전출납부는 어떠한 성격의 장부인가요?
답 : 회사의 수입으로 잡히고 지출로 계상되는 현금의 수입ㆍ지출 자료를 근거로 하여 그날그날 작성한 장부이며, 그 금전출납부는 과세 근거로 제시되거나 회계감사를 받을 때 제출되지 않기 때문에 사실상 비밀 장부나 다름없는 것입니다.
문 : 혹시 진술인이 조기현 회장에게 금전 출납 메모를 보고할 때 누락해 보고한 부분은 없나요?
답 : 그건 잇을 수도 없는 일입니다. 조회장은 회사 돈 운용에 관하여 만원 지출한 것도 체크하였고, 간혹 직원들이 출장을 가거나하여 출장비를 많이 청구하거나 하면 꼬치꼬치 그 사용 내역을 따지기도 하였고, 어떤 때는 제가 보고한 금전출납 사항을 믿지 못하여 출납 여직원에게 확인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아무튼 조회자은 돈에 관한 한 철두철미한 사람입니다.
문 : 청우에 위 장부(금전출납부) 외에 비밀 장부가 있는가요?
답 : 저한테는 없는데 조기현이가 따로 정리하여 놓은 장부가 있습니다.

일부러 흘리는 마타도어 수법일 수도
 이같은 김씨의 진술에 따르면, 특검단 또는 검찰에서는 조씨가 작성한 비밀 장부를 입수해 이미 그 내용을 파악하고 있을 것이 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물론 조씨가 이를 파기했을 가능성도 있다. 또 민주당측에서 비밀장부 사본을 입수했더라도 원본은 수사당국이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문제는 남는다. 원본이 파기됐다면 사본을 공개해도 조씨가 자기가 쓴 것이 아니라고 부인하거나 조작한 것이라고 주장하면 증거 능력을 상실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비밀 장부의 폭발력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민주당으로서는 국정조사가 진행되면 필적 감정이라는 또 다른 패를 내밀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동안 진상조사위는 조씨가 위세용으로 회장실에 걸어 놓은 김영삼 대통령과 찍은 사진과 조씨의 개인 비밀 장부를 입수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여 왔다. 전자가 지난 2일 이기택 대표가 기자회견에서 공개적으로 해명을 요구한 ‘김영삼 후보자 10억원 숫 의혹’을 뒷받침하려는 정치 공세를 위한 것이라면 후자는 진실에 접근할 수 있는 열쇠이다.

 민주당에서 현재 본인의 수긍 여부와는 관계 없이 그 ‘진실의 열쇠’를 지닌 것으로 거명되는 의원은, 상무대 정국을 주도한 정대철 진상조사위 위원장과 검사 출신 강수림ㆍ강철선 법사위원, 그리고 초기에 진상조사위에서 활약한 박계동 의원을 포함한 ‘개혁 모임’ 의원들과 이 철ㆍ권노갑 의원, 국방위의 군출신 의원 등이다.

 이는 민주당 쪽에서 의도적으로 흘리는 이른바 마타도어 수법의 하나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동안 민주당측이 특검단 및 검찰의 수사기록을 입수한 경로로 보건대, 비밀 장부가 현존한다면 진상조사위원 가운데 누군가가 이미 입수했을(또는 앞으로 입수할)가능성은 크다. 실제로 민주당이 상무대 의혹 한건으로 두달 넘게 지속적인 공세를 펴올 수 있었던 것도 지속적인 제보에 힘입은 바 컸다. 또 제보의 수준도 특검단 조사관의 구두 제보에서부터 기무사 요원의 기록, 군 검찰관의 신문조서 사본, 심지어 검찰 수사기록 등으로 진전되어 왔다. 그와 함께 초기에는 언론에 알파벳 머리글자로만 표기된 비리 혐의자들이 실명으로 박혀온 것 또한 사실이다.

 문제는 이처럼 단계적이고 구체적인 제보가 국방부장관 직속 군특명검열단과 기무사ㆍ합동조사단(헌병)ㆍ법무관리관실(군 검찰) 등으로 구성되었던 4부 합동 율곡특감단(요원 1백20명)과 검찰에서 고루 나왔다는 점이다. 진상조사위는 여전히 제보 출처나 내부 제보자를 밝히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일부가 김영삼 정부가 들어선 이후 옷을 벗게 되었거나 불만을 품은 이른바 TK 또는 하나회 출신 군인들이라는 추정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바로 이런 점들이 국정조사를 떠안고 있는 청와대와 민자당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는 것 같다. 상대방이 어떤 패를 쥐고 있는지 정확히 알기 힘들 것이기 때문이다.
김 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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