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배 낚아 달러 벌자”
  • 부산ㆍ박성준 기자 ()
  • 승인 1994.05.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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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영해 침범한 어선 끌어가 거액 요구 … 어업협정 체결 시급



 최근 한국 어선과 중국 지방 정부가 동중국해 한가운데에서 이상한 방식으로 ‘우의’를 쌓고 있다. 한국어선이  공해를 벗어나 중국 영해에서 조업하다 잡히면, 중국 지방 정부의 해양경찰 또는 수산당국은 고맙게도 이러한 위법 행위를 ‘없었던 일’로 눈감아 준다. 물론 여기에는 반드시 대가가 따른다. 한국 어선은 무사히 풀려나는 대신 그에 상응하는 뱃값(또는 몸값)을 찔러줘야 한다. 하지만 떳떳지 않게 넘어간 돈이 중국 정부에 공식 전달되는지는 확인할 수 없다.

 현재 양국은 어업협정을 맺지 않은 상태이다. 따라서 양국 간에 영해 침범 사고가 발생하면, 각자 임시 방편으로 영해 관련 법에 의거해 범법 행위를 다스린다. 최근 중국 영해를 침범해 문제가 된 한국 어선으로는 저인망 쌍끌이 어선인 제27 태흥호(부산 대양수산 소속)와 제2 송광호(부산 송광수산 소속)가 있다. 이 배들은 지난 4월29일 제주도 모슬포에서 남서쪽으로 2백80㎞ 떨어진 해상에서 조업하다 중국 영해로 넘어 갔다.

 중국은 사고 어선과 그 어선에 타고 있던 선원 11명을 잡아간 뒤, 자기네가 제정한 ‘외국인 어업법’을 근거로 한국측에 배 1척당 벌금 5만달러를 요구했다. 한국측은 현지 대사관과 상해 주재 영사관이 협상을 추진하고 있지만, 벌금 액수가 워낙 커 타협점을 찾지 못하는 상태이다. 중국 정부가 제시한 벌금 5만달러는 우리 돈으로 4천만원에 불과하지만 중국에서는 약 20억원의 가치를 가진다. 배가 2척이니 40억원이 넘는 셈이다.

 물론 중국 쪽에서 한국 영해를 침범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수산청 지도과가 밝힌 통계에 따르면, 92년부터 올해까지 해당 기관에 보고된 영해 침범 어선 수는 모두 36척. 올해만 해도 벌써 4척이 한국 영해를 침범했다. 한국 정부는 중국 배가 영해를 넘어온 경우 사고 어선의 선장을 정식 재판에 회부해 처벌하는데, 대개는 벌금을 물린다. 벌금 액수는 2백만원(약 2천5백만달러) 안팎이다.

 연근해 어업 관계자들의 말에 따르면, 중국측은 한국 어선을 끌어갔을 때 정식 절차를 밟지 않고 현장에서 ‘현찰 박치기’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을 선호한다. 저인망선원노동조합 임광택 위원장은 “중국측이 영해를 침범한 배에 대해 ‘뒷돈’을 받는다는 사실은 업계에서 공공연한 비밀이다. 일부 회사는 동중국해로 조업하러 나갈 때 중국인이 선호하는 달러를 미리 준비할 정도다. 처음엔 저쪽에서 요구하는 액수가 적었는데 요즘 단위가 점점 커진다고 들었다”라고 밝힌다.

중국 영해 넘나드는 한국 배에 1차 책임
 바다 한가운데서 뒷돈이 오가는 기현상이 벌어지는 1차 책임은 한국측 선주들에게 있다. 동중국해에서 중국인과 함께 고기잡이 하는 한국 어선 대부분은 조기ㆍ민어ㆍ도미ㆍ가오리ㆍ꽃게 따위를 잡아올리는 저인망 어선인데, 어획고를 더 많이 올리기 위해 중국 영해를 넘어가는 뱃머리를 돌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현재 대형기선저인망조합에 올라 있는 저인망 어선은 대략 5백20척이다. 그 가운데 60% 이상은 황금 어장인 동중국해로 나가 조업한다.

 불법성을 띠기는 중국측도 마찬가지다. 한국 선원들의 말에 따르면, 중국측은 일단 영해 안으로 들어온 한국 배를 발견하면 고의인지 아닌지를 가릴 것 없이 끌어간 뒤 돈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현재 선원과 함께 중국 사천성 여사항에 억류되어 있는 태홍호의 경우, 당국의 경비정이 출동해 정식으로 끌고간 것이 아니라 중국 어선에게 강압적으로 나포된 것으로 알려진다. 또 중국 경비정에게 붙잡힌 송광호도, 주변에 있던 한국 선박들이 경비정을 쫓아가자 중국측이 배는 버려둔 채 선원만 옮겨 태우고 줄행랑을 쳤다고 한국 선원들은 말한다.

 어업협정을 하루빨리 체결하지 않으면 영해 침범을 빌미로 돈을 뜯어내는 불미스런 관행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더욱이 동중국해는 최근 들어 한ㆍ중간 조업 경쟁이 치열해져 분쟁 소지가 날로 커지고 있다.
 동중국해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상한 ‘민간외교’는 국제법에 따른 정부간 외교로 정상화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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